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20살의 이야기와 '공감'에 대한 고찰

사회 초년생의 발칙한 에세이

by 진원

뻔하디 뻔한 도입부이지만, 평범하다면 평범하고 색다르다면 색달랐을 삶을 살았다. 뭐, 그래봤자 아직 20년이라는 짧은 기간밖에 사회를 경험하지 못한 사회 초년생이다.


가정사도 흔히 여러 작가분처럼 돈이 없어 허덕이고, 10대 때 돈이 되는 아르바이트라면 모조리 다 하며 돈을 벌어 왔다는 특별한 스토리는 아니다. 그렇다고 부르주아처럼 풍족하고 부족함 없는 삶을 살았느냐? 그것 또한 아니다. 그렇다고 평범한 가정이냐? 그것 또한 아니다. 이 부분은 아직 이야기를 꺼내기는 그러니 여기까지. 언젠가는 풀 수도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 타이밍이 지금은 아닐 뿐이다.


초등학교, 중학교는 평범했다. 진짜 평범했다. 별로 쓸 이야기가 없다시피 하다. 그저 조금이라도 공부를 하고 싶지 않았던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냥, 그저 그렇게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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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2년, 고등학생이 되었다. 평범한 고등학교 생활을 즐기던 중, 갑작스러운 연락이 왔었다. 이태원 참사로 인해 내 중학교 2학년 시절 담임 선생님께서 돌아가셨다는 당시 반 친구의 연락이었다. 이미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고 그 피해 규모도 엄청났다는 뉴스도 분명 보았었다. 그저 나에게는 그 뉴스가 와닿지 않았을 뿐이다. "피를 나눈 가족도 아니고 그저 중학교 담임 선생님 정도면 스쳐 갔던 인연일 뿐 아니냐?"라고 생각한다면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나와 인연이 있던 주변인의 첫 사망 소식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나와 많이 상호작용을 해왔던 선생님의 죽음. 이것이 내가 현재까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들어본 부고 소식이었다. 아직도 선생님의 카카오톡 프로필은 내 친구란에 남아 있다. 이 프로필까지 지우면 더 이상 선생님의 모습을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그 후 TV를 틀자 또 방송사에선 이태원 참사 뉴스가 흘러나왔다. 이 사건이 내가 아는 사람을 앗아간 사건으로 변한 시점부터 이 뉴스를 받아들이는 내 마음은 전과는 많이 달랐다. 사람이란 참 간악하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다. 자신과 관련이 없는 일이라면 최대로 공감할 수 있는 수치가 크게 낮아진다. 자신은 충분히 다른 사람의 상처에 공감한다고 단언하더라도, 다른 이의 상처는 그 누구도 100%로 공감할 수 없다. 이후로 나는 누군가를 상담해 줄 때 '공감한다'라는 말을 쉽게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2개월이 지났다. 즉, 2023년 새해가 밝았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고, 눈에 띄었던 카카오톡 광고 배너 하나. <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이라는 언론사에서 새로운 기수의 기자를 모집한다는 광고였다. 무슨 생각을 가지고 지원을 했는지는 나도 잘은 모른다. 하지만 "사회를 내 손으로 바꿔보고 싶다!"라는 거창한 목적은 절대 아니었다. 그저 여러 사건의 뒷 세계에 대한 호기심일 수도 있다. 아니면 전에 서술한 참사의 영향이 컸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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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되고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기사로 서술할 수 있었다. 저작권 분쟁으로 인해 끝내 목숨을 끊은 작가의 이야기, 직접 발로 뛰며 가해자를 처벌하기 위해 노력해 온 범죄 피해자의 이야기, 사회의 벼랑 끝에 선 노숙인의 이야기. 이때도 나는 '공감'은 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하지 '못'했다. 그저 들어줄 뿐이었다. 그리고는 이야기들을 기사로 옮겼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기자면 피해를 입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에 공감을 해야 하지 않냐?"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야기에 공감을 하면 안 된다는 말이 아니다. 100%의 공감을 하지 못한다면 섣불리 자신이 먼저 "이 이야기에 공감한다"라고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는 상대가 판단하는 것일 뿐, 자신이 판단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은 공감하려고 노력하는 것, 내가 해오는 일이다.


MBTI와 관련하여 재미있는 밈이 하나 있다. "나 우울해서 빵 샀어..."라고 운을 띄우면 감정형 F는 왜 우울한지를 묻고, 사고형 T는 우울한데 왜 빵을 사는지를 묻는다고 한다. 여기서 F는 상대의 아픔에 공감하는 것이고, T는 공감하지 않는 것인가? 이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둘은 상대의 아픔에 공감하려는 노력의 방식이 다른 것이다. 평범한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F이든 T이든 모두 "힘내"라는 한 마디로 이야기를 끝맺을 것이다. 나 같은 경우는 전부터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