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 속에서 드러난 진실
2006년 1월.
신병교육대의 생활이 익숙해지고
훈련도 막바지에 이르렀을 무렵,
훈련병들 사이에는 공통된 하나의 두려움이 있었다.
밀폐된 작은 공간 안에 갇혀
최루탄 연기의 고통을 견디며
방독면을 착용해야 하는 화생방 훈련.
신병교육 중 가장 고통스럽고,
가장 두려운 훈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입대 전부터 군대를 다녀온 형들이나 어른들에게
"화생방이 제일 힘들다"는 말을 지겹도록 들어왔기에,
훈련 내내 그날이 다가오는 것이 두려웠다.
그리고 결국,
그날이 내일로 다가왔다.
생활관에는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혈기 왕성한 청년들이 함께 있었다.
겉으로는 조용했지만,
보이지 않는 기싸움은 끊이지 않았다.
싸움과 욕설은 금지였지만,
강해 보이고 싶은 본능만큼은
누구에게나 있었다.
누군가는 친화력으로,
누군가는 말솜씨로
자신을 드러냈다.
그중에서도 가장 원초적인 방식으로
강함을 증명하는 한 훈련병이 있었다.
탄탄한 몸을 드러낸 채
고개를 치켜들고 생활관을 돌아다니던 그는,
눈이 마주치는 훈련병마다 말없이 팔씨름을 신청했고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다.
그 모습은 다른 이들의 기를 꺾기에 충분했고,
그는 그렇게 자신의 강함을 증명하고 있었다.
다음 날,
드디어 화생방 훈련이 시작됐다.
하늘은 유난히 흐렸고,
공기는 싸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훈련병들은 모두
겁에 질린 얼굴로 훈련장에 모였다.
훈련은 6명씩 한 팀이 되어
함께 화생방실에 들어가는 방식이었다.
최루탄 가스를 견디며
모두가 방독면을 제대로 착용해야만
훈련이 끝난다.
단 한 명이라도 실패하면,
그가 끝낼 때까지
모두가 함께 고통을 버텨야 했다.
말 그대로, 전우애가 시험되는 순간이었다.
우리 팀에는
그 몸 좋고 팔씨름을 잘하던 훈련병이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내심 안도했다.
혹시 내가 흔들리더라도
그가 버텨주고, 도와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차례가 다가올수록
화생방실 안에서 들려오는 비명은 점점 선명해졌고,
문이 열릴 때마다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채
기침을 쏟아내며 뛰쳐나오는 훈련병들의 모습은
공포를 더욱 키웠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 차례가 되었다.
어둡고 가스로 가득 찬 공간.
방독면을 쓴 조교 두 명이
몽둥이를 든 채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입장할 때는 모두 방독면을 착용했지만,
조교의 지시에 따라
우리는 동시에 그것을 벗어야 했다.
그 순간,
가스가 폐 속 깊이 파고들었다.
눈은 타들어 갔고,
목은 찢어지는 듯했고,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그 고통은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조교의 지시 없이는
다시 방독면을 쓸 수 없었기에
우리 여섯 명은
발을 구르며, 기침을 쏟아내며
그 고통을 버티고 있었다.
그때였다.
그 누구보다 강해 보였던 그 훈련병이
살려달라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조교를 밀치고
밖으로 도망쳐버렸다.
나는 그 순간,
고통 속에서도 이상하게 웃음이 나올 뻔했다.
늘 강한 척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살려달라 외치며 도망치는 그의 뒷모습은
너무도 처절하고, 또 초라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대가는 우리 모두가 치러야 했다.
조교들이 그를 다시 끌고 들어올 때까지,
남아 있던 우리는
더 오랜 시간 가스를 견뎌야 했다.
결국 우리는
다른 팀보다 훨씬 긴 시간을
그 안에서 버텨야 했다.
훈련이 끝나고 밖으로 나오자,
서로의 얼굴에 물을 끼얹으며
가스를 씻어냈다.
눈물과 콧물,
그리고 숨이 뒤섞인 채
우리는 겨우 현실로 돌아왔다.
그날 밤, 생활관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그 훈련병의 얼굴을
잊을 수 없었다.
늘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던 표정은 사라지고,
마치 자신의 모든 약점을
세상 앞에 드러낸 사람처럼,
고개를 떨군 채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 표정에는
힘도, 위세도 없었다.
오직
수치심과, 무너진 자존심만이 남아 있었다.
그날 나는 깨달았다.
사람이 보여주던 ‘강함’이라는 것은
상황 하나로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진짜 강함은
남 앞에서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무너질 것 같은 순간에도
끝까지 버티는 데서 나온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