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소음

10월 31일의 기록

by 무웉

칠흑같은어둠보다는 적당한 파도소리와 은은한 달빛이 있는 밤이 오히려 더 평화롭게 느껴진다. 나에게 바닷가의 밤이라고 하면 그런 이미지가 있다. 잠든 숨소리와 같은 파도소리, 소금기를 조금은 머금은 잔잔한 바람, 그리고 저 멀리서 밤새 켜져있는 오징어잡이배의 불빛이 뒤섞여 나에게 다가온다. 그런 의미에서 부산, 특히 해운대는 신기한 지역이다. 밤이 되어도 전혀 활기를 잃지 않고 오히려 저마다의 빌딩에서 나오는 불빛들로 휘황찬란한 풍경이 연출된다. 생활관 창문 너머로도 고층 빌딩이 조명의 색깔을 바꿔가며 초록색, 빨간색 등으로 빛난다. 몇 시인지는 모르겠지만 특정 시간이 지나 한밤중이 되면 엘시티 꼭대기의 조명이 꺼지기는 한다. 그래도 여전히 몇몇 방에는 불이 켜져있는 해운대는 내가 알던 바닷가의 밤과는 다른 이미지다.

나는 낮잠을 자기 전에 커피를 반 잔 정도 마시는 것을 좋아한다. 칠흑같은 어둠과 완전한 고요의 잠이 아니라 조그마한 백색소음과 희미한 불빛의 잠을 잘 수 있게 해준다. 물론 커피를 너무 많이 마시면 해운대의 야경과 같이 온통 빛 투성이가 되어버린다. 오늘은 여느때와 다름없는 하루를 보냈다. 설거지 아저씨의 오후에는 카누와 낡은 텀블러, 그리고 정수기 물로 만든 아이스아메리카노가 함께한다. 오늘도 방에서 소박한 커피를 마시며 오랜만에 게임이나 해볼까 하고 하스스톤을 플레이했다. 4년 전에 깔았다가 지운 게임을 다시 플레이하니 생각외로 재미있었다. 그러던 중 선임이 나를 위해 카펭에서 무려 바닐라라떼를 사서 내 방까지 갖다주셨다. 나는 너무 기쁘고 고마운 나머지 바닐라라떼를 다 마셔버리고 말았다. 내가 탄 소박한 커피도 거의 다 마신 상태였다. 그 결과 도시의 불빛 같은 것이 나의 혈관을 돌며 잠을 쫓아내게 되었다. 화요일날 외출해서 올려다봤던 해운대의 밤하늘에는 별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에 작은 연보랏빛 구름들이 도시의 불빛을 증명하고 있었다. 서울에서 별이 잘 보이지 않는 것처럼 부산에서도 별은 잘 보이지 않았다. 주위에 아무 불빛이 없어서 은하수까지 보이던 미국 국립공원의 밤하늘이 떠올랐다.

오늘 다시 시작한 하스스톤은 굉장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의 추억과 게임이 주는 순수 재미가 섞여서 내 머릿속에서 자꾸 다른 생각들을 밀어내고 있었다. 조금 나쁘게 말하면 암이 정상 조직을 밀어내는 느낌이려나? 그런 자극적인 것들은 도시의 찬란한 불빛들과 같아서 은은한 것들을 볼 수 없게 해버리고 만다. 그리고 잃어버리게 되는 은은한 것들은 대부분 아름다운 것들이다. 나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분명 부산 어딘가의 아파트에서는 누군가가 침대에서 뒤척이며 은은함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게임은 조금만 해야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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