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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낀표 Feb 18. 2024

찝찝한 벌레물린 자국과 어설픈 산티아고 입성식

<80일간의 신혼여행> 산티아고 순례길 완결 1편

산티아고 길을 다 걷고 3일째인 6월 10일,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있는 한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나왔다. 내 손에는 30만 원이 훌쩍 넘은 진료비 영수증과 처방전이 있고, 옆에는 서먹해진 아내가 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앞으로 세 편에 걸쳐 아내와 함께 걸은 산티아고 순례길의 마지막을 그린다.


산티아고 순례길 코스 지도


산티아고 길을 걷는 마지막 날의 아침. 다른 감정보다 피곤함이 조금 더 컸다. 간밤에 잠을 설쳤기 때문인데, 설렘 때문이 아니라 더위와 모기 때문이었다. 윙 거리는 소리가 들리지는 않았지만 간지러움 때문에 잠에서 몇 번이고 깼고, 깰 때마다 방안의 후덥지근한 공기 때문에 다시 잠드는 데 시간이 걸렸다.


덕분에 늦잠을 자서 7시쯤 숙소에서 나갈 준비를 했다. 사람들이 모두 출발을 해서 방에는 우리밖에 없었다. 모처럼 방에 불을 다 켜고 느긋하게 준비를 하는데, 환해진 방 안에서 보니 내 팔과 목, 얼굴에 붉은 반점이 보였다. 합쳐서 열 방 이상 물린 자국이 있었다. 


순간 베드버그(빈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베드버그에 물려본 기억을 더듬어보니 물린 자국이 더 작고 일렬로 늘어선 모양이었다. 지금은 산모기에 물린 자국처럼 컸기 때문에 베드버그는 아닐 거라 생각했다.


뭐가 됐든 다행인 것은, 이날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하는 날이라는 것이다. 큰 약국에 가서 약을 받을 수도 있고, 길도 다 끝났으니 여차하면 침낭을 버릴 수도 있다. 그렇게 조금은 편한 마음으로 마지막 날 아침을 시작했다.


텅빈 숙소에서 붉을 밝혀보니 벌레 물린 자국이 선명했다.


산티아고 길 위에서의 마지막 아침 식사를 하고 8시가 조금 안 되어 길을 걷기 시작했다. 세 시간 정도 길을 걷다 보니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외곽에 들어섰다. 길 위에는 순례자뿐만 아니라 이 도시의 주민들까지 어울려 북적북적한 도시의 분위기가 났다. 


산티아고 길 위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큰 식당이나 가게들도 하나씩 눈에 띄기 시작했는데, 역시나 큰 약국이 하나 보여 들어갔다. 만전을 기하기 위해서.


약국에서 내 상황과 증상을 이야기하니 약사 세 명이서 심각한 표정으로 내 팔과 목을 관찰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약 하나를 꺼내왔다. 그리곤 스페인어와 영어를 섞어 설명해 주는데, 번역기를 써가며 확인해 보니 다행히 베드버그가 아닌 모기 물린 자국이라는 것이었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약을 받아 들고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약국에서 모기물린 자국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한시름 놓았다.


일말의 걱정까지 해소하고 나니 길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리와 같이 순례자의 차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에는 설렘과 아쉬움이 묻어나 있었고, 우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맑은 날씨에 산티아고에 입성한다는 사실이 설렜다. 돌이켜보니 나의 지난 두 번의 산티아고에서 제대로 된(?) 산티아고 성당은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공사 중이거나 비가 왔기 때문에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공사도 끝났다고 들었고, 날씨도 맑다. 이번에는 도착하는 순간의 감동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겠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도심에 점점 가까워지는데, 먹구름이 몰려왔다. 은유가 아니라 진짜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하더니 하늘이 어느새 어둑해졌다. 저기 산티아고 성당의 첨탑이 보이는데, 조금씩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산티아고 대성당에 도착할 즈음에는 비가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맑았던 하늘이 갑자기 왜..?


어처구니 없었지만 실망감이나 좌절감이 든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웃음이 나왔다. ‘이번 여행은 참 생각대로 되는 게 없구나’ 하며 마음을 놓게 됐다. 생각대로 되지 않아도 이렇게나 재밌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 


출발할 때만 해도 맑았던 날씨였는데 산티아고에 도착하니 비가 내렸다.
맑은 하늘이 아니면 어떠랴. 우리가 즐거운데!


그렇게 우리 부부는 비 오는 산티아고 대성당에 도착을 했다. 37일 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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