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쓴지도 벌써 2주일 정도가 지났다. 그동안 일기를 쓰지 않았던 이유를 일기에 쓸만한 일이 없어서라고 얘기할 수는 없다. 이제까지 써왔던 글들을 보면 꼭 무언가 대단한 일이 일어나서 글을 쓴 것은 아니다. 일기의 형식을 빌려서 그 날 일어난 일 중 하나에 관한 짧은 생각을 적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심지어는 그 날의 날씨에 대해서 일기를 쓴 적도 많다. 내가 사람을 만나도 꺼내는 주제는 주로 오늘의 날씨에 대한 이야기와 고등학생 시절 벌였던 기행에 대한 이야기 2가지 중 하나다. 그러니 일기장에 날씨를 기록하는 칸이 따로 있던 초등학생 시절에는 일기를 쓰는 것이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그 때야말로 일기에 쓸 내용이 없다는 핑계가 통했고, 지금은 그건 그리 좋은 핑계가 아니다.
나의 나태함 때문에 그동안 일기를 쓰지 않았다고 스스로 반성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실 나의 나태함이 심해진 것도 일이 바빠져서라고 생각하면 틀린 말은 아니다. 고등학교의 치열한 인생을 졸업하고 난 뒤에는 시간이 생겨서 공부를 하는 타입의 인간이었다. 하루에 5시간의 자유시간이 주어진다면 그 중 2시간 정도는 놀다가 노는 것이 질리면 공부를 하고 뭔가 자기계발을 하곤 했다. 그러다가 자유시간이 2시간으로 줄어들면 순수하게 생산적인 일을 하는 시간만 2시간이 줄어들었다. 아무래도 노는 시간은 나를 깎아내고 깎아내도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나의 중심 부분에 포함되는 것일 수도 있겠다.
글을 쓰지 않았던 또 하나의 이유는 표현력의 고갈이다. 하루를 살아가다보면 어딘가 마음에 드는 표현이 떠오를 때가 있다. 예전에는 그런 표현들을 생각해내서 글을 쓰는 것이 가능했지만 기억력이 떨어진 지금은 어딘가 쪽지에 메모를 해놨다가 글을 쓸 때 주섬주섬 꺼내서 쓰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그런 쪽지에 메모해둘만한 표현들조차 이제는 마른 우물처럼 돌멩이를 던지면 수면에 부딪히는 청량한 소리 대신 딱 하는 소리만 날 것 같았다. 특별한 나만의 표현이 없으면 마치 레시피를 따라 충실히 만든 음식처럼 전형적인 맛이 나기 때문에 일기를 쓰는 것을 꺼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이 평범한 글을 쓴다고 화를 내는 것 자체가 특이한 일이기에 나만의 표현을 억지로 뒤지는 일은 그만두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나는 다시 일기를 쓰기로 했다. 사실은 얼마 전에 브런치에서 알림이 왔었다. 한동안 글을 발행하지 않으면 오는 알림인 것 같다. 발행하지 않으면인지 쓰지 않으면인지는 잘 모르지만 아무튼 그런 알림이 떴다. 내 폰에 있는 수많은 공부 앱들도 그와 비슷한 알림을 보내면 잊어버리곤 했다. 그 알림을 무시하고 글쓰기를 내 삶에서 아예 놓아버려도 삶은 비탈길을 내려가는 요구르트 수레처럼 털털거리며 어디론가 굴러가긴 할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어디론가 굴러가는 것이 내 방식이긴 했지만 이번에는 왠지 글을 써야만 했다. 그렇게 해서 나는 다시 키보드 앞에 앉았고, 어두운 의무실로 들어오게 되었다. 허리와 눈에는 안 좋겠지만 가끔은 이렇게 빛과 거리를 두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한낱 빛이 어찌 어둠의 깊이를 알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