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초입에서는 맑은 날이 이어지고 있다. 원래 부산은 상공에서도 바람이 많이 부는 건지 구름이 계곡을 떠내려가는 빨래처럼 빠르게 흘러가곤 했는데 요즘은 그런 구름조차 보이지 않는다. 하늘의 상류로 거슬러가봐도 구름 한 점 없는 모양이다. 서울도 비슷한 날씨인가보다. 내가 휴가를 나가서 서울에 있을 때는 날씨가 내내 흐리고 비도 이따금씩 왔는데 내가 부산에 오자마자 맑아졌다. 비슷한 것으로 불평을 하자면 원불교가 있다. 오늘은 4주만에 원불교 종교행사에 갔는데, 내가 안 가던 동안은 식사로 치킨과 피자가 나왔다길래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역시 내가 가는 오늘은 싸이버거 세트가 나왔다. 물론 훌륭한 메뉴지만 내심 기대를 하고 갔던 탓에 원망스러웠다. 원불교 일상수행의 요법: "원망생활을 감사생활로 돌리자."
감사할 일은 너무나 많다. 예를 들어 이번 주는 금토일 3일 연속으로 쉰다. 또는 카페에 가서 처음 먹는 메뉴를 시도해봤는데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원망을 감사로 바꾸는 것은 연금술 정도의 난이도를 가진 문제이다. 원래 바닥만 보고 걷다보면 하늘이 푸르른 것도 보지 못하는 법이다. 이번 주 금요일도 쉬었던 이유는 목요일날 내가 당직을 섰기 때문이다. 공짜로 얻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여긴 사회와 조금 다르지만 사회의 그런 룰은 그대로 가져온 것 같다. 당직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시간 죽이기의 끝판왕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첫 당직이라서 상당히 긴장했고 그날따라 일도 많아서 처리 속도가 늦었는데도 불구하고 15시간이라는 시간은 내게 맡겨진 조그마한 더미의 일을 하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었다. 당직 근무를 인수인계받을 때도 당직이 하는 가장 큰 일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라고 들었다. 서보니까 정말로 당직을 서는 가장 큰 이유는 누군가는 그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이유가 납득이 되지 않는 일은 모른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당직을 서는 이유를 아직도 모르겠다.
금토일 3일 연속 쉬는데도 불구하고 쉴 때는 시간이 이상하리만큼 잘 가고, 벌써 월요일이 오는 소리가 문앞에서 들린다. 군대에서 내가 배운 것 2가지는 월요일을 싫어하는 방법과 의미없는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다. 슬프게도 이 두가지는 나중에 사회에 나가서도 유용하게 쓰이는 것들이다. 앞서 언급한 당직은 두 번째 카테고리에 속한다. 의미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은 군대 탓만 하기도 애매한 것 같다. 핸드폰을 쓰는 시간이 주어져도 나는 주로 게임을 하며 죽은 시간을 제공받으므로 시간낭비는 내 유전자에 새겨져 있는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월요일이 싫은 것은 주말에 시간을 의미있게 쓰든 말든 똑같을 것이다. 우리의 인생은 너무 짧다. 해변에서 조각칼로 모래성을 예쁘게 조각하든 아니면 플라스틱 컵으로 원뿔대모양의 모래 무더기를 찍어내든 누가 비난하겠는가. 판단하려고 하면 이미 밀물에 쓸려나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