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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레드 논란

싫은 것은 절대 못하는 아이들도 예의는 배운다.

by 보름달

"엄마, 엄마! 스레드에서 논란되고 있는 글 봤어?"

"스레드? 쓰레드? 쓰레기?"

"아... 엄마는 옛날 사람이라 스레드를 모르는구나. 어쨌든 커피 관련 논란 알아 몰라?"


엄마의 MZ력 향상에 큰 책임을 지고 있다는 딸이 그 내용을 보여주었다.



너무도 핫하다는 커피이야기로 온라인세상은 물론 가족끼리도 갑론을박이 이루어지고 있다. 어쩜 정답이 없기에 논란이 계속될 수 있을 것이다. 내용 자체보다 사실 댓글이 더 뜨거웠다. 커피를 버린 직원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물어보지 않고 사 준 것이 폭력이다.", "침묵도 싫다는 하나의 표현이다.", "사주면 땡이지 왜 그걸 먹는지 버리는지 지켜보냐 소름 끼친다."이라고 하고 그 반대 입장에서는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에게 먹을지 물어보면 되지.", "고맙지만 커피는 못 마신다고 하면 안 사줬을 텐데." 등등으로 의견이 갈렸다. 세대 간의 차이는 곧 갈등으로 이어지는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논란이 뜨겁고 재미있어서 교실로 들고 왔다. 나와 다른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했다. 아이들은 재미있게 들으면서 다양하게 반응했다. 당연히 커피를 마시지 않고 버린 직원이 이해된다는 아이들이 90%가 넘었다. "폭력"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비슷한 뉘앙스로 왜 물어보고 사주지 않았냐며 이상하다 하였다. 그것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보고 있는 것도 소름이라고 했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혹시 너희가 그 직원이었다면 어찌할 것이냐고. 보는 데서 버린다는 아이도 있고 몰래 버린다고 하는 아이도 있었다. 반에서 2명 정도만 조심스럽게 두세 번 먹고, 들고 나와서 집에서 버린다 하였다.


그래서 '라떼는...' 하면서 엄한 부모님 아래 자란 내 입장을 이야기했다. 먹기 싫어도 어른이 주면 무조건 먹어야 했었다고 했더니 아이들의 얼굴에는 충격이라는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왜 안 그러겠는가. 언젠가부터 급식지도도 아동 학대라는 민원이 들어와서 손을 많이 놓게 되었는데... 하도 못 먹는 아이에게 집에서 대체 뭘 먹냐고 물었더니 자신이 좋아하는 반찬만 부모가 해준다 했다. 아이 반찬을 따로 해본 적도 없고 김치조차 물에 씻어 먹여보지 않은 내가 옛날 양육 스타일의 엄마라 싫은 음식에 대해 도전이나 시도하게 하지 않기에 고학년이 되어도 야채를 전혀 먹지 못하는 아이, 나물 반찬에 구역질하는 아이도 꽤 많은 것이 답답하다.

먹는 것뿐일까. 싫은 것은 전혀 하지 못한다. 자기와 맞지 않는 사람은 무조건 배척하고 당연히 어느 작은 불편함도 참아내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챙기고 배려하고자 하는 마음과 의도마저 취향을 고려하거나 물어보지 않았다는 이유로 폭력이라 정의하고 그것을 불편해하는 사람을 꼰대로 취급하는 것은 아닐까.

아이들에게 다시 물었다. 더운 날, 선생님이 아이스크림을 사주고 싶은데 20명이 넘는 우리 반 아이들의 취향을 다 고려하면서 사줄 수 있겠냐고. 그랬더니 아이들 입에서 인정의 아~ 소리가 나온다. 물론 평소 '개취 존중'을 강조하기에 취향이 맞지 않으면 안 먹을 수는 있다는 것도 이해한다고 했다. 다만 챙겨준 것에 대한 감사함은 표현할 수 있고 자긴 먹지 않지만 혹시 더 먹을 사람이 있는지 물어보면 좋지 않겠냐고 했다. 침묵을 표현의 하나라 말하지만 함께 살아가는 데 있어서는 오해를 부를 수도 있고 소통을 단절하게 만드는 부분도 있다. 그러니 정중하게 표현하면 좋겠다고 했다.

안 먹어도 괜찮다는 말에 아이들은 안심하면서 귀를 기울였다. 혹시 안 먹는다고 표현하는 것이 어려우면 사준 사람의 마음을 생각해서 조용히 들고 나오는 것도 괜찮냐고 묻는 아이도 있었다. 물론, 그것도 좋지만 사주는 사람은 계속 같은 것을 사줄 수 있기에 기회를 봐서 못 먹거나 안 먹는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낫지 않겠냐고 했다. 그러므로 서로를 알아가는 또 하나의 기회가 될 수 있을 테니까.


집에서도 사실 두 딸과 그렇게 마무리를 하긴 했다. 사주고 나서 그 사람이 마시거나 말거나 상관하지 않아야 한다는 애아빠의 말도 옳지만 사주는 사람에게 고맙다는 인사는 분명히 해야 하고 고마운 마음이 있다면 몇 번 먹고 가지고 나와서 버리거나 못 마신다고 표현하고 더 마실 사람이 있는지 묻는 것도 좋지 않겠냐고 했다. 물론 사주는 사람이 사주고 나서 생색을 낼 필요도 없고 상대가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 지켜볼 필요도 없겠지만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조금의 예의는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억지로 먹으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사준 사람의 마음을 고맙게 받고 정중하게 사양하는 방법을 알았으면 좋겠다. 우리 딸들도 그 직원처럼 할까 걱정되는 것 보니 나 역시도 꼰대인가 싶기는 하지만 그래도 표현하고 소통함으로 서로 알아가고 조심하고 더 잘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스레드의 논란은 늘 흥미롭다. 가족끼리 생각을 나누는 기회가 되기도 하고 세대 간의 다름을 알면서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 고민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사회라는 한 공간에 살면서 다름을 인정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혼자 살 수 없기에 갈등을 무너트리고 경계를 낮출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요즘 아이들은 싫은 것을 절대 못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야기하다 보면 상대를 배려하는 방법에 대해 잘 알고 있고 싫은 것을 조금은 참아내고자 한다. 그렇게 조금씩 맞추어 가다 보면 혐오가 아니라 이해의 눈으로 서로를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높디높은 단절의 벽을 낮추고 한 발자국씩 양보하면서 함께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스레드 같은 논란의 장이 필요하다. 거기서 세대를 가르고 의견에 따라 니 편 내 편을 가르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조금씩 서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가를 찾는 자세를 기른다면 지금처럼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한 혐오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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