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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웉 Sep 24. 2024

우울, 찬란

9월 23일의 기록

 전장 시뮬레이션 수업에서 손을 들고 발표를 했다. 조별 토의 결과를 발표하고 반 전체 토론에서 사회를 봤다. 총 40분 정도 반 전체 앞에서 말을 했다. 이 일로 상점 0.5점을 받아 총 2.5점이 되었고 모범교육생 표창을 받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그동안 상점을 받기 위해서 수업을 열심히 듣긴 했다. 시작은 1주차 수업이었다. 평소와 같이 열심히 큰 목소리로 대답을 했더니 상점을 받았다. 공부에 자신없는 내가 표창을 받아서 포상휴가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상점을 모으는 것 뿐이었다. 그 이후에는 열심히 손 들어서 발표를 하고 시범도 보였다. 포상휴가를 손에 들고 슬쩍슬쩍 보여주며 나를 꾀어냈기에 어쩔 수 없었다. 힘든 일도 많았다. 1시간 내내 서서 시범을 보인 적도 있고, 컨디션이 안 좋은데도 동기를 어깨에 들쳐멘 적도 있었다. 그러나 목적있는 고통은 얼마든지 견딜 수 있었다. 몇 번이고 반복할 수 있는 것이었다.

 정말 괴로운 것은 목적 없는 고통이다. 신화 속에서 돌을 끊임없이 언덕 위로 굴려올리는 시지프스처럼 의미없고 힘든 일을 끝이 어딘지도 모르고 계속하는 것은 괴롭다. 끝이 어딘지 모르기 때문에 의미 없는 것일수도 있다. 끝이 정해져있다면 오늘 받는 형벌에는 남은 형벌의 횟수를 1회 줄이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달리기를 할 때도 남은 바퀴 수를 세거나 미래의 멋진 내 모습을 생각하면서 뛰어야 잘 뛰어진다. 그렇지 않으면 그저 눈을 감고 고통을 음미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단순화한 이야기로 신화적인 수준의 고통을 나타냈지만, 어쩌면 인생도 끝없는  노동의 굴레라는 점에서 고통이다. 미래를 생각하면 우울해지는 이유가 그것 때문이 아닐까. 따라서 목적 있는 고통을 만들기 위해 인간은 고뇌하지만 그 목적을 만드는 과정 자체도 고통스럽다.  아직 그 목적을 찾지 못한 나는 그저 눈을 꼭 감고, 5일의 우울 뒤에 나타날 2일의 찬란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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