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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랑삼 Mar 16. 2021

게이샤 커피 라는 환상

보께떼엘리다 농장 견학기




세상에서 가장 비싼 커피데뷔




파나마의 서쪽 끝, 코스타리카와 경계한 산간 지방, 보께떼를 소개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한 가지가 있다.

2004년 파나마 커피 경쟁의 무대에 혜성같이 나타나 세계 커피 애호가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게이샤 커피'가 그 주인공이다. 보께떼는 게이샤 커피를 최초로 시장에 선보인 이후 스페셜티 원두를 생산하는 커피 산지로 큰 관심을 받고 있다. 등장 이후 게이샤 커피의 가격은 꾸준히 큰 폭으로 상승해 몇 해만에 세상에서 가장 비싼 커피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보께떼에서 생산된 게이샤 커피는
2019년 온라인 경매에서
454그램 당 1,000달러가 넘는 가격에 입찰되며 큰 화제가 되었다.
하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고
이듬해 1,300달러에 낙찰되며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파나마 게이샤 커피가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은 이유는 기본적으로 그 풍부하고 균형 잡힌 맛과 향에 있다. 오늘의 주제가 커피인 만큼 글로써 그 독특한 맛과 향을 표현해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미각 표현에 자신이 없단 걸 감안해 주시길 바란다.


게이샤 커피를 처음 받아 든 건 파나마의 카페 체인 '카페 우니도'에서였다. 커피 가득한 잔을 가까이 드니 선명한 향기가 느껴졌다. 머금은 첫 모금에 부드러운 단맛 시트릭한 맛이 난다. 나는 삼킨 뒤에 혀 끝에 남는 강렬한 신맛을 특히 좋아했다. 침이 가득 고다. 일반적으로 게이샤 커피의 특징은 쟈스민향과 꽃 향기가 풍부하다고 표현한다. 이곳 사람들은 아시아 사람들이 게이샤 커피를 유별나게 는 이유를 동양의 차 문화를 들었다. 무겁지 않고 향긋한 차의 풍미가 게샤 품종의 맛과 닮았을 거란 얘기었다. 나는 글쎄, 판매업자들이 굳이 날개돋힌 판매의 이유를 찾고 싶어서 가져다 붙인 게 동양의 특징으로 꼽히는 그것인 것 같았다.



일단 게이샤 커피의 데뷔로 커피업계는 크게 일렁였다. 커피 대회의 심사위원들은 참가자가 출품한 게이샤 커피를 음미하는데 집중해서 대회의 본질을 망각하는 지경에 이르렀다.(*참고 기사 첨부)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에서 가장 비싼 커피가 되었다. 게이샤 커피가 이 같은 후광을 입은 데에는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품종이 난데없이 '등장'해 정체된 커피업계자극과 기대감을 준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게이샤 종은 누군가에 의해 새롭게 '개발'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왜 어느 날 갑자기 그 존재감이 증명되었을까?




그 커피는 안 먹고 싶네 미니언즈




에티오피아의 게샤가

파나마의 게이샤 커피가 되기까지



게이샤 품종은 20세기 초반 에티오피아 게샤 마을에서 처음으로 발견되고, 수집됐다. 그리고 1950년대 코스타리카의 열대 농작물 연구소(CATIE)에서 이 종자를 보관하게 됐다. 그곳의 연구원이었던 파나마 사람 '돈 파치(Don Pachi)' 1963년 자신의 고향 보께떼에 종자를 심어보기로 한다. 돈 파치의 아들은 한 인터뷰에서 그 당시 아버지의 동료들은 그의 시도를 허튼짓이라고 조롱했다고 한다. (*관련 기사 첨부)

"파치, 너 미쳤어. 이 품종은 키우기도 까다롭고, 생산량은 낮고, 무엇보다도 커피 맛이 나지 않아!"

 



돈 파치는 들여온 씨앗을 보께떼 여러 농장에 나누어주었다. 하지만 게샤 종자를 끝까지 지켜낸 농가는 단 두 곳 밖에 없었다. 무시되던 낯선 품종의 나무는 당시 다른 종의 아라비카 커피나무들이 전범위적인 병충해 피해를 입던 시기에 빛을 발했다. 시들시들한 주변 나무 이파리들에 비해 게샤 종의 나무는 심각한 영향을 받지 않던 게 눈에 띄었다. 게다가 화산의 고지에서 자라난 게이샤 커피콩은 그 맛도 예사롭지 않았다.


우연한 시도와 위기 속에서  머나먼 거리와 긴 시간의 격차를 뛰어 넘어 동안 이 종자의 정수 끌어낼 만한 환경을 만난 것이다.

2004년, 파나마 보께떼 지역의 에스메랄다 농장 파나마 커피 대회에 처음으로 게이샤를 선보였다. 이 원두는 당시 다른 원두의 입찰액에 비해 열 배나 비싼 21불에 팔다.



파나마 커피산업은 위기에서 기회를 만났다.

쓸모없게 여겨지던 씨앗은 가공하지 않은 보석의 원석이었다.


*게샤Gesha가 게이샤Geisha가 된 기원에는 이동 과정에 문서상에 철자를 잘못 표기하는 바람에 게이샤가 됐다는 설이 있다.









엘리다 커피 농장 견학기



오늘도 우리 나이 많은 자동차, 흰둥이는 산 언덕배기를 오릅니다. 씽씽. 국도변엔 키 큰 가로수가 촘촘하게 서있고, 반대쪽 경사에는 채소밭이 들판인 듯 펼쳐져 있었다. 우린 '엘리다 에스테이트 커피'라고 그려진 나무 표지를 따라 들어갔다. 파란 하늘 아래 색색의 꽃나무가 우릴 반긴다. 길 끝에서 커피 공장에 딸린 카페 '바하리께'와 마주했다. 차를 세워두고,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섰다. 통유리로 된 카페 외벽을 통해서 일과가 시작되기 직전의 평화로운 농가의 풍경이 비쳤다. 주말의 늦은 아침 이불 속에서 발꼬락 움틀거게으른 고요함이다. 볕이 투과되는 반투명 슬레이트 지붕 아래에는 검게 쪼그라든 커피 열매가 펼쳐져 있다.



 

고무레질 따라 빨간 열매들이 오글오글 오그르르




농장 안내를 맡은 도미닉은 오래된 사진과 함께 그들 농장의 연혁과 기록부터 소개해나갔다. 그는 기다란 탁자 위에 전시된 커피백 두 봉지를 내보였다. 겉면 스티커에는 이 콩이 세운 지난 경매 기록이 적혀있다. 엘리다 농장은 파나마 커피 경쟁 무대인 '베스트 오브 파나마'에서 최고점 95.25을 받고, 그들의 게이샤 커피는 온라인 경매에서 기록적인 가격으로 낙찰됐다.

2018년 460그램 800불 입찰 최고가 경신
2019년 454그램 1029불 입찰 최고가 경신

투명 비닐 속의 영광의 상징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의 손을 탔는지 원래의 광택을 잃었다. 숫자 감이 둔한 나는 포장을 꼼지락 만지면서도 그 숫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선뜻 감을 잡지 못했다. 백만 원짜리 커피콩을 전시용으로 쓰긴 아까웠겠다, 아무 커피콩에다가 비닐 포장을 씌우고 천 불이다 써놓아도 난 몰랐을 텐데. 도미닉이 의도한 바와 전혀 상관없는 생각들만 든다.




한 번에 20그램의 원두를 쓴다면, 이 게이샤 콩으로 만든 커피 한 잔은 그 원두 가격만 45달러




우린 도미닉을 따라 농장 속으로 들어갔다. 농장은 1600미터에서 더 높은 산허리까지 올라갔고, 커피나무와 함께 아보카도와 라임 나무, '토마토 나무' 등이 섞여 자라서 밭보다는 숲에 있는 기분이 들었다.  촘촘한 커피나무 숲 사이사이로 조롱조롱 열린 빨간 열매들이 보인다. 열매를 보니 커피 밭에 온 게 실감 난다. 초록 이파리만 보였다면 이곳이 커피 농장인지 뭔지 감흥이 없었을 것이다. 팔랑팔랑 기분이 들떴다. 생각해보 한국의 스타벅스 벽면엔 꼭 이런 농장 풍경이 걸려 있었. - 짙은 녹색 이파리와 대비되는 새빨간 커피 체리, 드넓은 언덕 가득 물결치는 커피 밭 그리고 커피를 수확하는 인디헤나의 투박한 손이 감각적으로. 카페에 앉아 이따금 액자 속 풍경 상했다.



커피숍은 왜 그 사진을 선택했을까,

무슨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을까?

지금 내가 액자 속 세상에 들어와 있다. 

환상이 현실이 되자 액자 밖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모든 커피 열매가 빨갛지 않다, 어떤 가지엔 노란 체리만 가득 열린다.

커피 꽃은 하얀색이다. 가냘픈 흰 꽃의 향 아주 진하다.

지금 보니 커피를 따던 손의 주인공은 그 노동으로 많은 돈을 벌지는 못 했을 것다.











포대자루가 척척척




준비된 커리큘럼에 따라 설명을 이어가던 도미닉의 흐름은 번번이 끊어졌다. 물어볼 거리가 많았다. 커피를 매일같이 마시는데 비해 앎이 이렇게 얕다니! 도미닉은 티피카, 카추아이, 게이샤 세 품종의 커피나무를 지날 때마다 커피 체리를 하나씩 따서 입에 넣어보도록 권했다. 아빠 손톱만 한 열매는 꽤 단단한 느낌이 들었다. 엄지와 검지로 열매를 쥐고 짓이겼다. 붉은 껍질에서 속 알이 미끄러지면서 분리되어 나왔다. 투명한 베이지색 점액으로 감싸인 열매의 씨를 혀 위에 얹었다. 달다. 입안에 돌돌 굴리다 씨는 뱉어냈다.

커피 열매는 달구나, 맛있다. 특히 게이샤 종의 체리가 다른 두 종에 비해 더 크고, 과즙도 풍부하고, 단맛이 도드라졌다. 두두는 참아온 질문을 던졌다.



도미닉, 그래서 말이야. 보께떼의 게이샤 원두가 특별한 이유가 뭐야?

코스타리카도 콜롬비아도 게이샤는 있고, 커피벨트의 환경은 비슷하지 않아?



좋은 질문이야. 도미닉은 기다렸다는 듯 침착하게 응수했다. 파나마 게이샤가 특별한 이유를 하나씩 내놓았다. 그에 따르면 게이샤는 다른 종에 비해 재배가 까다롭다. 쬐는 볕과 거센 바람 앞에 놓인 나무는 열매가 검게 말라버린다. 농장에서는 게이샤만을 위한 국지적 환정을 조성해야 한다.

또 게이샤의 맛은 자연환경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 파치의 동료들이 게이샤종의 커피가 맛이 없다고 했던 이유도 적합한 환경을 찾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보께떼의 경작자들은 2000미터의 높은 고도에 가까이 갈수록 독특한 향미가 발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바루 화산에 위치한 높은 고도뿐만 아니라 젊은 화산이 만들어낸 영양분이 풍부한 토질, 태평양과 대서양 사이 지속적으로 지나는 습기와 바하레께(보께떼 지방의 안개비) 등 보께떼 지방이 충족시키는 조건들 덕분에 풍부하고 균형 잡힌 맛과 향의 게이샤 커피를 재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안타갑게도 의문 완전히 사라지지않았다. 그의 설명 또한 보께떼 게이샤에 대한 환상을 만들려는 시도처럼 느껴졌다. 지난해 1파운드에 1300달러에 팔린 게이샤 커피의 맛은 15불에 팔리는 도시 마트의 원두보다 80배는 더 맛있을까? 전날 보께떼 커피숍에서 내려준 7불짜리 게이샤 드롭보다 맛이 좋을까?  최고가의 커피를 앞에 두고 이런 가성비 정신이라니. - 두두의 단골 멘트가 생각난다. 세상에 너 같은 사람만 있으면 경제는 벌써 망했어. 

물론 가장 고가로 팔린 게이샤 원두는 우리보다는 5만 원을 5천 원처럼 쓰는 소비자, 커피 한 잔에서 비용 이상의 가치와 만족감을 뽑아내는 사람들이 선택할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의심도 게이샤 커피가 쓴 왕관의 무게 아닐까.



우리는 도미닉을 따라 공장으로 들어갔다. 시설 곳곳에 커피체리를 탈피시키고, 건조, 발효시키는 장비와 기계들이 구석구석마다 자리했다. 시멘트 바닥은 체리를 분리하고 숙성하는 과정에서 흐른 과즙으로 검붉은 얼룩이 져있다. 공장 둘레로 시큼한 식초 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이 지역의 토착 민족인 나베 부글레 사람들은 부지런하게 움직이며 엄청난 양의 수확물을 대형 기계에 부어 넣고 있었다. 인부들의 움직임과 기계의 소음으로 부산스러운 중에도 도미닉은 열매가 커피 원두로 변하는 과정을 설명했다.




너희가 그렇게 유명하다며? 커피 게이샤 체리




견학의 마지막 코스, 커핑cupping까지 끝내고 우리는 다시 카페로 돌아왔다. 도미닉은 곧장 카운터 뒤로 들어가 서며, 커핑 때 맛본 원두들을 여기서 구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두두는 조금 고민하더니 카투아이 커피빈 두 봉지를 집었다. 게이샤를 고르지 않는 게 이상했던지 도미닉은 20퍼센트 할인해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런데 무슨 반골 기질인지 훌륭한 재배 및 작업 환경에 대한 2시간의 투어를 하고도 게이샤 커피를 고르지 않았다.



안 사면 후회할까? 생각의 깊은 곳에서 어슴푸레 다른 소리가 들렸다. 오늘만큼은 게이샤 커피의 환상을 사고 싶지 않다. 농장 투어로 얻은 견문이 그 커피를 사야 하는 구실로 작용할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투어의 경험은 커피를 둘러싼 겹겹의 환상을 거둬내고 고가 커피 산업의 알맹이를 더 선명하게 보도록 도왔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따위의 수식어로 얻는 프레이밍 효과, 생산량 부족으로 생기는 희소성 원리는 이 커피의 가격이 오르도록 견인하고 있어 보였다. 그러다 문득, 그렇게 벌어들인 수익이 생산에 기여한 모든 사람들에게 정당하게 돌아갔을까? 하는 질문이 든다. 감히 판단하건대 내가 보고 느낀 액자 밖의 현실은 그렇지 않아 보였다.



나는 투어 끝에 결국 게이샤 커피를 선택하지 않았지만, 파나마 커피농장들이 커피에 기울이는 세심한 관심, 섬세한 조율, 지속적인 연구와 시도를 의심하지 않는다. 게이샤 커피를 스페셜티까지 끌어올린 그들의 안목과 도전정신은 오히려 나에게 자극이 되었다. 하지만 다시 게이샤 커피를 마신다면, 그땐 이전과는 완전 달라진 이유로 찾게 될 것 같다.

커피 잔 가득 부드러운 꽃향기가 그리운 날에 또 한 번의 잊을 수 없는 경험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요즘 커피숍엔 어떤 그림이 있나요





참고 자료 첨부:


https://www.excelenciaspanama.com/economia-entrevistas/el-cafe-geisha-entra-panama-de-la-mano-de-don-pachi-estate-una-finca

https://perfectdailygrind.com/2015/06/what-is-panama-geisha-the-reality-of-a-fantasy-bean/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7091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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