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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웉 Sep 23. 2024

바람을 삼키다

9월 22일의 기록

 비가 그쳤다. 나뭇잎 몇 개가 나뒹굴었다. 막혀있던 둑이 터지듯 멈춰있던 계절이 다시 흘러가기 시작했다. 어느 산 중턱의 바위 뒤에서 기지개를 키고 접혀있던 몸을 피면서 잊고 있던 바람이 나왔다. 한 잔의 커피를 마시고 솟아오르는 구름을 보며 잠들던 오후에 바람은 볼을 기분좋게 간지럽혔다. 맞은 편 창문의 커튼은 이스트를 넣은 카스테라를 굽듯이 부풀어올랐다. 저녁 점호 전에 침대에 걸터앉아있을 때 시원한 밤바람이 불어 오랫동안 그저 맞고 있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은 에어컨 바람과는 아예 다르다. 바다 한가운데 돛단배의 아이보리색 돛부터 창문 너머 보이는 이름 모를 산의 나뭇잎들까지, 스치며 지나온 다양한 사물의 냄새를 싣고 온다. 어떤 경로를 거쳐 왔는지 구별은 되지 않지만 오늘 바람에서는 좋은 냄새가 났다. 추억 속 지나온 세상들과 겪어보지 못한 세상이 떠오르는 기분좋은 냄새였다.

 어느 순간 지구가 보건소가 하나 있는 자그마한 마을 크기로 느껴졌다. 바람이 되고 흘러가는 구름이 되어 어디라도 가는 것이다. 그러면 가을이 되고 겨울이 될 때쯤 어디라도 도착할 수 있다. 돛을 이리저리 돌려서 바람의 방향과 관계없이 목적지로 향하는 어부를 부러워하다가도 흘러 도착한 곳이 어디든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봄이 되고 여름이 되어 다시 산중턱의 바위 뒤에서 잠이 들 때까지 너를 못 찾는대도, 너의 창문을 넘어 네 볼을 간지럽힐 그 날을 꿈꾸면 된다. 날씨가 적당히 선선해진 주말이니까 기분이 좋아서 이런 상상까지 하는구나 싶었다. 완벽한 날씨였다. 그저 너와 내가 좋아한 노래가 바람에 실려오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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