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 전 까진, 춤 잘 추게 해주는 마법의 약
웹툰 작가 이말년은 알보칠을 춤 잘 추게 해주는 마법의 약이라고 표현했다. '춤 잘 추게 하는 마법의 약'을 무심코 마시는 인물은 곧 이어 이말년표 특유의 음성어 '갸아악'을 외치며 헤드스핀을 춘다. 그 장면을 보며 고통을 저리도 섬세하고 직설적으로 표현해내는 작가의 센스에 감탄했고, 한 편으로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하는 내 무모한 호기심에 스스로가 혀를 내둘렀다. 정말 움직이지 않고서는 못 버티는 고통일까, 사실은 그렇게 아프지 않은데 희화적인 모습을 위해서 과장된 것은 아닐까 생각하다 포기했다. 브레이크 댄스를 추지 못 할 뿐더러, 어떤 느낌일지 알고자 일부로 구내염을 만들 이유는 더더욱 없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누가 호기심 때문에 스스로 고통을 만드는 어리석은 행동을 저지른단 말인가. 그런데 중요한 건 나는 구내염이 꽤 자주 나는 인물이라는 것이고, 머지않아 나는 내 호기심을 해결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좌절)
입술이나 혀를 깨물면 어른들이 농담삼아 자주 하시는 말씀이다. 맛있는 걸 나누어주지 않고, 혼자만 맛있게 먹으면 깨문다는 다분히 인과응보적인 옛 이야기인데, 어릴 적에는 저 말을 듣는 것이 어찌나 억울했는지... 그때의 억울함은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기억의 한 편에서 나를 향해 입꼬리를 올린다. 신나게 밥을 먹다가 '아!' 하는 짧은 비명과 함께 젓가락을 내려놓고 미간을 찌푸린다. 입술 안쪽을 깨물었다. 눈물이 찔끔 감은 두 눈 사이로 그렁거리며 반사적으로 귓가엔 어른들이 놀리는 이야기가 울린다. 그러면 속으로 세상 억울한 감정을 꾹꾹 눌러담아 '으그 은므슸는드...(이거 안맛있는데..)' 하며 반문을 한다. 나 혼자만 먹은 것도 아니고, 왜 나만 깨무냔말야. 그 순간 만큼은 누구보다 제일 억울한 감정을 마음 속으로 삭힌다. 남에게 말한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으니 말이다. 속으로만 삭히는데 저 입 안 쪽에서 피 맛이 흘러나온다. 비릿한 맛이며, 진짜 아프게 깨물었다고 확인까지 시켜주는 비열한 맛이다. 그래도 밥은 마저 먹어야지하며 정신을 차리고 먹다보면 참 잔인하게도 깨물었던 곳을 또 깨문다. 그럼 정말 억울함에 억울함이 씌어져 제곱이 되어버린다. 그렇게 두어 번 정도 같은 곳을 깨물면,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식사가 끝이 난다. 그래서 나는 한 번 구내염이 생기면 굉장히 깊고 주변에 여러 상처들이 옹기종이 모이는 모습을 띈다.
구내염이 나면 미련하게 참으며 지냈다. 아파하며 시간을 보내다보면 어느 순간 스스로가 상처에 신경을 안 쓰는 때가 온다. '어? 아팠나..' 라고 느끼면 깊게 파여있던 곳은 새 살이 돋아 덮어주고 있는 것이다. 상처가 있으면 있는대로 미련하게 내버려두고 관심을 갖지 않으면, 어느 순간 본인 조차도 아팠다는 것을 모를 만큼 낫는 순간이 온다. 그런데 이게 나이가 먹을수록 신경을 끄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상처를 무심하게 내버려 둔 어릴 때 보다 훨씬 바쁘고 치열하지만, 내게 난 작은 상처 하나를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왜 그러지, 무심하게 내버려 둘 만큼 바쁜데 말이다.
계속 혀로 구내염을 쿡쿡 건드려보고 아파한다. 나 아픈거 맞냐고 재차 묻는다. 내가 상처를 찌르고선 아프다며 칭얼댄다. 남에게 말 못하니, 나라도 들어달라며. 그러다 보니 나을 틈을 주지 않는다. 혀로 구내염을 만질 때마다 너의 아픔이 이곳에 있단다하며 상기시키고, 나도 모르게 신경이 쓰이니 또 깊게 패인 상처를 깨물곤 한다. 그래서 이젠 약을 찾게 된다. '춤 잘 추게 하는 마법의 약' 아니, '그래 맞어! 너 존X 아파!'라고 스스로에게 대답해주는 그런 약을.
알보칠의 뚜껑을 열어 면봉에 가득 묻힌다. 한 번에 이 아픔을 끝내야 한다. 혹여나 면봉에 너무 스며들여 약이 안나오면 안되니 한 번더 끝까지 묻힌다. 하얀 면봉이 선홍빛으로 물들면 1차 준비가 끝난다. 이제 거울 앞에 서자. 거울 앞의 비장한 표정인지 무서워서 얼어있는 건지 모르는 얼굴을 마주한다. 2차 준비다. 왼 손으로 입술을 치켜 든다. 그동안 감춰진 채 아프다고 소리친 상처가 모습을 드러낸다. '나 정말 아팠구나. 참 깊게도, 많이도 났구나' 이정도로 심한지 모르고 외면하기 바빴던 상처를 두 눈으로 보니 그제야 칭얼대는 내 자신이 이해가 된다. 이제 너 진짜 아팠다고 말해줄게. 면봉을 집어들어 서서히 움직인다. 오른손을 멈추면 난 다시 준비 할 자신이 없다. 이 진보적인 오른손은 계속 전진시켜야 하고, 나는 마음의 준비를 단디 해야 한다. 이건 마치 자이로드롭 가장 정상에서 떨어지기를 기다리며 하는 마음의 준비같다. 자이로드롭이 떨어지는 것은 내가 막을 수 없으며, 떨어져야 끝이난다. 나는 준비만 하는거야. (쿡-)
(잠시 글이 써지지 않는다)
Opacity(불투명도) 50% 정도의 상처가 100%로 하얗게 변해간다. 경찰이 사고 현장을 표시하여 원점을 보존하는 것 처럼 나의 상처가 하얗게 보존된다. '너 여기 아팠어~' 라고 표시되니 이제야 마음이 풀렸는지 눈물이 핑- 돈다. 내 머리도 핑 돌며 자연스러운 신음이 나온다. 으-! 아프다, 정말 아프다. 입술에서 느껴지는 고통이 아니라 입 안 상처 바로 옆 어금니의 뿌리, 그 깊은 곳에서부터 꾸욱 쑤셔온다. 이빨을 쎄게 물으며 고통을 참아보려 애쓰지만 곧 이어 머리까지 고통이 전해진다. "와. 이거 미쳤는데. 브레이크 댄스라도 추어야겠는데" 정말 그렇다. 머리로 헤드스핀이라도 해야지 내가 살 것 같았다. 그렇게 한 바탕 춤을 출지 말지 고민하다보면 정신이 맑아진다. 안도의 한 숨을 내쉰다. 개운하다 못해 시원하다. 멋지게 참아낸 내 자신이 뿌듯하게 느껴진다. 이제 길고 길었던 상처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 참 오래도 참았네, 이렇게 금방 될 것을.
살다 보면 알보칠 같은 약이 필요하다. 아무리 무심하게 지나치려고 애써도, 나도 모르게 내가 계속 찔르는 상처가 있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무시하면 낫는다고 고개를 돌려도, 마음 한 켠에선 계속 그 상처를 꺼내려 한다. 나 아프지 않다고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가끔은 상처를 드러내주고, 너 아픈 거 맞다고 대답해주는 약이 필요하다. 고생했다고 이제 쉬라고 해줄. 알보칠은 다소 악마같지만 사실 따뜻한 약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