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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혁 Jun 30. 2024

학생의 인생론

즐거운 삶을 위하여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들은 잃어버리고 나서야 그 진정한 가치를 깨닫게 된다. 젊음이 대표적이다. 꽃이 지고 나서야 봄이 왔었다는 걸 깨우치듯이, 신체의 활력이 떠나고 나서야 젊음을 누렸다는 걸 깨닫는다. 누구나 젊음을 누릴 수 있으나 그것을 영원히 누릴 수는 없다. 젊음이 주는 신체의 활력, 과감한 도전정신 그리고 막연한 낙관주의는 사람들로 하여금 과거를 돌아보며 찬란했던 자신의 젊음을 그리워하게 만든다. 아련한 젊음이라는 기억의 중심에는 대부분 대학 시절의 기억이 존재한다. 갑갑한 수험 생활에서 탈출하여 새로운 세상으로 발을 내딛는 인상깊은 시기이기 때문이다. 대학이라는 하나의 사회에 진입함으로서 사람은 많은 것을 배우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며 수많은 실패를 경험하게 된다. 그렇다. 대학생활은 인생을 배우기 시작하는 시기이다. 배움은 시작이 중요한 법이다. 


    스무 살의 젊은 나날로 돌아갔다고 상상해보자. 새파란 스무 살 젊은이에게는 모든 것이 새롭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나이에 대학에 입학하여 본격적으로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법을 배우게 된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격차는 크지만, 고등학교와 대학의 격차와 비교한다면 사소해보일 정도로 작다. 대학에 입학한 스무 살은 재정적으로 독립하지 못했더라도 어른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청소년기의 철없는 장난과 경박한 행태는 더이상 어른으로서 용납되지 않는다. 어른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 젊은이는 대학이라는 작은 사회 속에서 타인과 어울리며 특정 상황과 대화 상대에 맞추어 말하고 행동하는 법을 배워나가게 된다.


    하지만 대학은 단순히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만남의 장으로서만 기능하진 않는다. 1088년 최초의 대학인 볼로냐 대학교가 설립된 이후부터 대학은 최고의 고등 교육 기관으로서 교양 있는 사회인을 양성하고 새로운 지식을 탐구하는 지성의 선봉장으로서 활약해왔다. 학생은 대학에서 자신이 원하는 학문을 선택하여 전문 지식을 쌓게 된다. 학문은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독특한 시각이다. 학문을 배운다는 것은 곧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것과 같다. 수십 년 이상 학문에 전념해온 학문의 대가인 교수로부터 학생은 수많은 것을 배우고 그 지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을 거친다. 

 

    정리하자면 대학생은 대학에서 필수적으로 사회생활과 학문을 배운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책상에 앉아 교육자의 강의를 듣고 친구들과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대학생활의 전부라면, 고등학교와 전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위의 활동은 너무나도 수동적이다. 재차 언급하자면, 대학은 지성 있는 교양인과 학문에 전념하는 학자를 키워내는 교육 기관이다. 비판적 사고 능력과 다채로운 지식을 함양한 교양인이 되기 위해서는 능동적으로 새로운 것을 배울 줄 알아야 한다. 스무 살부터는 노력해야 나이를 먹는다는 말과 같은 이치다. 학생은 젊을 때에 끊임없이 스스로를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나이를 먹기 시작하면 사람은 육체적 활력을 잃음과 동시에 지적인 활력을 점차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신중함이 열정을 압도하여 도전보다는 안정을 추구하게 된다. 중년의 도전은 청년과는 다르게 더 많은 용기와 대가를 요구한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는 격언은 지당하다.


    나는 지금까지의 인생을 배움에 바쳤으므로, 지적 활동 이외에는 별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없다. 하지만 대학생으로서 지적이지 않은 활동에 성실히 임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어떤 직업에 종사하든 개인은 사회 속에서 타인과 어울리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활동으로 대화와 취미활동이 있다. 자신의 의견을 조리 있게 전달하는 법, 타인의 의견을 진솔하게 경청하는 법과 같은 소통 기술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중요하다. 소통하는 법을 깨우치는 것은 정보 전달을 효율적으로 만들어줄 뿐만 아니라 타인과 원만한 관계를 맺을 수 있게 해준다. 같은 내용을 전달하더라도 상대방의 기분을 해치지 않으면서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게 전달할 수 있다면 그보다 훌륭한 대화는 없을 것이다. 또한 대화 상대와 상황에 따라 할 말을 구분하는 것 역시 필요하다. 이것은 말의 맥락을 파악하는 활동이다. 친한 친구와 즐겁게 술을 마실 때 할 수 있는 말과 엄숙한 분위기의 공식 석상에서 할 수 있는 말은 판이하다. 이런 상황에서 적절하게 말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면 큰 낭패를 볼 것이다. 이런 맥락을 읽어내는 법은 책으로 배우기 어렵다. 타인과 함께 어울리면서 사회 생활에 참여하다보면 자신이 모르는 새에 그 맥락을 자연스레 파악하게 된다. 대화를 포함한 인간관계는 누구에게나 어려우며, 사회생활을 막 시작한 젊은이에게는 특히 그렇다. 하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서 사회와 완전히 동떨어져 살 수 없다. 사회적 인간은 타인을 필요로 한다. 대인관계는 고통 이상의 행복을 안겨주기도 한다.


    세상의 일은 두 가지 일로 나뉘어진다. 해야될 일과 하고 싶은 일이다. 해야만 하는 일이 곧 하고 싶은 일이라면 그것보다 좋을 수는 없겠지만 그런 경우는 모두가 알다시피 극히 드물다. 해야만 하는 일은 하나의 의무로서 사람에게 고통을 안겨준다. 대학생에게는 시험, 직장인에게는 직장생활이 그 예이다. 해야만 일에만 몰두하면 사람은 고장나게 된다. 몸이 정신의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조금씩 무너져 내리는 것이다. 가능하다면 사람은 해야 될 일과 하고 싶은 일의 비율을 잘 조절해야 한다. 즉 일할 때는 잘 일하고 쉴 때는 푹 쉬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몸과 정신의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다. 그 수준을 넘어 어떤 일에 자발적으로 지나치게 몰두하는 사람은 장기적인 삶의 관점에서 미련하다고 볼 수 있다. 지속 가능한 삶이야말로 훌륭한 삶이다. 


    따라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시간이 날 때 그것에 즐겁게 몰두하는 시간을 따로 가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는 이 일을 취미라고 칭한다. 취미는 목숨을 걸 필요가 없다. 취미를 즐긴다고 해서 돈을 받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취미가 사람에게 주는 것은 오직 즐거움뿐이다. 또한 취미에는 서열이 없다. 그것을 잘하건 못하건 상관없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취미를 찾아 즐기는 것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취미에 대해 더 많은 지식을 쌓고 그것을 연습한다면 더 재밌게 즐길 수 있는 여지가 존재한다. 즉 취미를 더 잘 즐길 수 있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골프, 수영 그리고 독서가 있다. 이 취미 모두 배우면 배울수록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취미들이다. 


    내가 위의 예시 중 즐기는 취미는 독서뿐이므로, 이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독서는 진입장벽이 높은 취미이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으나, 개인의 집중력과 상상력 그리고 배경 지식에 따라 재미가 천차만별이라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긴 글을 읽는데 그리 익숙하지 않다. 첨단 정보화 시대에 긴 글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은 비효율적이고 사람들에게 큰 인상을 남기지 못하므로, 자연스레 짧은 글과 단순한 어휘를 선호하게 된다. 이러한 글에 익숙하다면 300페이지를 거뜬히 넘기는 대부분의 책들은 지루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취미에 좋고 나쁨은 없으므로, 사람들이 독서를 즐기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을 한탄하거나 경멸하는 것은 옳지 않다. 사람들은 한정된 시간에 각자 자신이 가장 하고 싶은 것을 행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서를 즐기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독서에 매몰되는 것을 즐기는 나로서는 그보다도 기쁜 일은 없을 것이다. 독서는 다른 취미가 가져다주지 못하는 독특한 즐거움을 가져다준다.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라면 책을 통해 아우구스투스 통치 하의 로마를 여행하거나,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의 희극적인 만담을 코앞에서 관전하거나 소크라테스의 웅장한 변론을 고대 아테네에서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 상상력으로 하나의 세계를 그려내어 그 세계를 여행하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것이다. 열렬한 독서가는 서재에 앉아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으며 인류의 세계를 여행할 수 있다. 


    지금까지 학생이 배워야 할 것들로서 대인관계, 학문, 대화 그리고 취미에 관해 이야기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아직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것은 인생에서 추구해야 할 목표를 찾는 것이다. 지금까지 말한 것들이 오늘에 관한 일이라면, 인생의 목표는 내일에 관한 일이다. 오늘 모든 것이 실패해도 내일의 삶을 기대하게 만드는 목표를 찾으려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목표 탐색 과정은 필연적으로 수많은 시행착오를 수반한다. 젊음은 방황의 시기다. 책상에 앉아 공부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대학생은 세상에 관해 모르는 것이 너무나도 많을 수 밖에 없기에, 자신의 목표를 설정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하지만 인생의 목표를 설정하는 것은 그만큼 가치 있는 일이다. 세상은 개인이 때로 감당하기 힘든 시련을 끊임없이 주는 것을 즐긴다. 목표는 역경과 고난을 딛고 다시 도전할 수 있는 힘을 준다.


    프로타고라스는 "인간이 곧 만물의 척도이다"라고 주장했다. 플라톤은 이러한 견해를 대단히 경멸했지만, 인생을 사는 방법에 관해서라면 프로타고라스가 옳다. 인생을 사는 데 있어서 절대적인 기준을 세울려고 노력하는 것은 어리석다. 각자의 인생은 각자가 가장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번 글에서 내가 살아온 짧은 인생을 바탕으로 훌륭한 삶을 사는 법을 탐구했다. 어쩌면 너무 원론적이고 비현실적인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떤 방법을 택하건, 원칙은 변하지 않는다. 능동적으로 새로운 것을 배우면서도, 스스로를 파괴하지 않고 유쾌함을 잃지 않는 즐거운 삶을 살려고 노력해야 한다. 진정한 인생의 동반자는 자기 자신이다. 인생의 처음과 마지막을 모두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기 자신밖에 없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보살피며 인생의 다양한 즐거움을 추구하는 삶, 이것이 내가 주장하고자 하는 훌륭한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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