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의 시간은 인간보다 빠르다. 노령견의 기준은 보통 6~7살 정도이고, 대형견의 경우 평균수명이 소형견보다 짧기 때문에 4살 정도부터 노령견으로 분류한다. 하지만 의학기술의 발달과 반려동물 관리 수준의 향상으로 과거에 비해 평균수명이 늘어남에 따라 노령견의 기준도 올라가고 있는 추세이다.
나는 20대의 젊은이였기 때문에 노화나 죽음이 멀게만 느껴졌다. 그래서 깜순이가 6살이 되면서 ‘노령견’이라는 타이틀을 얻자 죽음이 부쩍 가까이 온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했다. 깜순이가 없는 일상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울렁였다. 내 걱정과는 다르게 6살의 깜순이는 여전히 기운이 넘치고 초롱초롱 빛나는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노령견 대열에 합류하게 되어서 대대적인 건강검진과 스케일링도 받았다. 슈나우저의 품종 특이적으로 취약한 심장과 신장이 조금 안 좋은 편이었지만 당장의 치료나 관리가 필요한 정도는 아니라는 소견을 받았다. 나름 우수한 성적표에 으쓱했다.
깜순이가 10살이 되던 해에 강희가 쇼크로 죽었다. 부연설명을 하자면 강희는 선천적 소간증 소견을 보이고 있었고, 신장과 심장도 좋지 않았다. 그 결과 혈중 암모니아 수치가 급격하게 치솟으면서 쇼크로 거품을 물고 쓰러지는 빈도가 점점 잦아졌다. 병원에서도 안락사를 권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다.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쇼크가 왔고, 끝내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말았다. 함께하던 동료의 부재 때문인지 깜순이는 이쯤부터 부쩍 누워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12살, 산책길에 만나는 사람들이 “얘는 몇 살이에요?” 하고 물었다가 나의 대답에 “와~ 할머니네” 하는 말이 내 가슴을 저미게 했다.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아직 몇 년은 더 남았어. 벌써 걱정하지 마.” 하고 위로했지만 전혀 위로가 되지 못했다. 깜순이의 털은 부쩍 세었고, 식욕도 줄었다. 세상만사가 귀찮은 듯이 부름에 대꾸조차 하지 않는 날도 많았다. 배변 실수도 점점 빈번해졌다. 오랜만에 다시 한 건강검진에서는 심비대도 진행 중이고 혈압도 150이 넘고 간 기능도 조금 떨어지는 것 같다고 했다. 그래도 12살치고는 눈도 깨끗하고 정정한 편이라는 소견이 조금은 마음의 위안이 되었다. 아직은 우리에게 조금 더 시간이 남아있으리라.
늙어가는 반려동물을 지켜보는 일은 감정적으로 아주 힘들고 지치는 일이다. 게다가 노화에 따라 예상치 않은 질병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병원에 갈 일이 많아지고 노령동물 돌봄에 드는 경제적인 부담도 늘어난다. 과거에는 이러한 이유로 노령동물의 양육을 포기하는 경우도 번번했는데 다행히 최근에는 반려문화의식이 많이 개선되면서 노령동물을 돌보는 반려가정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처음 반려동물을 들일 때 생명의 존엄함과 생명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 이해했다면 반려동물의 생로병사를 함께 하면서 생명의 존엄함과 책임감을 가슴으로 느끼게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