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월 이십사 일 밤 일기
왜 나쁜 버릇은 쉽게 들면서 좋은 버릇은 그렇지 못한 걸까? 요즘 좋은 버릇을 들여보려고 애를 쓰고 있는데 쉽지 않다. 아니, 내가 만들고자 하는 건 버릇이 아니라 습관인가? 문득 습관과 버릇이 무슨 차이인가 싶어 사전을 검색해 봤다. 연관 검색어에 ‘버릇 습관’이 뜨는 걸 보니 나와 같은 사람이 많은가 보다.
‘버릇’은 오랫동안 자꾸 반복하여 몸에 익어 버린 행동. ‘습관’은 어떤 행위를 오랫동안 되풀이하는 과정에서 저절로 익혀진 행동 방식. 뭔가 같은 듯 다른듯해서 버릇과 습관의 차이를 쳐보니 버릇은 순우리말이고 습관은 한자어란다. 보통 버릇은 부정적으로 쓰이는 반면 습관은 두루두루 쓰인다고. 둘 다 영어로는 habit이라 하고. 뭐 어쨌거나 통상적인 의미는 같은 모양이니 혼용해서 써도 뜻은 전달될 것 같아 일기에는 손 가는 대로 쓰기로 한다. 아마 나쁜 건 버릇, 좋은 건 습관으로 쓰겠지.
나쁜 버릇은 쉽다. 왜냐면 보통 나쁜 버릇은 편하기 때문이다. 내가 갖고 있는 나쁜 버릇에서 가장 상위에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미루기’이다. 뭐든 다 귀찮아서 미루고 나면 일단 당장은 편해지기 때문에 나는 차일피일 미루게 된다. 그래서 그 편안함 때문에 몸에 쉽게 익는다. 그렇다면 그 반대로 좋은 버릇은 귀찮을 가능성이 크고, 몸에서 무의식적으로 거부를 하여 쉽게 자릴 잡지 못한다.
그런데 좋은 습관을 들여보자고 결심을 한건, 내 나쁜 버릇인 ‘미루기’가 한 단계 더 나아가서 합리화까지 해버리는 바람에 내 삶이 정체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미루고 나서 그 미룬 일들을 해치운다면 조금 ‘늦게’ 한 것이 되는데, 거기까진 괜찮다. 그런데 나는 이제 미루고 나서 내일, 주말, 아니 다음 주에 하면 돼-라며 이미 미룬 일들을 마치 해결해 버린 것처럼 합리화를 해버리는 것이다. 지금 잠깐 안 하더라도 내일 하면 되니까. 그럼 지금 한 것과 다름없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미룬 것들이 수십 가지다. 그런데 실질적으로는 미루기만 하고 처리한 것들이 없으니 마음만큼은 이미 앞서 나갔는데 현실의 나는 그렇지 않고 고여있다. 이것이 나를 정체시키고 더 나아가서는 내 삶을 망쳐버릴 것 같았다.
이렇게까지 된 원인이 무엇일까. 내 생각엔 짧아진 집중력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자극적이고 짧고 빠른 숏 콘텐츠에 익숙해져서 뭐든지 짧게 짧게 끊어가야 하는, 한 가지 일을 진득하게 해내지 못하는 집중력. 도파민에 절여져 길고 지루한 것들을 차마 이겨내지 못하는 게 내 나쁜 버릇의 원인인 것 같았다. 실제로 긴 책을 한 번에 읽어내리지 못한 지 오래됐고 병렬 독서로나마 겨우 겨우 이어가고 있다. 업무도 순차적으로 끝내지 못하고 병렬해서 처리를 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엔 멀티플레이어 같은데, 실속은 그다지 없어 보인다. 적어도 나한테서는. 나는 이것을 고쳐보고자 한다.
이전에는 팔만 뻗으면 모든 것에 닿을 수 있던 원룸에서 이사해 지금은 침실, 부엌, 드레스룸이 전부 구분되는 넓은 집에서 살게 됐다. 늘 나의 문제는 퇴근 후 침대로 뛰어드는 것부터 시작이었는데(눕고 나면 모든 것을 미뤄버린다) 이제는 공간이 분리되었으니 침실에서 나와 최대한 거리를 둘 수 있으므로,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리고 자기 전까지는 테이블 앞에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더라도, 침대에 눕지 않는 것을 최우선으로 한다. 앉기만 한다면 심심해서 뭐든지 하겠지라는 게 솔직한 심정. 뭐라도 하면 그냥 누워있는 것보단 좋을 것이다.
아직 시도한 지 얼마 안돼 그럴듯한 결론으로 마무리 지을 수는 없으니 다짐이라도 해야지. 퇴근 후 피곤한 몸 이끌고 바로 눕지 못하는 것이 한동안-오래 괴롭고 어렵겠지만, 더 이상 내 몸과 정신을 망칠 순 없는 관계로 일단 시도해 보련다. 언젠가는 좋은 습관을 들였다며 뿌듯해할 일기를 쓸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