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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웉 Sep 20. 2024

하이웨이

9월 19일의 기록

 의사 국가고시 실기시험을 본 지 정확히 1년이 되는 날, 여기서도 실습 평가를 봤다. 그런 평가들은 대체로 비슷했다. 주어진 순서와 과정에 맞추어 술기를 잘 수행하는지를 보는 평가였다. 의사와 군인은 생명을 살리고 죽이는 직업이지만 사실 비슷한 점이 많다. 둘 다 각각 기다란 흰 옷과 얼룩덜룩한 녹색 옷이라는 옷을 입어야만 한다. 3000년 전의 인류에게 보여주면 분명 우스꽝스럽다고 비웃었을 것이다. 옷 뿐만 아니라 일을 할 때에도 규정을 지켜야 한다. 좁은 길을 벗어나지 않고 목적지까지 걸어가는 것이었다. 나는 그 위에서 체육시간에 평균대 위를 걸어가던 소년시절처럼 양팔을 벌리고 아슬아슬 나아갔다. 그런 평가는 예나 지금이나 내가 잘 못하는 것 중 하나였다. 본디 흙길을 걸어갈 때에도 길 옆 그루터기에 자라난 버섯도 신기하다며 관찰하고, 맨발로 잔디밭의 감촉을 느끼기도 해야 직성이 풀리는 타입인 것이다. 작년 실기시험 때에도 그렇게 긴장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시험이 끝나고는 엄청난 두통에 하루 종일 시달렸다. 실은 몸은 엄청나게 긴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1년 후에도 허둥대다가 평소라면 안했을 실수를 무더기로 저지르고 말았다.

 때로는 주변을 두리번거리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갈 필요가 있다. 단순한 코드 진행으로 쭉 달리는 하드록 노래가 시원하듯이, 또 복잡한 메시지 없이 통쾌한 액션으로 이어지는 오락 영화가 재미있듯이. 여기는 너무 운동을 잘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비교를 하다보면 내가 운동을 꾸준히 할 의욕을 잃는다. 예쁜 여자들과 노는 것을 좋아하고, 또 그런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많아서 계속 이야기를 듣다보면 내가 가진 연애관을 잃을 것 같다. 그리고 그런 곳에 한번 빠지면 도랑으로 빠진 볼링공처럼 좀처럼 빠져나오기 힘들 것을 본능으로 알고있다. 길 바깥에는 아름다운 자연물과 더불어 덫들이 많을 수 있다. 별이 바람에 스치우는 오늘 밤에도 한 점 부끄럼 없이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간다. 그런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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