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빛 물결

10월 23일의 기록

by 무웉

어제는 서울에서 친구들이 놀러왔다. 하필 큰 비가 내리던 날에 오느라 고생스럽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KTX도 지연되지 않고 택시를 잡는데도 지장이 없었다고 한다. 대신 비가 와서 태종대 가는 것을 취소하고 급하게 방탈출을 했는데 재미는 몹시도 없었다고 한다. 다행히 우리가 만나는 시간이 다가오니 거짓말같이 하늘이 맑아졌다. 덕분에 해운대를 활보하며 사람 구경도 하고 밥도 숙소에서 배달시키는 대신 횟집에 가서 먹었다. 물론 거리를 채운 수많은 사람을 구경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친구들이 내 눈앞에 있다는 점이었다. 친구들이 해운대까지 놀러와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잘 믿기지 않았다.

밥을 먹고는 숙소에 가서 친구들이 사온 어묵을 나눠먹었다. 사람은 5명인데 4조각씩 잘라준 덕분에 게임을 통해 못먹는 사람을 정하는 컨텐츠를 할 수 있었다. 단순히 주사위를 던져서 낮은 사람이나 높은 사람이 걸리는 것이 아니라 5개의 주사위를 몇 개만 고정하고 나머지는 다시 굴리는 과정을 반복해서 족보를 만드는 게임을 했다. 하나의 내기를 해도 최대한 박진감 넘치게 만드는 것이 우리 고유의 문화였다. 나는 한참을 웃었다. 30분 정도 계속 웃고 있다보니 광대뼈 위쪽이 아파왔다. 나는 이게 어떤 현상인지 잘 알았다. 너무 웃다보니 눈웃음을 짓게 맏느는 근육이 지쳐서 아픈 것이었다. 이 친구들을 한참 만날 때는 한 1시간은 같이 깔깔대야 광대뼈 위쪽이 아파왔는데 이제 30분만에 아프다니 아무래도 표정을 짓는 근육에도 근손실이 온 모양이었다. 마치 청바지를 처음 빨면 쪽빛 물이 빠져나오듯이 내 삶에서 재미가 쏙 빠져버린 것은 아닌가 싶다. 다만 3개월이 지나고 만나도 어제 봤던 것처럼 이렇게 즐겁다니, 같이 놀던 기억이나 감각, 그런 본능적인 것은 바지원단에 해당하는 것 같다.

운좋게도 친구들이 부산에 온 이틀차인 오늘은 어제의 비가 다른 세상의 일인 것처럼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덕분에 부산이라는 예쁜 도시를 온전히 즐기다가 갈 수 있었다. 사실 그런 햇빛은 어떤 표면에 반사되어도 아름다울 그런 광선이었다. 어제 못 갔던 태종대를 비롯해서 송도해수욕장에서 케이블카도 타고 감천문화마을도 갔다고 하는데 착한 친구들은 나를 위해 사진들도 보내왔다. 그 사진들에는 하나같이 뒤에서 쪽빛 물결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나는 바다가 잘 보이는 생활관 3층으로 올라가서 바다 방향을 바라봤다. 거기에서도 짙은 파랑의 바다는 기다란 가로선의 경계 아래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손 내밀면 닿을 것 같은 쪽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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