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매일 다른 시간을 보내면 시간이 빠르게 간다. 나에게는 이번주가 딱 그렇게 정신없이 지나갔다. 월요일과 화요일은 모두 외출을 했다. 수요일은 전투체육이라고 해서 오전에만 일과를 하고 오후에는 동기들과 탁구를 쳤다. 목요일인 어제는 오후에 모 선임의 징계위원회가 있어서 거기에 서기로 참석했다. 오늘은 행정반에 앉아있는데, 동기들과 선임들이 자꾸 와서 나에게 말을 걸었다. 원래는 할일을 마치고 의무실로 가서 혼자 앉아있을 생각이었지만 말하다보니 재밌어서 계속 이야기했다. 선임 한 명은 나와 30분 정도 이야기하다가 1월달에 외출을 같이 나가기로 했다. 보통 자기 맞후임에게 밥을 사주는 것을 생각하면 흔하진 않은 일이었다. 요즘의 나는 여기 사람들에게 점점 인기가 많아지는 것을 느낀다. 생각해보면 월요일날 나갔던 외출도 원래 내 동기와 그 동기의 맞선임이 둘이서 나가는 것이었는데, 그 선임이 나도 데리고 가고 싶다고 해서 같이 외출을 나갔던 것이다. 뭐 조금 불편하긴 해도 재미있는 얘기들도 듣고 맛있는 음식들도 얻어먹고 해서 좋은 기회였다. 어제 징계위원회의 서기를 맡은 것도 우리 행보관님이 추천하셔서 그렇게 된 것이다.
내 입으로 말하긴 좀 그런 것처럼, 내 뇌로 생각하기에는 좀 그렇지만 나는 어디에 가서도 거기에 어울리는 카드게임의 조커같다. 그런 카드게임들이 으레 그렇듯이 사람들은 저마다 조커를 손에 넣고 싶어한다. 사실 어딜 가서도 거기에 어울린다는 건 그렇게 대단한 일은 아니다. 그저 거기에 있는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만 적당히 해주면 된다. 그 사람들이 내 머리 위에 서있는 느낌이 들어 만족할 때 나는 속으로 사람들이 나의 의도대로 놀아나고 있다고 생각하면 공평하다. 그리고 적당한 조크가 필요하다. 웃음은 술과 같은 사회적 윤활유여서 관계가 새로 장만한 기계의 톱니처럼 잘 돌아가게 해준다. 행보관님도 가끔 무리한 부탁을 하시면서 특유의 호탕한 웃음으로 상황을 무마시키려고 한다.
그래도 조커로 사는 건 마냥 좋지만은 않은 일이다. 일단 이미지가 너무 좋지 않다. 배트맨 시리즈에 나오는 조커는 미치광이고, 조커에 나오는 조커의 웃음은 억지웃음이며 음침하다. PX에 가면 항상 건물 안 바닥에서 뒹굴대는 고양이가 있다. 그래, 고양이다. 고양이로 산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사람이 왔을 때 다리에 털을 비비며 적당히 귀여운 모습을 보여주면 많은 츄르를 받을 수 있다. 무례하게 쓰다듬는 사람들의 손은 귀찮을 때도 있지만. 그렇게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고양이 가면을 쓰게 되었다. 가면을 쓴 적은 없고 굳은 살과 같이 가면이 내 얼굴 위로 자라난 것이다. 손톱깎이로 굳은 가면을 제거하기에는 그 아래에 있는 얇고 연약한 얼굴 피부에 비해 세상은 너무 거칠다. 게다가 가면을 없애도 결국은 새로운 가면이 자라나고 말기에 절망할 나를 알고 있다. 그래서 울고 싶은 나는 고양이 가면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