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면서 돈을 벌다
“캐릭터의 인과는 설정하기 귀찮고 참 성가셔.”
“맞아.”
“주인공의 결함이 어떤 사건을 만든다는 것도 이젠 진부하지.”
제일 힘들고 까다로운 부분을 콘텐츠 아이템이 대신 해결해 줬다. 나는 그런 도구로 이용되었다. 그런데 나의 이야기는 유저들이 만드는 이야기와 잘 통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가상’이라는 세계관을 대입하면 모든 것은 다 해결됐다. 현실에서는 인과성 결여로 일어날 수 없는 이야기들이 가상과 접목되면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로 탄생됐다. 거기에서 나는 나로서의 ‘의미’를 잃어버리게 됐다. 단지 가상의 세계관에 들어가기 위한 도구밖에 되지 않았다.
유저들은 새로운 부모 캐릭터를 창조했다. 야간 대학을 다녔던 아버지, 조용한 듯 가정을 지킨 어머니, 어려운 형편에서 태어난 아들, 그리고 그들의 삶은 매우 매력 없는 것, 그뿐이었다. 유저는 결과론적인 나 자신, 그리고 나의 운명을 받아들여야 하는 필연적인 나를 이제는 선택적인 나 자신으로 바꿔 놓았다. 내가 어떤 갈등과 문제에 봉착할 때마다 새 아버지와 새어머니를 만나게 해 줬다. 나는 갈등할 필요가 없어졌다. 상황 앞에서 유리한 선택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고뇌를 통해서 인식의 성장은 없었다. 유리함과 불리함의 사이에서 무엇이 더 효율적인 선택이냐 하는 확률의 문제만을 고민하는 내가 돼 버렸다. 그럼에도 나는 내 주인이 만든 이야기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근원을 상실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어떻게 하면 나는 인식 없이 그저 선택만 해서 돌아가는 유저에 의해 창조된 가상 세계관을 파괴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 내 나름대로 노력하려고 했다. 그러나 파괴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내가 유저들이 인식한 가상 캐릭터와의 만남을 거부하거나 갈등을 일으키려고 하면 그들은 과감하게 콘텐츠 접속을 그만뒀다.
“오늘은 좀 피곤하다. 내일 다시 하자고.”
“그래. 잘 안 풀리면 다른 콘텐츠 아이템을 사용하자.”
주인은 자신이 게임 회사의 놀면서 돈을 버는 게임의 도구로 전락해 버렸다는 사실을 아주 뒤늦게 알았다. 그가 선인세를 받자 책을 출판해 주겠다는 연락도 없었다. 애당초 청년들의 가독성을 높이겠다는 제안도 실현되지 않았다. 누군가 심어 놓은 아주 작은 창의성의 씨드로 게임 회사는 쉽게 유저들을 끌어모았고 유저는 콘텐츠를 설계하는 동안 다른 수익을 창출할 수 있었다. 게임만 한다고 걱정하는 부모들의 우려도 잠식할 수 있었다.
주인은 그녀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가 정말 누군가를 도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텍스트 일부를 이용할 수 있게 허락한 것이라고 항변했다. 그는 이야기에 의한 이야기를 직조하는 작가라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이 콘텐츠나 팔고 수익을 돕는 그런 매개 도구가 아니라고 문장을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면서 분노했다. 그는 글을 작성하고 이메일 보내기를 눌렀다. 그러나 그 이메일 계정은 회신이 불가능한 이메일 계정이라는 메시지가 컴퓨터 화면에 떴다.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예전처럼 아버지와 술잔을 기울이며 근원의 비밀을 알아가야 하겠다는 삶의 의지를 내세울 수도 없었다. 그는 어그러지고 깨진 이야기를 모두 회수해야 했다. 그는 책상 앞에 앉은 것이 아니라 집에서 가까운 콘텐츠 카페로 걸어 들어갔다. 돈을 충전하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돈벌이가 된다는 소문을 접하고 몰린 유저들로 카페는 문전성시를 이뤘다. 그는 나의 주인도, 작가도, 이야기꾼도 아닌 유저가 돼 내 앞에 나타났다.
내 주인은 나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가 선인세 명목으로 팔아 버린 이야기의 일부 텍스트가 제일 많이 활용되기 때문이었다. 그는 콘텐츠 프로그램의 안내에 따라서 기본 플롯을 설정했다.
그는 나를 기본 이야기로 설정했다. 그렇게 나는 주인을 만나게 됐다. 물론 나의 완벽한 전체가 아니라 그때 팔아넘긴 일부분의 텍스트인 채였다. 주인은 나를 찬찬히 살폈다. 자신의 세계가 깨진 그는 텍스트가 아닌 영상으로 이야기를 마주해야 하는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무척이나 힘들었다. 그러나 그는 인기 없고 맹맹한 이야기 사랑을 다시금 그의 방식으로 접목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도전해야 했다. 나를 찾아오기 위해서 도전해야 했다. 혹시 모를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나서 이 이야기로 돈을 번다면 거대 게임 회사 간부에게 다시금 나를 재구매할 수 있는 그런 것들을 잠깐 생각했다. 그는 이제 콘텐츠 아이템을 구매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