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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3 법칙

교육을 포기하지 않기 위한 몸부림

by 보름달

진심을 다하고 시간을 들여서 아이를 만나면 대부분의 아이는 성장할 수 있다고 믿던 시절이 있었다. 더불어 아이를 성장하게 하고 변하게 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나를 대부분의 학부모가 지지해 줄 것이라 믿었던 순진한 때가 있었다. 세월의 때가 묻고 여러 일을 겪으면서 그렇지 않음을 절실하게 느꼈다. 상처받으면서 또는 무너지면서. 그래서 누군가 나에게 말해주었던 333 법칙을 마음에 품고 살게 된 지 꽤 오래다, 이건 마치 회사원이 가슴에 품고 다니는 사직서 같은 것처럼, 교사로서 살게 해 주는 부적처럼.


333법칙이란 학급에서 아이와 부모 중 3은 나를 엄청 좋아하고 신뢰하며, 3은 그냥저냥 잘 지내는 반면 3은 나를 못 견뎌하고 힘들어한다는 것이다. 이 법칙은 모두가 날 좋아하지 않는 것이 당연함을 새록새록 깨닫게 해주는 것이며 내 교육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 아니기에 유연해야 하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함을 되새기게 한다. 그렇다. 마음에 품고 있어 위로가 되고 현재의 상태에 머무르거나 고이는 것을 경계하게 했다.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니 상대적으로 상처를 덜 받았다.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상관없이 아이의 성장을 돕는 것은 교사의 역할이라 믿기에 방법을 달리 하면서 끝까지 노력했다, 조금이라도 변하길 기대하고 희망하면서. 한 아이도 놓고 가지 않으려고 열심히 발버둥 쳤다. 때로는 인내하면서 또는 화내고 달래고 어르면서 혼자 널뛸 때도 많았다. 아이의 마음이, 인성이, 친구 관계가 보이고 앞으로의 모습이 예상되는데 그냥 둘 수 없었기에. 333법칙과 상관없이 교육이 조금씩 스며드는 것을 느끼며 힘을 얻었다.


그러나 이제 333법칙은 점점 좋지 않은 쪽으로 강화되어 나를 신뢰하는 부모의 아이는 쑥쑥 크는 것이 보이는데 반대 성향 부모의 아이는 전혀 따라오지 않는 것을 본다. 교사를 싫어하는 부모를 등에 업은 아이에게 교사의 영향력이 전혀 닿지 않으며 교사의 말을 부모가 함께 튕겨내는 것을 느낀다. 그러니 아이는 교사의 어떠한 가르침도 다 반사한 채 교실에서도 '우리 엄마가~' , '우리 아빠가~'를 앞세운다. 교실의 규칙도 필요 없고 교사도 무섭지 않다. 아이의 마음을 공감하기에 부모는 아이의 불편함을 제거해 주고 해결해 주기 위해 나선다. 교사를 존중하지 않는 부모의 권력을 업은 아이에게 교사는 그냥 지나가는 행인이자 참견쟁이다. 그런 아이들은 하나도 변하지 않는다. 성장하지 않는다. 그때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 교육에 대한 무기력함과 자괴감에 상처받는다. 나는 교실에서, 교사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결국 아이들과의 만남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교육을 계속하기 위해 다른 몸부림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낀다. 가르치는 즐거움을 잃지 않기 위해, 아이들과의 행복한 만남과 서로의 성장을 위해 격하게 고민한다. 내가 몇 살까지 아이들을 만날 수 있으며 교사라는 직업을 지켜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을 내려놓고 살 방법을 찾는다.

어떤 교사는 333중 3만 데려가는 것으로 해결을 본다. 어떤 교사는 아무 상관없이 직업인으로서의 교사생활을 한다. 그러나 나에게는 두 방법 다 맞지 않는다. 모두를 데려가고 싶은 욕심을 여전히 버리지 못한다. 결국 난 내려놓기로 했다.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노력은 하지만 어떤 아이에게는 닿지 않을 것임을 인정하기로 한다. 어떤 노력과 진심으로도 아이를 자라게 하지 못할 수 있음을 알고 욕심을 내려놓고 또 내려놓기로 한다. 변화와 성장의 몫은 아이와 부모 쪽에 조금 더 옮겨놓고, 나 스스로를 덜 탓하기로 했다. 다만 눈치 보지 않고 가르치며 여전히 끝까지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쉽지 않다.


아직 아이들을 만나는 것을 내려놓을 수 없다. 가르치는 일을 포기할 수도 없다. 그래서 난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기로 한다. 한동안 시행착오를 겪고 나를 반사하는 아이와 부모를 만나는 것도 상처겠지만 어쩔 수 없음을 인정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혼자 다독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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