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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웉 Sep 19. 2024

초여름의 불꽃놀이

9월 18일의 기록

 식사가 끝나면 은색 앞치마를 두르고 장갑을 낀다. 무거운 밥통을 들고 싱크대로 가서 손에 익은 파란 수세미를 든다. 거기에는  미처 떨어지지 못한 마른 밥풀이 몇 개 붙어있다. 지난 일주일동안 설거지를 맡아 하면서 어느 정도 요령도 생겼다. 원형 밥통을 싱크대에 비스듬히 기대어 세우고 빙빙 돌려가며 위아래로 수세미를 문지른다. 이렇게 대부분의 밥풀과 녹말을 제거한 후에 단단히 붙어있는 밥풀들은 뜨거운 물을 흘려보내며 철수세미로 박박 문지르면 쉽게 떨어져나갔다. 마지막 설거지를 끝내고 식당을 나섰던 초저녁에, 빗방울이 한두 방울씩 떨어지고 있었다. 공기 중에는 이미 비냄새가 퍼져나갔다. 내일 아침 점호는 연병장에 물이 고여서 실내에서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밥풀은 밥통에 단단히 붙어있듯이, 어떤 비는 물웅덩이를 오래 남기듯이, 어떤 경험은 오랜 흔적을 남긴다.

 오늘 저녁은 어쩔줄 모를 정도로 기쁜 일이 있었다. 망각은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 선물도 이제 거부하고 오늘 저녁을 잊지 않기를 바랐다. 신에게 도전한 대가로 그치지 않는 비가 내려서 마르지 않는 웅덩이를 남기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 비는 창 밖에 내리고 있었다. 번개가 번쩍, 빛을 내고 이윽고 창문을 울리며 천둥이 쳤다. 조용히 눈을 감으면 나는 초여름의 서해바다에 있었다. 잔잔한 파도와 바닷바람이 발등을 핥았고 겨우 수평선이 구분될 정도의 여명이 남아있었다. 폭죽에 불을 붙이자 감정이 끓다가 말이 하나씩 튀어나오듯 불꽃이 검푸른 하늘로 날아갔다. 번쩍, 초록 빨강 빛이 보이고 찰나 뒤에 소리가 들린다. 이내 불꽃은 잔상만을 남기고 천천히 중력에 이끌리며 사라진다. '생각해보면 그 때도 너와 함께였어' 생각하고 미결 파일의 너를 해결 파일로 옮긴다. 미제사건 칸에는 당분간 너의 실루엣을 한 구멍이 남으리라. 오늘의 비로 더위도 어제까지 같지 않고,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런 여름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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