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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웉 Sep 22. 2024

생각, 또 생각

9월 21일의 기록

 어젯밤에는 자기 전에 다같이 마피아게임을 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의사들이 침대와 의자 위에 둥글게 둘러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은 다신 볼 수 없는 광경이리라. 창밖에서는 조용한 이슬비를 맞으며 풀벌레가 윙윙 울었고 이따금씩 고양이 울음소리가 바람에 실려왔다. 그 리듬에 맞추어 우리도 도란도란 토론하다가 가끔씩 음성이 높아졌다. 그때마다 문 밖으로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나머지 인원들이 빠르게 진화했다. 이 사람들은 이제까지 내가 같이 마피아게임을 한 사람들 중에서 아마 평균적으로 고등학교 성적이 제일 좋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평소에는 손쉽게 이길 수 있었는데 여기서는 팀 패배의 일등공신이 되고 말았다. 처음에는 왜인지 다들 내가 게임을 잘할거라는 믿음이 있었는데, 한 판 후에는 그 믿음의 귀퉁이에 금이 가더니 몇 판 후에는 버스 유리를 망치로 깨고 발로 찬 것처럼 완전히 제거되었다.

 어째서 내가 게임을 잘하는 이미지일까? 아마 생각이 다 끝난 후에 자신있게 말하는 습관이 있어서 그랬을 것이다. 어째서 나는 게임을 자꾸 패배로 이끌었을까? 아마 생각이 다 끝난 후에야 말하는 습관 때문일 것이다. 생각이 정리되기 전에 말을 하는 것은 말하자면 밥이 다 되기 전에 압력밥솥의 김을 빼는 것이다. 나는 부엌에서 추가 딸랑거리는 소리와 달달한 밥의 냄새를 좋아한다. 그렇게 완성된 갓 지은 밥을 그릇에 담아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것도 좋아한다. 때때로 스스로에게 밥을 지어줄 때도 있다. 오늘도 2024년 국제수학올림피아드 문제가 공개되었길래 몰두하여 고민히닜다. 그런 나에게 생각 정리가 끝나기 전에 변론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한 일이다. 마피아게임을 포함해서 이 세계의 여러 곳에서는 필요한 일이다. 나를 이상하게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조용히 생각하는 것은 내 소중한 취미이다. 내 목 위의 컴퓨터가 돌아가는 윙윙 소리는 편안한 백색 소음이다. 거기에는 이따금씩 들려오는 고양이 울음소리 정도만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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