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시에 태극기가 올라가면서 애국가가 나오고 오후 5시 반에는 태극기가 내려가면서 애국가가 나오는 것처럼 정해진 시간에 항상 일어나는 일들이 있다. 당직을 서다보면 밤 9시와 새벽 4시쯤에는 무전실에서 무전기 테스트 전화가 온다. 항상 '수고하십니다'로 시작하는 형식적인 대화와 각자의 이름을 주고받는 장비 테스트가 있을 뿐이지만 나름의 재미가 있다. 매일 전화하는 사람이 달라지고 사람마다 스타일의 차이가 있다. 당직을 서면 설 수록 그 사람들의 목소리에 익숙해져서 내적 친밀감까지 생겼다. 같은 대대는 아니지만 이따금씩 식당이나 종교 행사에서 마주칠 때가 있다, 그 때 실제로는 이렇게 생긴 사람이구나 하며 한 번 말을 걸어볼까 싶다. 같은 내용의 전화이지만 각자 조금씩 차이가 있는 것처럼 전역을 앞둔 병장들 말고는 다들 똑같은 빡빡이지만 얼굴이 다르게 생긴 것이 재밌다. 사실 여기가 군대가 아니었고 무전기 테스트를 하는 상대가 여자였다면 꽤나 낭만있는 상황이다. 수화기 너머에만 존재했던 의문의 여성이 눈 앞에 나타나는 것은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몇번이고 봤던 소재이다. 그렇지만 그런 소소한 재미로 24시간을 덮기에는 열린 창문을 포스트잇으로 막아놓는것처럼 너무 공간이 많이 남는다.
12월 29일은 암구호를 물어보는 두 번의 전화와 12명의 외출자와 90명의 종교 참석 인원이 있던 날이었다. 무려 4번의 무전기 테스트 전화가 걸려왔고 밤새 무려 7명의 환자가 발생했던 날이기도 하다. 평균보다 많은 할 일에 의자에서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툴툴댔던 날이다. 그 날은 아침에 걸려오는 전화에 형식적인 행동과 답변을 대충 내놓고는 반복되는 뉴스를 보고 있었다. 대통령에게 3차 출석 요구를 한다는 내용의 뉴스였던 것 같다. 붉은 배경에 흰 글씨로 뉴스 속보가 떴던 것은 그 뉴스를 1시간 째 보고있을 무렵이다. 그 순간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영화를 보는 것 같이 현실이라는 생각이 잘 들지 않았다. 911테러는 내가 정말 어렸을 때였기 때문이다. 이후 23시간 동안 똑같은 뉴스만이 흘러나왔다. 똑같은 영상과 똑같은 전문가와의 인터뷰가 나오는 가운데 이따금씩 사망자의 수가 늘어나기만 했다. 그것도 자정 무렵이 되어 179명에 다다르자 완전히 똑같이 반복되기만 했다. 사실 나의 머리로는 181 빼기 2는 179라는 숫자가 잔인할 정도로 빠르게 도출되었기에 나에게는 23시간동안 같은 뉴스가 반복된 셈이다. 그것을 숫자로만 생각하는 내 자신이 더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어 몸서리쳤다.
하나의 글자를 가만히 보고있으면 어느 순간 이상하게 보일 때가 있다. 뉴스도 마찬가지이다. 처음에는 비행기 사고 영상이 현실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저렇게 폭발할 수 있는거야? 영화에서 차가 폭발하는 씬은 대부분 CG고 실제로는 자동차사고가 나도 폭발하지는 않는다던데.. 그리고는 앵커와 아나운서들이 이상하게 보였다. 저 사람들은 왜 이렇게 덤덤한거야? 사람이 죽었잖아? 그것도 백일흔아홉명이나. 그리고는 영상 편집 방식이 이상했다. 비행기가 벽을 들이받고 폭발하는 장면은 모두 편집되어있고 폭발 직전과 폭발 직후의 모습이 바로 연결되어 있었다. 대장암만 절제하고 그 양쪽의 대장을 깨끗이 이어붙이듯이. 그렇게 깨끗이 절제해내면 아예 없었던 일이 되는 것이 되는거야? 사람들이 죽었다는 사실은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아도 변하지 않잖아? 기괴하다는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다. 사람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을 보면 공포에 떨거나 화를 낸다. 그리고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사람이다.
그 날의 연락 내용은 그 사람들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여기저기서 확인할 수 있다. 이제는 시간이 많이 지나간 세월호 때와는 다르게 카톡 디자인이라든가 말투가 지금과 똑같아 섬뜩할 때가 있다. 하나같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것들이었다. 내일이면 나는 스물 일곱이 된다. 지미 헨드릭스, 윤동주 등등 천재 예술가 중에 스물일곱살에 죽은 사람이 참 많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년에 죽을 확률은 낮지만 그래도 죽어간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추락하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어떤 연락을 하고 어떤 마음을 먹어야 하나. 내가 타고 있는 것은 비행기보다는 우주선에 가깝다. 카운트다운과 함께 발사될 때는 뒤에서 불도 나오며 멋있고, 지구 주위를 유유히 돌 때는 평화로우며 아름답다. 그리고 태평양의 이름 모를 한가운데로 곤두박질 치고 바다 밑바닥까지 떨어질 때는 초라하다. 사실 지구 주위를 도는 우주선도 매 순간 추락하고 있다. 절묘하게 추락하는 속도가 자전 속도와 들어맞아있을 뿐이다. 추락하는 우주선 안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끝없는 우주 공간으로 날아가버리거나 끝없는 심해로 잠기거나, 아무튼 어두운 침묵 속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어떻게 살아야 하나.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