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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혁 Aug 22. 2024

우울한 과학의 시선으로 바라본 국가의 사회 문제

뜨거운 사회적 쟁점에 관한 경제학적 논의


1) 조순(1928.02.01~2022.06.23)

서론

   

    매일 아침 신문을 열독하는 식자가 이따금씩 격렬한 두통을 호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비생산적이고 사람의 기분을 몹시 상하게 하며 즐거운 일상생활에 근심을 기꺼이 안겨주게 만드는 정치면을 너무 오래 살펴보았기 때문이다. 그에게 내릴 수 있는 최선의 처방은 감기약을 복용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면을 오려 내버리는 것이다. 자신이 살아가는 공동체와 이웃을 걱정하는 시민이라면 시급한 민생과제, 국가의 장기 성장을 이끌기 위한 경제 정책에 대한 논의라고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국회의 참호전을 바라보며 마음이 착잡해질 것이다(이 소모적이며 무의미한 전쟁의 비용은 귀중한 국가의 시간과 성실한 시민들의 세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바람직한 사회 정책이란 무엇인가? 누구도 이 질문에 명쾌하게 답할 수 없다. 이는 근본적으로 규범적인 의문이기 때문이다. 규범적인 질문에 대한 답은 필연적으로 특정 개인의 바람직한 삶에 대한 비전, 도덕 관념을 자연스레 반영한다. 한 가지의 질문에 수백 가지의 다르면서도 틀리다고 할 수 없는 답을 제시할 수 있다. 즉, 시기와 장소를 불문하고 일괄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우월한 원칙을 발견할 수 없다. 이러한 일괄적인 가치기준으로 평가할 수 없는 다양성은 인간 창의성의 원천이지만, 동시에 정책 입안에 기여하는 사회과학의 크나큰 근심거리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국가 성장과 사람들의 더 나은 삶을 떠받쳐 줄 수 있는 바람직한 정책을 탐구하는 것을 그만둘 수는 없다. 훌륭한 사회가 무엇인지에 대한 사람들의 숙고와 소통이 부재한 사회는 송장 민주주의 사회에 불과하다. 실로 건강한 민주주의 사회를 이끌어나가는 것은 소수의 정치적 엘리트가 아니라 다수의 일반 시민이다. 건강한 시민 정신은 국가를 떠받치는 기둥이다. 단순히 사적 이익을 고려하는 것을 넘어서 장기적인 사회적 이익을 균형 있게 고려하며 심도 깊은 논의를 통해 도출된 정책만이 장기적인 성장을 이끌어낼 수 있고, 구성원의 대부분의 동의를 얻어낼 수 있다. 일방적이고 특정 계층 혹은 집단에만 단기적인 이익을 가져다주어 궁극적으로 사회 전체에 해를 입히는 정책은 효과적이지 못할 뿐만 아니라 다른 구성원들의 동의를 얻어내기 어렵다. 사적 이익을 노골적으로 추구하는 단기 정책의 남발은 사회 토론의 장을 이익 탈취의 각축장으로 만들 것이 자명하다.


    한때 대한민국에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공동체주의자 마이클 센델 교수의 도덕 서적이 선풍적인 인기를 끈 적이 있다(지금도 꾸준히 팔리는 훌륭한 스테디셀러이다). 제목에 혹해 책을 읽어본 독자들은 실망을 금치 못했을 것인데, 저자는 결국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명쾌한 답을 내놓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은 정의를 비롯한 바람직한 사회 가치에 대해 가장 중요한 점을 우리에게 시사한다. 바람직함과 올바륾이라는 가치는 일방적이고 객관적으로 정의내릴 수 없으며, 다양한 딜레마 상황을 마주한 사회 구성원들의 깊은 숙고와 열띤 토론을 거치고서야 그 희미한 윤곽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본 글에서는 현재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소개하고 개인의 부족한 경제학적, 사회적 지식을 활용해 문제의 원인과 그 해결 방식을 탐구해 보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국내에는 사회와 경제 문제에 대해 더욱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현명한 답을 내놓을 수 있는 전문가들이 많고, 나보다 더욱 유익하고 실천적인 해답을 제시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서두에 강조한 바와 같이, 일반 시민이 사회가 당면한 문제에 대해 숙고해보는 것은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바람직하고 필수불가결한 일이다. 사회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갖는 것보다 그에 도전하는 행위와 그 정신을 함양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더욱 현실적이다. 이것은 플라톤의 대화편 "테아이테토스"와 같은 방식을 추구하는 것이다. 목적은 해결이 아니라 그 탐구 행위에 있다.



경제학에 관하여

  

  "다른 이들이 종종 이야기하는 것과 달리, 이 학문은 즐거움과는 거리가 멀다. 음울하고 황량하기 짝이 없으며 절망적이기까지 한 이 학문은 말하자면 우울한 과학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영웅 숭배로 유명한 사학자 토머스 칼라일이 1849년 서인도제도의 흑인 노예 문제에 관해 쓴 글의 한 문장이다. 이 원색적이고 격렬한 비난의 대상은 물론 경제학이다. 칼라일은 수요와 공급이라는 논리에 의지해 자유방임적이고 무책임한 행태를 보이는 경제학을 비난하며 노예제도를 도입할 것을 주장하고자 한 발언이지만, 들뜬 파티장에서 음울한 이야기로 찬물을 끼얹는 행위를 즐기는 경제학에 있어 더할 나위 없이 잘 들어맞는 별명이다. 


    "공짜 점심같은 것은 없다."라는 문장은 경제학의 딜레마를 압축적으로 표현한다. 경제학적인 문제에 있어서 어떠한 대가도 치르지 않고서 이득을 보는 행위는 정말이지 드물다. 인간은 필연적으로 시간에 제약을 받으므로, 어떤 행위를 한다는 것은 그 시간과 자원을 가지고 할 수 있는 다른 행위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제학은 선택에 관한 학문이다. 합리적 행위자인 인간은 일관되게 자신의 목적을 추구하며, 이를 위해 비용과 편익을 끊임없이 비교하여 결정을 내린다. 이 결정들이 모여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서 표출된다.  따라서 사회 현상의 기저에 존재하는 비용-편익에 초점을 맞춘 분석은 사회 문제를 고찰하는 하나의 접근 방식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경제학적인 접근이 사회의 모든 부분을 명쾌하게 설명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경제학적 동기 이외에도 도덕적 동기와 심리적 동기가 인간의 행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럼에도 비용-편익 접근 방식은 사회 현상을 탐구하는데 유용하므로 나는 경제학적 접근 방식에 기초하여 사회가 마주한 여러 사회 문제에 대해 고민해보고자 한다.



중대한 사회적 문제에 관하여


I.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한 인구 감소

II. 과도한 정부 채무

III. 지적 역량을 저해하는 교육 제도

IV. 부의 불평등



I.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한 인구 감소


    모든 사람이 알고 있지만 누구도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문제는 바로 저출산과 고령화다. 이후에 다룰 여러 사회적인 문제도 결국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한 인구 감소와 직결되어 있다. 저출산과 고령화 현상은 이미 라이벌인 일본을 넘어섰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출생/사망 통계에 따르면 22년의 합계출산율은 0.78이다. 또한 통계청의 고령자 인구 통계에 따르면 2023년의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우리나라 인구의 18.4%로, 향후 계속 증가하여 ’25년에는 20.6%로 우리나라가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2) 합계출산율 0.78이라는 전례 없는 수치는 많은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저출산과 고령화에 따른 인구 감소가 사회에 끼칠 악영향은 자명하다. 노동인구가 감소하고 부양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연금을 비롯한 복지에 재정을 더 투입하게 되므로 정부재정을 더욱 악화시키고 사회에 필수불가결한 노동력이 감소할 것이다. 국력의 궁극적인 원천은 인간이다. 소비, 생산을 비롯해 사회를 유지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경제생활을 영위하며 기발한 상상력과 근면함으로 혁신을 이끌어내고 유사시 전쟁에 동원되는 인간은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경제적 자원이다. 


    우리는 어떤 대책을 생각해볼 수 있을까? 고령화 속도를 늦추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고령 인구가 경제활동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볼 수는 있을 것이다. 정년을 연장하는 방안이나 낮은 임금을 받고 회사에 자문역으로 고용하는 기초적인 대책을 생각해볼 수 있다. 나이가 들면 눈과 귀같은 말초 기관이나 간, 심장과 같은 생명 활동에 필수적인 기관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고령 인구의 삶의 질을 극단적으로 낮출 뿐만 아니라 노인이 사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주요한 원인이 된다. 100세 시대를 넘어 세상을 떠날 때까지 건강하고 즐겁게 살 수 있는 100세 시대를 열 수 있도록 의학/생명 분야 R&D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사회적으로도 노인을 존중하는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해야 하지만, 노인 역시 다른 사회 구성원을 존중하고 배려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타인의 존중을 얻고 싶은 자는 먼저 타인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배려와 친절은 아래에서 위로만 행하는 것이 아니다. 지위 여하를 막론하고 인간 대 인간으로서 행하는 것이다. 상식적이지 못한 언행을 보이는 일부 노인들은 사회 구성원들의 노인에 대한 인식을 악화시키고 이로 인해 다른 노인들이 피해를 보기도 한다. 구성원 전체는 세대 간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야 할 것이다. 세대 간, 계층 간 갈등은 종종 의사소통의 장애와 타인의 경험과 생각에 대한 고려 부재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인다. 타인에게 자신의 말을 잘 전달하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타인의 말을 경청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잘 듣고 잘 말하기라는 해법이 너무 상식적이고 단순하다는 것에는 동감한다. 하지만 상식적일수록 실천하기 어렵고, 단순할수록 효과는 강력하다. 귀에 딱지가 얹도록 들은 이야기라는 표현을 쓸 때, 우리는 왜 귀에 딱지가 얹도록 그런 이야기를 들어야 했는지 고민해보아야 한다(제대로 실천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저출산 문제에 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은 매우 난감하다. 나에게는 대한민국의 가장 깊고 고질적인 문제가 결부되어 있다고 느껴진다. 전쟁을 겪어 보지 않은 이는 전쟁으로 영혼과 육신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의 심정을 모르듯이, 아이를 낳아 보지 않은 사람은 부모의 마음을 모른다. 하지만 사회 구성원으로서 주관적인 견해를 이야기해보자면, 주요한 문제는 직장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 부모 중 한 쪽만이 직장을 다니던 과거와는 달리, 오늘날에는 양 부모 모두 직장을 다니는 맞벌이 가정이 대부분이다. 이는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의 점진적인 증가에서 확인할 수 있다. 1995년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48.4%였고, 2023년은 12,817(천)명으로 55.6%으로 이러한 추세는 경제적으로 사회에 유익하고 양성평등에 있어서도 바람직하다.

여성 경제활동인구 및 참가율, e-나라지표.

    하지만 새롭게 자녀 양육을 누가 담당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가 발생했다. 양 부모 모두 직장을 다니므로 어느 한쪽에 양육 문제를 일임하는 것은 전적으로 불공평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잦은 야근과 긴 근무시간으로 아이를 돌보기는 커녕 스스로를 돌볼 시간도 부족해졌다고 생각된다. 자신에 발등에 불이 붙었다면, 불을 끄는 것 이외에는 생각할 여유가 없다. 아이를 가질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부부가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 출산 휴가와 장려금 등의 제도가 존재하지만, 이는 턱없이 부족하다. 휴가가 주어졌다고 직장생활을 고려하지 않고 내키는 대로 휴가를 쓰는 직장인은 없다. 출산 휴가를 쓰면 동료들의 눈치가 보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출산 후 직장에 복귀하더라도 승진에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염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경력단절은 아직도 부모 직장인들의 근심거리가 되는 것으로 보인다. 


    천문학적인 양육 비용도 저출산이라는 문제를 한층 심화시킨다. 장기간 지속된 인플레이션으로 단순한 식료품을 구매하는 것도 상당한 비용이 든다. 아이를 키울 때 드는 교육비는 상상을 초월한다. 정규 교육만으로 훌륭한 대학교에 들어갈 수 있다고 믿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중학생/고등학생 때의 학원비와 대학 입시에 드는 비용이라면 괜찮은 집 한 채를 구하고도 남는다(재수를 한다고 가정한다면 더할 것이다). 만연한 실업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취업을 할 수 있을지 불확실하므로 이는 재정적 부담을 더욱 가중시킨다. 


    저출산에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더라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단순한 재정 지원으로는 본 문제를 타파할 수 없다는 것이다. 출산에 대한 전반적인 사회 인식의 개선, 직장 생활 구조의 변화가 수반되지 않고서는 저출산의 수렁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저출산을 해결할 수 있는 대책이 존재한다고 해도 그것은 20년 이상의 장기적인 관점으로 바라보아야하는 정책일 것이다. 국가의 존속을 우려하는 차원에서 초당적인 협력으로 정부 성향에 무관하게 일관적이고 뚝심 있게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II. 과도한 정부 채무

    

    대중에게 가장 인기없는 경제 정책은 바로 허리띠를 졸라 매는 정책, 즉 재정 흑자를 추구하는 경제 정책이다. 물론 재정 흑자가 언제나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경기 침체가 극심할 때 허리띠를 졸라 매는 것은 절벽에서 로프도 없이 자유 낙하를 시도하는 것과 같다. 총수요가 부진한 것이 경기침체의 원인이라면, 정부는 재정적자를 기꺼이 감당하여 조세를 덜 거두어들이거나 정부지출을 늘려 총수요를 진작시킴으로써 경기 불황의 수렁에서 경제를 구해낼 수 있다. 코로나 19로 인한 경기 침체 당시 정부가 과도한 재정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국민들에게 지원금을 지급하여 총수요를 진작시키고자 한 것도 이러한 이유이다. 하지만 공짜 점심은 없다는 말을 상기해야 한다. 경기확장적 정책에는 큰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다. 국민지원금의 확대는 지금도 문제가 되는 인플레이션의 불씨를 당겼다. 한국은행은 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경기 침체의 기로에 선 지금도 3.5%의 금리를 유지하고 있다(중앙은행의 인플레이션 목표치는 2%이다. 2024년 7월의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2.6% 상승했다). 정부채무의 증가율도 큰 근심거리이다. 한때 대한민국 정부의 재정건전성은 신용평가사들이 신용 등급을 책정할 때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했으나 지금은 중립적으로 변화했다3). 

국가채무추이(2005~2024). e-나라지표

    정부채무의 선거 기간에 정치인은 금리를 인하하고 국민들에게 지원금을 지급하여 대중에 영합하고자 하는 강렬한 유혹을 느끼기 마련이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당시 연준 의장이던 아서 번즈에게 금리를 인하하도록 압박한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통화 정책과 재정 정책은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고자 하는 사익 추구의 전문가인 정치인이 아니라, 경제학적 이론과 실무 모두에 능통하고 장기적인 비전을 가진 전문 경제 관료들이 주도하여 시행하는 것이 적합하다. 경제학자는 하나의 경제적 현상에서 가능한 많은 원인을 찾아내려 시도하지만, 정치인에게는 타당성에 관계없이 입맛에 맞는 단 하나의 이유만 있으면 족하기 때문이다. 


III. 지적 역량을 저해하는 교육 제도


    오늘날 우려스러울 정도로 저하된 국가 역량은 부적절하고 비효과적인 현 교육 제도에서 기인한다. 이는 고등학교 교육과 대학 교육 모두에 적용되는 이야기이다. 최신 교육 제도에 대해 자세히 살펴본 것은 아니지만, 오늘날은 이과 학생조차도 미적분, 확률과 통계, 기하와 벡터를 전부 학습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이는 학문을 배우는 데 있어 어느 하나라도 빼놓을 수 없는 기초 중의 기초이다(사람들은 영어를 제1외국어로 간주하지만, 나는 수학이 제1외국어라고 생각한다. 시간과 국경을 초월해 약속된 기호로 축약된 의미를 주고받는 수학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언어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나는 경제학과 신입생들이 듣는 경제수학이라는 강의를 수강한 적이 있는데, 고등학교 수준의 수학을 가르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가르칠 것이 너무나도 많은데, 대학에서 이런 기초적인 지식까지 강의해야 한다니? 지출되는 교육비를 생각해보았을 때 참으로 부끄러운 실태가 아닐 수 없다.


    사람들은 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천문학적인 교육비를 지출하고 있다. 하지만 수능을 준비하는 것은 공부가 아니다. 그것은 훈련이다. 한 번 제대로 학습한 이후에는 문제를 잘 푸는 방법을 계속해서 연마하는 것이다. 극히 한정된 시간에 무시무시한 압박감에 짓눌리며 문제를 풀어야하므로, 제대로 준비를 하지 못하면 제 실력의 반도 내기 힘든 것이다. 의대를 희망하는 최상위권의 경우 하나의 실수가 1년의 준비를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 이런 훈련을 오래 한다고 해서 유익한 지식을 얻는 것은 아니다. 제대로 된 공부는 대학에서 시작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책상에 앉기 위해 모든 기력을 소모하고, 공부할 때가 되니 이제 책과는 담을 쌓는 황당한 학생들을 양성해온 것이다. 대학 입학은 공부의 시작이 아니라 고행의 종말, 즉 해방이 되어버린다. 우수한 서울대학교 학생들조차도 지나친 기력 소모로 번아웃이나 우울증을 겪거나, 자유로운 정신이 억압당해 자신의 온전한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세계의 원칙에 순응하는 병사들을 양산해내지만 정작 세계의 원칙 자체를 새롭게 설계하고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어놓는 창의적이고 기발한 정신을 가진 명장을 탄생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실력이 되는 우수한 학생들은 모두 의대를 지망한다. 경제학적으로 접근했을 때 이유는 자명하다. 의사라는 직업만큼 사회적인 인정과 보수 그리고 안정성을 가져다주는 직업이 없기 때문이다. 즉, 경제적인 인센티브가 적성과 취향을 압도할 정도로 크다. 개인적으로 판단했을 때 이는 매우 합리적이다. 하지만 사회 전체로 보았을 때 그것은 심각한 문제가 된다. 시험 성적이 개인의 역량을 완전히 보여 주는 것은 아니다(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다고 해서 명장이 되는 것은 아니듯이). 하지만 대체로 우수한 성적을 낸 학생이라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좋은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의사는 의료 서비스를 담당하는 민간 부문으로서 국가에 큰 기여를 하며 필수불가결하다. 하지만 모든 능력 있는 사람들이 의사를 하는 것은 어떤가? 이것은 인적 자원의 비효율적인 배분이다. 의사를 지망한 학생들 중에서 분명 의사보다 더 적성에 맞고 하고 싶은 직업을 마음에 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연구를 이끄는 과학자, 혁신을 불러일으키는 기업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 등 사회에 필요한 전문 인력은 여전히 턱없이 부족하다. 정부는 이러한 학생들이 자신이 진정으로 잘할 수 있고 큰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직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경제적인 인센티브에 적극적인 변화를 주기 위해 노력해야한다. 


     많은 사회 지도자들이 입을 모아 창의적이고 기발한 인재를 원한다. 하지만 그런 인재가 자신의 역량을 충분히 펼칠 만한 무대가 마련되어 있는가? 인재가 만족할 만큼의 경제적 혹은 비경제적 보상이 충분히 주어지고 있는가? 말로는 다양성과 창의성을 존중한다고 하나, 아직 대한민국에는 그러한 분위기가 뿌리내리지 못한 것 같다. 튀고 별난 것을 싫어하고, 사회 발전을 저해할 정도로 보수적인 기조가 사회 전반에 여전히 존재하는 듯 보인다. 역량이 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대한민국을 벗어나고 싶어할 것이다. 자신이 매라는 것을 아는 인물이라면, 왜 닭장에서 살고 싶어하겠는가? 새싹을 꺾어 놓은 채 꽃이 피기만을 기다리는 한, 대한민국의 인재 유출은 계속해서 문제로 남을 것이다.


IV. 부의 불평등


    어느 사회에서나 부의 불평등은 주요한 화젯거리였다. 자본주의와 시장 경제가 사회의 근간이 된 이후로는 더욱 그러하다. 산업혁명 초기에, 인간은 그저 생산 요소로서 생산 과정에 투입되는 값싼 자원에 불과했다. 어린이와 여성도 예외가 아니었다. 공장에서 근무한 어린이들은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만큼 가혹한 환경에서 하루에 12시간씩 고된 노동을 해야했다. 영국의 저명한 경제학자 알프레드 마셜은 이런 현실에 충격을 받아 런던의 빈민굴에 가보지 못한 자는 자신의 연구실 방문을 두들기지조차 말라고 했다. 그때에 비한다면, 부자와 빈민은 격차는 줄어들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의 생활수준은 크게 개선되었다. 그러나 부의 불평등 문제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흔히 경제학은 파이에 비유된다. 파이의 크기를 키우는 것은 성장 정책, 파이를 자르는 방법을 바꾸는 것은 분배 정책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분배와 성장은 상충 관계이므로 어느 한 쪽만을 반드시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혹은 두 가지 모두 실패하고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지는 방법도 존재한다). 분배와 성장 중 어느 쪽을 우선시해야 하는가와 같은 질문은, 오늘날 거시경제학이 확답하지 못하는 수많은 문제 중 하나이다. 이는 서론에 제시한 문제와 맥락을 같이 한다. 규범적인 성격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최고의 거시경제학자라도 자신의 윤리에 관한 신념, 바람직한 사회에 대한 견해에 따라 답이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답은 세계 각국의 수많은 정부에서 다른 방식의 경제 정책들로 현실화되었다. 대공황 시기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 로널드 레이건의 신자유주의 정책이 대표적인 예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번다는 것은 딱지를 치는 것과 같다. 딱지가 많은 사람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게임이다. 더 많은 부를 소유할수록 다양한 방식으로 더 많은 부를 취할 수 있다. 자본주의의 달콤한 이득을 모두가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승자가 있다면 패자도 존재한다. 누구나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찬 발언을 믿는 사람은 없다. 파레토 효율적인 완전경쟁 시장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많은 대기업들은 가격을 조정할 수 있는 강력한 시장 지배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소비자의 편익을 흡수할 수 있다. 자유 방임(laissez-faire) 경제 체제를 선택한다면, 꿈과 같던 자유지상주의적 시장경제가 곧 어떠한 파멸적인 결과를 가져올지 직접 목도할 수 있을 것이다. 


    20세기를 대표하는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결국 어디에 줄을 그어야 하는 지가 문제라고 이야기했다. 가장 바람직한 상태는 순수 시장경제와 계획경제 사이의 혼합경제인 것은 자명하다. 정보 비대칭성과 공공재의 문제 등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시장 실패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의 개입은 필수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개인의 사유 재산을 침탈하고 국가의 의지에 따라 경제를 조직하는 계획경제체제가 정답이 아니라는 것은 역사를 통해 이미 깨우친 바 있다. 정부는 어떠한 복지 정책을 시행하고 얼마나 재정을 투입해야 할까? 소득세를 높여야 할까? 부동산과 같은 자산에 세금을 매겨야 할까? 대기업을 얼마나 규제해야할까? 이러한 질문들은 오늘날까지도 경제학계에서 큰 논쟁거리이다. 단순히 학자들 뿐만 아니라 이해관계가 있는 기업인, 정치가도 이 논쟁에 가세하여 논쟁을 벌이고 있다.



결론


    이런 골치아픈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테아이테토스를 읽은 독자라면 나의 대답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정답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다만 정답에 접근하기 위해 노력하는 방법과 그 자세를 깨우칠 수는 있다. 바로 경제학자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이 우울한 과학자는 좀처럼 좋은 면만 바라보려고 하지 않는다. 그는 선택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잘 이해하고 있으며, 단기적 결과와 장기적 결과를 비교할 줄 안다. 사실에 기반한 실증적인 분석에 집중하나 더 나은 사회를 위한 규범적 분석을 행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규범적인 주장을 전개하더라도 자신이 기반으로 하는 특정한 신념과 그 가치를 설득력 있게 제시할 수 있으며, 그 주장으로 인해 발생하는 유익한 결과와 유해한 결과 모두 인지하고 그것을 이야기할 수 있다. 자료를 결론에 맞추지 않고 결론을 자료에 맞춘다. 줄타기 곡예사와 같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외부 조건에 적응하여 균형 있는 관점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각고의 노력을 들이고 나서야 우리는 비로소 난감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발짝 더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나의 역량 부족과 얕은 통찰력으로 인해 설득력 있는 해답을 제시하지는 못했지만, 당면한 사회 문제를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다면 나의 노력은 결실을 거두고도 남은 셈이다. 사회와 사람들을 더욱 사랑하고 명민한 인물이 기로에 서 있는 우리 사회의 문제에 명쾌한 해답을 제시해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어떤 일들은 그 자체로도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는 법이다.




1) 박종오 기자. (2022.06.23). 조순 전 부총리 별세…경제학계 거목 지다. 한겨레. https://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1048170.html

2) 김기환 기자. (2023.02.23). 한국 출산율 0.78…서울 0.59 더 쇼크. 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42530

3) 김정환 기자. (2024.08.13). '25만원' 블랙홀 빠진 한국 … 피치, 재정악화 경고. 매일경제. https://www.mk.co.kr/news/economy/1109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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