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붙인 이름, 나만의 정의
'코스타 리카'라고 말하고 나면 남몰래 유치함이 발동한다. 코스타리카(공식 국호 Republic of Costa Rica)는 스페인어 'costa 해안'과 'rica 풍부함'이 합쳐져 '아름다운 해안' 내지는 '풍부한 해안'이라는 뜻을 지닌다. 단어의 의미뿐 아니라 띄어쓰기 법칙도 적용이 되어 우연히 발생한 조합이 아니라 의도된 작명일 것 같다. 주어진 의미가 그러하다 보니 이 나라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 그 아름다움에 자동적으로 찬동하는 셈이다. 스페인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들은 이 지명의 작명법이 어색하게 느껴지지는 않을까.
'저번 휴가에 코스타리카(나라명)에서 어떤 코스타리카('아름다운 해변')에 갔어!'
혹은 짓궂은 아이처럼 친구 이름으로 별명을 짓고 놀리지는 않을까. '아름다운 해안'이 아닌 코스타말라 (Costa Mala, '못생긴 해변')라든가, 코스타 보니따 (Costa Bonita, '예쁜 해변'), 코스토 리코 (Costo Rico , '비싼 가격')처럼 말이다. 한국 초딩 시절의 놀이가 지구를 반 바퀴 돌아 스페인어 '코스타리카'에서 떠올랐다. 생각해보면 어린 날에 우린 이름 자 하나로 별의별 별명들이 다 만들어냈다. 전국의 '이상희'들은 '이상해'로 한 번쯤 불렸고, 손 씨 성의 아이들은 '발'씨로 창씨개명, '최고다'는 '최따봉'으로, 남편 두두는 단지 이름의 '두'자 덕에 '둘리'로 국민학교를 보냈다. 아참 한때 난 참새였다. 이름에 '세'자를 가졌고 키가 작았다.
코스타리카의 지명에 대해 얘기하니 생각나는 게 있다. 한 날은 집에 에어컨 청소를 하는 무차초(스페인어 '젊은이', '젊은 친구')가 방문했다. 가벼운 이야기가 오고 가던 중에 그가 내 이름을 물었다. 나는 또박또박 이름 석 자를 말했다. 그는 즉각 그 이름의 의미가 있냐고 물었다. 이 대륙에서 이름의 의미를 묻는 사람은 처음으로 만났다. 이곳 사람들의 이름은 주로 성인의 이름을 따와서 붙였다. 너무 많은 호세와 까를로스 마리아가 한 동네에 살고 있다. 이름의 뜻을 굳이 묻지 않아도 됐다.
나는 세상을 즐겁게 하는 사람이야.
한자로 된 이름 두 자를 스페인어로 풀어놓고 보니, 아주 아주 옛날 영웅 서사시에 나올 것 같은 자기소개 같았다. 영웅 놀이에 빠진 덕후스럽다가도, 이름 풀이가 마치 나 자신인 듯 꽤 멋지게 보였다. 오늘 하루도 세상에 즐거움을 더해야 하는 소명을 가진 히어로처럼.
한국에는 지명과 호칭에 표의문자인 한자가 많이 사용한다. 글자 속에 뜻이 숨겨져 있다 보니 사랑과 희망을 담은 이름의 의미는 에둘러 전달되거나 오히려 소통을 방해하는 것 같은 오해가 들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아름다운 해변'의 코스타리카를 생각하면 조금 유치해도, 당차고 로맨틱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국호로 그들의 감성과 정체성을 표현하고 표기하고 있다.
코스타 리카의 의미는 분명해 보이지만 지명으로 불리게 된 연원에는 사실 두 가지 가설이 존재한다. 그 땅의 선주민의 언어에서 기원했다는 설과 스페인 정복기에 그 땅을 바라보던 개척자들의 시각에서 비롯됐다는 설이다. 후자의 경우라면 '코스타 리카'라는 이름은 로맨틱에서 거리가 멀어진다. 그 이름은 푸에르토 리코('부유한 항구')처럼 지독한 약탈의 시대를 반영하며, 아름다운 해변을 전달하기보단 '(금이) 풍부한 해변'으로 해석되었을 것이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그의 네 번째이자 마지막 항해 동안 현재 코스타리카 땅의 캐리비안 해안에 닿았다. 그는 해안가에 정박해 배를 수리하고, 피로를 풀었다. 그리고 그곳의 선주민과 첫 대면이 이뤄졌다. 그들은 서로 다른 언어를 말했지만 대화는 금방 통했다. 흰 피부에 큰 배를 타고 내린 인간은 걸친 것이 많이 없는 이의 몸에서 빛나는 광물을 가리켰다. 선주민은 그의 말을 금세 이해했다. '아, 이 금이 어디에 있냐고?' 목적이 분명하면 표현의 수단인 언어는 장벽이 될 수 없었다.
선주민들은 금과 광물이 나는 지역을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콜럼버스는 스페인의 왕과 왕비에게 엄청난 금을 가진 사람들을 만났다고 편지를 썼다. 이후 몰려든 개척자들은 이 땅을 코스타 리카라고 부르게 됐다. 한 학자는 당시 가장 큰 선주민 집단인 우에타르(huetar)의 언어에 '꼬께리께' '꼬께리까' '코따께리께'라는 단어가 있었고, 그것이 스페인어화 되어 지금의 코스타리카가 만들어졌다고 주장했다. 이유가 어찌 됐건 파도에 흔들리는 갑판에서 서서 점점 가까워지는 밀림과 해안을 응시하던 유럽 대륙의 사람들은 이 땅이 그들을 엄청난 부자로 만들어 줄 거라고 멋대로 상상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코스타리카는 그러한 믿음에 상응하는 이름이었다.
2018년 중미에 긴 우기가 끝나가는 무렵, 나는 코스타리카에 첫 발을 디뎠다. 바닷길이 아닌 하늘길을 따라, 모래사장이 아닌 여권에 발도장을 꽝하고 찍었다. '아름다운 해변'에 도착했지만, 소금기 머금은 눅진한 바닷바람은 불지 않았다. 대신 청량한 공기를 헤치며 걸었고 오랜만에 느끼는 냉기에 몸을 떨었다. 꼭 열대 해안도시 파나마 시티에 평생을 살다가 처음으로 추위를 처음 경험하는 사람 같았다. 중미에 이런 나라가 다 있네. 중미 대륙을 다 아는 것처럼 지냈는가 보다.
천 미터가 넘는 고지의 분지 안에 자리 잡은 수도 산 호세, 높은 산 능선이 동쪽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산봉우리에 진로가 막힌 구름들이 가득 뭉쳐있었다. 그 덕에 도시 위 하늘을 새파랗게 맑았다. 나와 남편은 허츠에서 빌린 SUV를 타고 중부 내륙 산악 마을을 거쳐 태평양 해안가 마을을 둘러서 다시 수도 산호세로 돌아오며 일정을 끝냈다. 우리는 반갑지 않은 파나마의 습기와 더위에 진절머리를 내며 에어컨을 켰다.
곧바로 캐리어를 개봉했다. 묵은 빨래 뭉치가 흩어져 있었다. 짐꾸러미 사이에서 이번 여행의 기념품들을 건져냈다. 돈을 주고 정당하게 취득한 것들이었다. 하나하나 보기 좋게 식탁 위에 진열됐다. 커피 네 봉, 술 두 병, 책 한 권. 이게 다가 아니다. SD카드에 저장된 수천 개의 파일을 컴퓨터 하드로 옮겼다. 김영하 작가의 산문 <여행의 이유>에서 보았듯 여행자의 노획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갖은 모양의 화산 아래의 숲과 들판의 흙길, 길에서 만난 야생동물들, 계곡과 호수 그리고 해변가 풍경. 나의 금은 이런 것들이었다. 한 장 한 장 사진을 넘기며 나의 첫 번째 코스타리카를 정리했다. 내가 이 땅에 이름을 준다면 '코스타 리카'는 아닐 것 같았다. 땅의 기운이 아직은 생생한 사진을 보며 내가 부여할 이름, 나만의 정의를 찾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