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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삼 Sep 06. 2019

나의 카메라 유랑기

그래서 결국 뭐로 샀다고?

 얼마전 새로운 똑딱이를 들였다. 똑딱이로 시작한 여정이 똑딱이로 돌아온 것이며, ‘결국, 마침내' 라는 수식어가 붙기에 적절히 긴 유랑이었다. 그 유랑기에 대해서 주절히 써보려고 한다. 미리 일러두는데 큰 영양가는 없다. 카메라 선택의 가이드라인은 기대하면 안된다. 그렇지만 적어도 오천이백만 대한민국 국민 중엔 나와 비슷한 고민에 앓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없더라도 곧 맞딱뜨리게 될 주제이다. 그들에게 최소한의 작은 단서를 주기 바라는 마음 3%와, 그냥 내가 사용한 카메라들을 추억하고 싶은 마음 90%를 담았다. 나머지 7%는 내가 떠나보낸 카메라들에 대한 위로의 마음을 담았다.



'유랑이 뭐야'

 나의 최초의 카메라는 똑딱이였다. 똑딱이, 말 그래도 작은 크기에 똑딱하고 사진이 찍힌다고 해서 붙여진 애칭이다. 외국에서는 POINT AND SHOOT 카메라고 부르는 것을 한국식 표현으로 바꾼 것이다. 흔히 콤팩트 카메라 혹은 디카(광범위하겠지만)로 통용되곤 한다. 나의 시작은 니콘 쿨픽스이고 지금은 단종되었다. 직접 구매한 것 같진 않고 누나가 사용하던 걸 내가 이어 받지 않았나 싶다. 은색의 바디에 유선형 곡선이 있었다. 사진을 찍고 한참을 기다려야 디스플레이에 사진이 나타났다. 언제, 어떤 모습으로 카메라를 들고 다녔는지. 무엇을 찍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은색의 유선형 몸체, 사진을 찍으면 한참의 시간 후에 보여주었던 카메라라고 기억 할 뿐이다. 그리고 어디에 두었는지도 기억나지 않아, 집에는 빈 박스만 굴러다닐 뿐이다.



'떠나볼까?' 

 그 후에 나를 거쳐간 카메라는, 파나소닉 사의 루믹스 GX-1 이다. 그즈음 나는 꽤 많은 대학입학 장학금을 받을 기회가 있었고, 머리털 나고 통장에 찍힌 6자리의 0은 처음이었기에 무턱대로 비싼 기계였던 카메라에 일부 사용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과는 다르게 20살의 난 백 단위의 돈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몰랐다. 경제관념이 없는 와중에 큰 돈을 받으니, 뭐라도 사야될 것 같은 생각이었다. 만약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기계가 있다고 하면, 당장 저 때로 돌아가 속삭여주고 싶다. ‘비트코인을 사놔’

 그렇게 0 몇 개를 희생시켰다. 나는 다른 스펙들은 보지 않은 채 많은 버튼들과 투박한 디자인, 흡사 SLR과 같은 레트로한 모습에 호감이 갔다. 그리고 내 기억이 맞다면 그때가 렌즈교환식 미러리스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중이었고, 구매한 GX-1 또한 미러리스 모델의 제품이었다. 첫 미러리스를 통해, 가까운 곳에 초점을 맞추며 아웃포커싱이 무엇인지 깨닫고, 렌즈를 교환할 때 나는 '찰칵, 철컥, 츠르륵' 소리 따위에 매료되어 있었다. 심도와 조리개에 대한 이해, 그리고 렌즈 교환의 매력에 빠지기 시작하며 멋진 대학생이라면 필수 아이템  DSLR이란 것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아주 자연스러운 눈독 아니겠는가.



'저기로 가볼래!'

 입문자였던 난 너무나 많은 라인업이 존재했던 DSLR을 쉽사리 결정치 못했다. 캐논 계열이 따뜻한 표현을 한다는 정보를 들었고 그 당시엔 700D, 중급기로 60D가 유명했던 시기였다(고급기는 생각도 못했다, 돈도 없고 처음부터 고급을 다룰 자신도 없었다). 입문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보급기에 눈이 갔고, 친구의 추천으로 첫 DSLR을 중고로 들이게 되었다. 서울에서 직접 수원까지 내려가서 거래했다. 서울서 가기 꽤나 먼 거리였음에도 '데세랄'에 취해 무작정 거래하게 되었다. 구매 후 변변치 않은 번들렌즈의 모습에 ‘DSLR이라 다른 줄 알았는데, 원래 이런 건가’ 싶다가 렌즈를 교체하면 퀄리티가 올라간다는 소리에 쩜팔렌즈(50mm f1.8)를 구매하였다. 반신반의 하던 와중에, 밝은 렌즈로 인한 아웃포커싱의 세계를 맛보았고, 곧 인물까지 찍기 시작했다. 인물 사진의 구도에 대해 고민하던 중, 전천후 밝은 조리개값을 통한 심도 표현을 위해 탐론 국민렌즈(1750 f2.8)를 구매했다. 확실히 국민렌즈를 사용하면서 부터 DSLR을 통한 사진 촬영에 재미가 붙고 있었다. 출사를 자주 떠나진 않아도, 종종 친구들과 놀러 다닐 때 카메라를 이고 가곤 했다. 그러다 무슨 바람이 불어, 혼자서 커대한 삼각대를 이고 통영으로 갔다. 그곳에서 DSLR을 통해 Hyperlaps 따위를 촬영하기도 하였고, 뜨는 일출을 바라보며 사진셔터를 누르기도 하였다. 삼각대를 활용한 촬영과 노을 찍으면서 AF, MF 구도 등 다양한 것들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서울로 돌아오며 생각했다. '이정도면 실력 많이 늘었겠다’고. 이전부터 첫 데세랄인 만큼 여러 강의를 들으며 사진을 제대로 배우고자 노력했다. 무언가 'DSLR'이란 단어 자체가 '본격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그 본격적 사진 촬영을 통해 많은 것을 알거나 배울 수 있었고 구도에 대한 감도 꽤나 잡을 수 있었다. 2011년에 발매한 구형 모델이었지만 어떤 렌즈를 쓰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랐다. 이 때 깨달은 사실은, 카메라 바디는 어차피 다 고만고만, 결국 카메라는 렌즈가 전부다.

 러닝커브가 완만해지고, 데세랄의 거대한 부피와 무게에 대한 부담으로 인해 자주 들고다니진 못했다. 집에 모셔 놓고 영상 촬영을 하거나 가끔 출사, 혹은 촬영을 해달라는 부탁을 먼지를 털어내며 꺼내곤 하였다. 대학교 4학년 까지 잘 사용하다가 군입대를 하며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군인으로 일을 시작한 이후, 카메라를 꺼내는 일은 더욱 손에 꼽고 꼽았다. 그럴 것이 부대에서는 외부 카메라는 보안상의 이유로 반입은 꿈도 꿀 수 없으며, 그렇다고 카메라를 가지고 굳이 춘천으로 갈 일은 없었다. 출사를 가지도 않을 뿐더러, 찍고 싶은 맘도 없었다. 아니 반대로 찍고 싶은 맘이 없으니, 출사를 갈 이유도 없었다. 그런 마음이 밀물-썰물 마냥 반복하는 와중에 서서히 전역이란 것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그 싱숭생숭해진 마음에 유튜버라는 작은 모래들이 퇴적되기 시작했다. 혹시 모를 영상 소스 촬영을 위해 먼지가 켜켜이 쌓인 DSLR을 춘천으로 가져왔고, 다시 사용하기 시작했다. 19년 초, 유튜버 빅뱅이 터지며 이런 말이 돌기 시작했다. ‘사진은 캐논, 영상은 소니’ 그와 동시에 풀프레임 미러리스의 선두인 A7M3의 붐에 따라, 두 가지 키워드가 머릿 속에 모래를 쌓기 시작했다.

 하나는 ‘소니’였고, 다른 하나는 ‘미러리스’ 

CANON 600D과 tamron 1750 f2.8 , 펜으로 그렸다.






'아.. 그렇구나'

 더 이상 미러리스 전용 렌즈가 없거나 판형이 작다는 등의 이유로, 미러리스가 무시받는 시기가 아니었다. 풀프레임 미러리스라는 거대한 시장을 소니가 선두하기 시작했고, 많은 사진 작가들이 실제로 사용하며 이를 증명해주었다. 여전히 유튜버에 약간의 퇴적된 꿈을 꾸고 있었고, 부모님과의 여행에서 멋진 사진을 남겨주고 싶단 생각이 맞물려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시작했다. 틸트 액정과 4K 촬영 제한 해제를 지닌 (당시) 최고의 유튜버용 카메라로 많이 알려져 있던 SONY a6400가 시야에 들어왔고, 구매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품귀현상마저 벌어지고 말았다. 정가보다 10만원 높게 책정이 된 가격대. 결국 여행이 다가옴에 따라 조금이라도 가격이 내려갔을때, 그러니깐 정가보다 조금 더 비쌀 때. 할부로 구매했다. (그리고 몇 달 후 정가보다 20만원 가량 낮은 가격으로 판매중에 있다)

 사고자 하는 것이 머릿속에 한번 들어오면 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당시 a6400에 선예도가 좋기로 유명한 칼자이스 sel1670z을 물린 계획이었으므로, 약 180만원(120 바디 + 60 렌즈) 가까이 소비가 예정되어 있었다. 고민해결의 약간의 실마리를 위해 두 그룹의 친구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과한 긍정의 친구은 자기도 크롭바디를 계속 사용하다가 이번에 소니 풀프레임으로 넘어가려 한다며, 결국 풀프레임으로 넘어가게 될 테니 조금 더 무리해서 풀프레임을 구매하라 하였다. 사실 이 조언에는 크게 동요하지 못했다. 첫 째는 A7M3는 바디만 200만원에 달했고, 사진을 전문적인 취미로 하지 않으므로 바디 하나에 그 큰 금액을 투자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둘 째는, 카메라 바디는 어차피 고만고만, 결국 렌즈가 전부라는 생각. 크롭 미러리스여도 렌즈가 중요하니, 차액으로 더 좋은 렌즈를 구매하자고 생각했다. 지금 쓰면서 다시 그때를 곱씹으니, 만약 A7M3를 구매했다면 난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격하게 추천한 친구에게 약간은 무서워졌다.

 이제 나머지 한 그룹인 부정그룹에서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다. 너는 평소에 카메라를 가지고 잘 안나가지 않느냐, 너가 일주일에 3번이라도 사진 찍으려 나간다면, 즉 열정적인 취미라면 구매하는 걸 비싸더라도 추천하겠다. 이 현실적인 조언에는 크게 부정하지 못했다. 모두 맞는 말이었다. "아니 DSLR은 너무 무거워서, 그래도 이건 미러리스니깐 휴대성이 올라갔으니, 가지고 다닐거야" 작은 목소리로 작은 부정을 뱉었고, 앞서 적은 대로 머리 속에 들어온 소니 a6400와 칼자이스 1670렌즈는 결국 머리가 아닌 내 방에 자리하게 되었다. 그리고 부정적 그룹의 조언을 증명이라도 하듯 사용 빈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해외로 여행을 가는 등 반드시 필요한 상황에야 가져가지, 그렇지 않고 서울을 돌아다닐 땐 챙긴적이 한 번 도 없었다. 단, 한 번 도. 미러리스 없이도 iPhoneX로도 모든 걸 담기에 충~분 했다. 미러리스, 미러리스리스.

 전역후 해외로 여행을 가게 되었다. 여행이라는 키워드가 붙었으므로 의무적으로 a6400을 챙겼다. ‘오늘 많이 걷나? 너무 더운데, 카메라 챙겨야하나’, ‘오늘 가는데 어디야? 아, 그럼 사진 찍어야하나’ 날이 무척 더웠으므로 목에 걸기도 힘들고, 크로스백에 넣자니 무게와 카메라 보호에 신경이 쓰였다. 여행을 기록하자는 의도로 가져간 미러리스가 어느새 귀찮고 챙기기 싫은 짐으로 바뀌어졌다. 카메라가 부재한 일상을 아이폰으로 채워지며, 사진에 대한 취향이 점차 확고해졌다. 10.0X로 *최대한 줌을 땡겨가며 찍는 취향. 그에 대한 것은 맨 아래 글에 적어놓았으니 궁금하다면 스윽 보고 오면 좋겠다.

 내 첫 미러리스, 파나소닉을 사용할 때만 해도 광각의 매력에 빠져있었으나 이제는 멀리 떨어진 대상을 프레임에 넣기 위해 환산화각 105mm까지 최대로 줌을 땡겼다. 그마저도 만족스럽지 않아 RAW파일을 크롭해서 원하는 부분만 짜르기 시작했다. 무거워서 카메라를 안가지고 다니고 싶어하면서도, 또 다른 한편에선 망원렌즈(24200)가 필요할 것 같다며 속삭였다. 그런데 렌즈를 하나 더 들이기 시작하면 너무 비용이나 규모가 커질 것 같았고, 24200렌즈를 크롭에 물리는게 참 무식해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망원렌즈와 동시에 저 밑 생각의 기저에서 2470gm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인스타그램 금손 작가들의 사진을 보면 항상 태그되어 있는, 2470gm, 일명 금계륵. 그걸 약간씩 탐내고 있었다. 크롭바디 주제에 말이다. 이러다 배꼽이 나를 잡아먹을 것 같았다. 더 이상 안되겠다. 지금도 안가지고 다니는데, 무슨 렌즈를 더 물린단 말인가. 식은땀 난다.

많은 수업료를 지불해야 했던 Sony A6400과 sel1670z, 펜으로 그렸다.







'끝났을까'

 결국 다시 똑딱이로 돌아오게 되었다. 올해 새로운 모델이 출시되었지만 그래도 최신의 소니 똑딱이 시리즈, RX100M6. 정말 콤팩트(손바닥 안에 위치한다)하고 이전 모델들과는 다르게 24-200의 초광각망원렌즈가 탑재되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f1.8의 M5이전 버젼이 금액적인 메리트를 포함해서 훨씬 뛰어나다고 말했으나, 나는 밝은 조리개보단 망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기에 크게 신경 쓸 부분이 아니었다. 뷰파인더를 올리면 즉각 사진이 찍히는 사용성도 좋았다. 뷰파인더를 올리면 바로 찍을 수 있고, 내리면 꺼진다. 정말 POINT AND SHOOT 이었다. 여기에 4K 촬영도 지원된다는 사실은 유튜버의 약간의 꿈을... 그만! 그만!

 이전에 RX100을 사용했던 친구는 나에게, 일상에서 찍을 것이면 항상 가지고 다니는 휴대폰이 훨씬 낫지않냐, 똑딱이랑 휴대폰이랑 차이가 있냐며 핀잔을 주었다. 차라리 색감 깡패 리코GR2가 낫지 않냐 말했고, 모두 맞는 말이었다. 그렇지만 한 번 무언가를 가지고 싶다고 머리에 들어오면 나가질 않는다. 여러 이유를 붙여가며 생각을 붙들려고 한다. 물론 일상 사진 촬영은 휴대폰이 훨씬 좋으나, 나는 줌을 최대로 땡기고 또 크롭해서 사용한다. 즉, 줌을 땡겨도 화질이 유지되길 원했다. 색감깡패 리코는 인정하겠으나, 요새 RAW 보정에 조금 자신이 붙고 즐거워하는 찰나였다. '디카로 찍는 순간 그 사진에 무보정이란 말이 의미가 없다. 찍는 순간이 보정이다’라는 신조가 있었고, 어차피 보정을 할 거면 색감이 큰 의미가 없었다. 결정적으로 리코는 단렌즈였다.

 가끔 보면 사진을 위한 여행을 하는 사람을 많이 보게 된다. 한 장소에서 여러 각도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보며 왜 여행 그 자체를 즐기지 못 할까. 좋은 구도의 대상을 찍으면 그 때의 분위기 감정 또한 담길까 의문이 생긴다. 미러리스와 함께 한 여행을 통해 그렇지 않음을 느낀다. 나 또한 카메라를 들고 나가는 순간 원하는 구도와 장면을 위해 연신 셔터를 누르기 바빴다. 함께 여행한 친구는 그렇게 사진을 찍고 나중에 확인해보면 왜 찍었지 하는 의문이 많이 든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필름 카메라를 애용한다고 한다. 필름으로는 단 한 장만 기록할 수 있기에, 감정과 분위기가 담긴다고 한다. 필름의 분위기와 느낌이 아무리 좋고 그 의미가 맞더라도, 나는 필름과 절대 친해질 수 없음을 안다. 최신 디지털로 무장하는 나에게 아날로그는 글과 그림이면 충분했다. 그래서 무거운 카메라는 덜어내고, 컴팩트 카메라와 노트와 펜을 챙기자는 생각을 한다. 이런 생각 또한 알백이를 구매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사진에 대한 취향을 확실히 알려준 RX100M6, 펜으로 그렸으며 내 책상 위에 있다.





 니콘 똑딱이 ⏤ 파나소닉 미러리스 ⏤ 캐논 DSLR  ⏤소니 미러리스 ⏤ 소니 똑딱이의 순서로 유랑이 끝났다. 유랑이 끝난 게 맞는지, 결국 내 친구의 말을 따라 휴대폰 카메라가 최고임을 선언할 지 모른다. 혹은 풀프레임을 사용하지 못해본 것에 아쉬움을 느껴 어느 순간 200만원이 넘는 바디를 구매할 수 도 있다. 그럴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결국 내 손 안으로 가볍게 들어오고, 200mm 까지 줌이 땡겨지고, 가지고 나가는데 큰 부담이 없는 작고 알찬 똑딱이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번에는 내 생각이 맞다고 우기기 위해, 멀리 나가는 때면 가방에 챙기곤 한다.

 무엇이든 머리로 들어오면 구매해서 겪어봐야지 깨닫고, 하나에 꽂히면 그것만 보여서 다른 일은 뒤로 미루는 답답한 성향이지만, 이 모두 내 취향을 알아가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들어간 시간과 비용은 무시할 순 없겠지만, 어느 정도 특정한 단어로 완성되어 지는 내 취향이 기대된다.


*지금은 위의 카메라를 모두 처분하고, RX100M6만 남겨놓았다. 수업료는 상당했지만, ...








*최대한 줌을 땡겨가며 찍는 취향

사진을 찍는 방식이 변했다. 처음엔 전체를 찍었다. 전체적인 풍경을 담으려 했다. 아무런 기교가 없어 수평이 맞지 않은, 무얼 찍으려 하는지 모르는 사진을 쌓아두었다. 날 것의 사진은 보기 민망해서 들추지 않았다. 다행히 편집에 조금 능했기에 잘라내고 평을 맞추며 그럴싸하게 가공하였다. 잘라내는 것이 익숙해지니 프레임에 사진을 맞추기 시작했다. 카메라 앱을 키고는 정방형으로 바꾸었다. 내가 보고 싶은 것을 정사각형이라는 완전한 프레임에 가두었다. 덕분에 수평과 구도를 보기 편하게 잡았다. 민망한 사진은 없었다. 이 정직한 사진들은 인스타그램에 자주 올리곤 했다. 그렇게 한참을 정방형으로 찍다가 작년부터 이상한 프레임에 발길이 멈추었다. 어지럽게 남겨져 있는 전선이나, 산의 꼭대기, 아파트의 반복되는 창문과 같은 특정 오브제에 눈길이 멈추었다. 전체로는 그 느낌을 담기가 힘들어 사진을 확대했다. 스마트폰에선 확대를 하면 사진이 깨지고 픽셀이 뭉개져 화질이 구져지고 나 또한 이를 알았기에 1.5x 이상으로는 당기지 않겠다는 신념을 지켜왔다. 그렇지만 이젠 내가 원하는 오브제를 찍기 위해, 10.0x으로도 확대하는 것을 서슴치 않는다. 사진이 뭉개지더라도 그 때의 묘한 프레임을 담는다면 문제되지 않았다. 이제 귀여운 사진을 찍고 싶다. 붉게 타들어가는 춘천의 노을과 빨간 불이 만들어 내는 동질감을 보여주고 싶었다. 귀엽지않은가

- 블로그에서 가져왔다. 글 제목은 <19년 4월 7일의 춘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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