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이의 위대함, 위대한 이의 평범함 하나(下)

누군가의 부모는 곧 누군가의 자식이기도 하다

by 최승혁

최 작가가 처음 인터뷰를 요청하였을 때, 정 선생은 사뭇 난감하다는 듯이 말했다.

“미안하지만 나는 할 얘기가 별로 없어. 무슨 대단한 얘기를 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무슨 얘기를 해야 할 지….”

“인터뷰라고 해서 대단할 거 없어. 그냥 하고 싶은 얘기를 하면 최 작가가 알아서 정리해서 글을 쓸 거야.”

최 기자가 말했다.

“맞습니다. 저는 인터뷰를 요청하는 사람에게서 짜임새 있게 완성된 답변문을 기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솔한 마음으로 본인의 경험을 공유해주신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 수많은 경험을 하나의 주제로 엮어 글로 만들어내는 것은 작가의 몫이에요.”


그래도 여전히 부담스러운 모양인지 정 선생은 자신이 예전에 썼던 글을 보여주었지만, 쉽사리 자신의 깊은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였다. 최 기자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긴장이 풀렸는지, 저녁 식사를 하는 와중에 문득 말을 꺼내었다.

“당신 어머니도 당신처럼 공부를 참 열심히 했어.”

최 작가는 식사 중 노트와 펜을 챙기지 못한 것에 속으로 탄식하며 긍정했다.

“코피가 날 정도로 열심히 하셨다 하셨습니다. 새벽부터 도서관을 집처럼 드나들고, 시간이 날 때마다 아이들을 돌봤다 하셨어요.”

“맞아, 하물며 당신 아버지와 친할머니도 대단하신 분들이야. 그 어려운 시절 제주도에서 4남매를 키워 대학에 보냈지 않나? 게다가 아버지는 서울대학교까지 들어갔지. 심지어 두 번이나. 큰고모는 이화여대에 들어갔고.”

“민족의 자랑인 학교에 들어가는 것은 크나큰 영예입니다. 저는 아들로서도, 학생으로서도 아버지를 존경합니다. 그것은 아버지가 남들보다 뛰어나다는 지극히 비교적이고 경쟁적인 이유는 아닙니다. 그가 인생의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는 것에 대한 찬사입니다. 아버지는 저에게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없다는 이치와 경쟁의 협소한 틀에서 벗어나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을 알려주셨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사나이의 아들로 태어난 것만큼 행복한 일도 없지요.”

최 작가는 자랑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정 선생은 한동안 첫째 딸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최 작가의 어머니가 유천 국민학교 6학년 때 우수상을 받았던 일, 문화 여자중학교를 거쳐 호수돈 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할때도 머리가 비상했다고 다들 칭찬이 자자했던 일, 2등하면 분하여 잠에 도무지 들지 못했다는 일, 최 기자의 모임에서 대학교 합격 이후 축하패를 전달했다는 일 등 정 선생은, 최 작가의 어머니가 어쩌면 잊어버렸을 지도 모르는 일까지 세세하게 하나하나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 부모에게 있어 자식은 곧 세상일지도 모른다.


“그때 한창 공군사관학교에 다니는 외삼촌네 집에서 자고 다음 날 시험을 봤어. 그때는 시험도 달라서 학교에 직접 가서 쳐야만 했는데, 마침 멀지 않았던 거지. 30분 정도면 도착하니 1시간 전쯤 출발하면 되겠거니 해서 출발을 했는데, 그날따라 차가 너무나 많았어. 하필이면 그날 공사를 하고 있었던 거야. 안절부절 못할 때 갑자기 정문에 채 도달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차에서 내려 뛰어들어간 거지. 나는 들어가는 것도 못 봤어. 나도 그렇게 떨렸는데 그 애는 얼마나 떨렸겠어. 내려주자마자 곧바로 신림동에 있는 절에서 3000배를 하기 시작했어. 기도하고 또 기도했지. 1400배정도까지 했던 것 같아.”

정 선생은 웃으며 이야기했다.

“얼마나 떨렸는지 발표 당일날 붙어있던 결과지를 못 봤다니까. 사람들을 헤치고 가서 볼 자신이 없었던거야.”

“얼마나 긴장되었을지 짐작이 갑니다. 저도 수능 당일날 비슷한 심정이었어요.”

“그때는 본고사였었지. 시험을 치기도 전에 원서를 내야했어. 한 스님이 이 아이는 학업운이 없다며 지방 대학이나 쓰라는 얘기를 했던 게 생각이 나는구나.”

최 기자가 말을 덧붙였다.

“나는 청주 교대에 보낼 생각이었네. 대학교에 붙었을 때 학비를 감당할 능력이 모자라다고 판단했거든. 6남매의 첫째였으니까. 게다가 학교에서 서울대학교를 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어.”

“당시에는 경기고등학교가 서울대학교 입학생을 제일 많이 배출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랬던 것 같네. 그런데 담임 선생이 간곡히 부탁했었지. 학교의 명예가 있으니 1등인 딸은 당연히 서울대학교에 원서를 넣어야한다며 집까지 찾아오지 않았던가. 결국 허락하고 말았지.”

만약 그가 다른 선택을 하였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나는 새삼 세상의 수만 가지의 가능성을 다시금 떠올리게 되었다.


정 선생은 최 기자에 대한 자랑도 잊지 않았다.

“최 기자가 가문을 널리 알렸어. 그의 아버지는 넷째인 최 기자와 중요한 일이 있으면 꼭 상의하고는 하였지. 어디서든 믿음과 신의를 주는 사람이야. 지역 유지였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지. 동네의 약방의 감초 같은 존재라고 할까? 참 다양한 일을 맡았었지. 이사를 갈려고만 하면 동네 사람들이 최 기자를 뜯어말렸었어. 영원한 기자였지. 이제는 이 동네를 고향보다도 오래 살았구먼.”

“최 기자가 가족을 안정적으로 이끈 덕분에 자식들도 엇나가지 않았던 것 같아. 다행스러운 일이지.”

“나의 아버지, 그러니까 당신의 외증조부께서도 다른 사람들을 항상 도와줄려고 노력하셨어. 나는 1944년 일본에서 태어났어. 해방 이후 아버지의 손을 잡고 충청북도 보은군 회북면에 정착해 살기 시작했지. 아버지는 그곳에서 농협, 예전에는 다르게 불렀던 것 같구나. 아무튼, 농협 금융 일을 하시다 부면장으로 면사무소에서 일하셨어. 많은 사람들이 좋아했지. 하지만 여동생을 도와주다 그만 사기를 당하고 말았어. 그 일로 화병이 도지셔서 앓아 누으시다 폐결핵에 걸렸어. 그렇게 투병하시다 폐렴으로 세상을 떠나시고 만 거야.”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어쩌면 돈을 잃었다는 고통보다도, 자식 뒷바라지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그분을 더 고통스럽게 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지, 나는 그 이후로 학업을 중단하고 기술을 배워 공장에서 일하기 시작했어. 어머니는 아버지의 산소를 쳐다보지도 않았지. 8남매를 혼자 키우도록 남겨두고 세상을 떠나버린 그이가 미웠던거야.”

“정 선생님과 형제 자매분들은 정말 힘든 삶을 사셨습니다.”

“제일 힘든 건 어머니였지. 고생을 많이 하셨어. 당신의 외삼촌이 돌을 맞이했을 무렵 작고하셨어.”

정 선생은 자신의 부모 사진을 보여주었다. 아버지는 훤칠하고 말끔한 차림을 하였으며, 어머니에게서는 집념과 단호한 의지가 느껴지는 듯했다.


“학업을 끝마치지 못한 것이 평생의 한이었어. 늦은 나이였지만 다시 배우기 시작했지. 한문, 영어, 일본어 가리지 않고 배웠어. 평생교육원도 다니고. 늘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 매일 새벽마다 가족의 안녕을 위해 기도하는 것도 잊지 않았지. 남들은 읽는 데 한참 걸리지만, 워낙 익숙하다보니 몇 분만에 읽어.”

나는 정 선생이 새벽마다 기도하는 것을 종종 본 적이 있다. 종교를 믿지 않으나, 누군가를 위해 절실히 기도한다는 것은 위대한 일이 아닌가?

“영어 학원에서 자기소개를 계속 연습해보라 하더라고. 정말 열심히 연습했지.”

그러면서 정 선생은 영어로 자기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여러 이유로 학업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했던 정 선생이지만, 짧은 소개에서 나는 감탄하였다. 영어를 조금이라도 할 줄 알면 최상층 지식인으로 대우받던 시절에 태어나, 고등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의 입에서 자신감 있는, 자연스러운 영어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저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 얼마나 배우고 노력해왔을까!


“나는 배우지 못했다는 게 수치스러웠어. 그래서 누구한테도 말하지 않았지. 누구보다도 부단히 노력했어. 그랬더니 사람들이 인정해주더라. 다들 내가 학교도 제대로 끝마치지 못했다고 하니 놀라워했어. 고등 교육을 제대로 받은 사람처럼 보였다는거야.”


정 선생은 자신의 영어책을 가져와 나에게 보여주었다. 나는 또 한 번 감탄하고 말았다. 선생의 영어책은 이미 닳을 대로 닳아 누런 종이를 펄럭거렸다. 수없이 접힌 페이지와 빼곡히 써내려간 글씨는 살아온 짧은 인생동안 공부에 평생 몸담았던 나에게 정 선생의 학업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느끼게 해주었다. 나는 진심으로 정 선생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이 하고자 일에 모든 것을 걸고서 끝까지 노력해보았던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노력의 위대함 그 자체에 대한 존경심이었다.

나는 평생 공부의 끈을 놓지 않으려 노력했던 정 선생이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나와 우리 모두가 만들어갈 미래의 대한민국이,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나이, 학벌, 성별에 관계없이 자신의 열정을 쏟고 재능을 펼칠 수 있도록 격려하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그 바람에 그치지 않고 나 역시 나의 일에 매진하여 사회의 한 단계 진보에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리라.



“저는 정 선생님의 첫째 딸의 아들이기 때문에, 이 질문을 하지 않을 수가 없겠군요. 정 선생님께서는 아들이냐, 딸이냐 관계없이 자식을 전부 아끼고 사랑하시나요?”

“당연하지. 당신의 외삼촌을 낳을 때 정말 기뻤지만, 그렇다고 딸들을 아끼지 않는다는 게 아니야. 마트에 가면 직원분들이 따님들이 집에 어찌 그리 선물을 많이 보내주시는지라며 딸들에 대한 칭찬을 아끼시지 않더라고. 딸들이 나를 엄청 챙겨줘. 효녀야 효녀.”

“정말 자랑스러우실 것 같습니다.”

“다 그렇지. 다 고마워. 충실히 살고 열심히 살아줘서…..”

옆에서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최 기자는 어느새 눈시울을 붉혔다. 최 기자는 누구보다도 강인한 사람이었다. 비극적인 전쟁도, 찢어질 듯한 가난도, 끝없는 시련도 그를 흔들리게 할 수 없었다. 누구에게도 자신의 책임을 떠넘기지 않은 채, 그는 이 세상에 홀로 우뚝 선 하나의 성인으로서 이 험난한 세상을 헤쳐왔다. 그런 그 역시 자식을 한없이 아끼고 사랑하는 가장이었던 것이다.



이야기는 흐르고 흘러 어느 새 하늘이 새카매지고, 밤이 드리웠다. 최 작가는 이야기의 끝이 다가옴을 직감했다.

“시간이 너무 늦어버렸군요. 아쉽지만 이제 마지막 질문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최 작가는 잠시 목을 가다듬었다.

“일생 동안 이루고 싶었거나, 또는 이룬 일들이 있었다면 이야기해주십시오.”

최 기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부모의 소원은 별 게 아닐세. 나는 하나의 가정 역시 하나의 국가라 생각하네. 국가의 각 구성원이 맡은 바를 잘 수행해야 평화가 찾아와. 가정 역시 마찬가지일세.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일을 최선을 다하여 평화롭기를 바랄 뿐이야.”

정 선생 역시 자신의 일생의 정수를 담담하게 고했다.

“우리는 이미 많은 나이에 원하는 것들을 성취했음에 감사하고, 만족하며 살고 있어. 손자들이 한때 걱정되고 우려하기도 했지만, 다들 공부에 열중하는 학생들이야. 손자의 부모들도 자식들이 잘 되기를 바라며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다는 걸 알아.”

“1세대인 우리는 손자 손녀가 잘 되기만을 바랄 뿐이네. 최고의 바램이지. 우리 식구들이 원하는 것을 성취하고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야.”


정 선생이 일생의 반려자에게 물었다.

“당신은 나를 만나서 불행했다고 생각해요?”

최 기자는 마주보며 웃었다.

“나에게는 엄청한 행복이었지. 당신이 없었다면, 나와 가정이 이리 평안할 수 있었을까 싶어. 나는 바깥을 주로 돌아다니다보니 가정을 잘 몰랐거든. 당신 덕이 큰 거야.”

“그래도 당신은 열심히 일하고 가정적이었어요. 중심을 잡아준거야.”

“팔순 잔치 때 받은 감사패만 해도 감격스러워. 자식들이 부모에게 감사하다 생각하니까.”


위대한 가장은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항상 최 작가에게 맡겨두고, 알아서 하게 해라 했지.

지금의 마음가짐을 보면, 그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평생을 헌신한 어머니 역시 말을 이었다.

“우리 식구들과 당신을 위해 매일 기도한단다. 항상 잘 되길 바라.”



집을 나오며 하늘을 올려다보니, 도시의 야경 속에서도 빛나는 별 하나가 밤을 미약하게나마 밝히고 있었다. 고독하고 외로운 별이나, 이 세상 어딘가에는 나처럼 저 별을 올려다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떠올린다면, 더 이상 외롭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며 최 작가는 생각에 잠기며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 버스가 자신의 목적지와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로…





-후기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뿔뿔히 흩어진 지금, 우리는 너무나 외롭고 슬프다. 사람은 개인적인 동물이기도 하지만, 사회적인 동물이기도 하다. 개인은 사회 속에서 각자 조화를 이루고 살아갈 때 비로소 온전한 개인으로서 존재할 수 있다. 사회에 동화되는 것이 아닌, 자신과 사회 사이의 균형을 추구하는 것이다. 한때 조각났던 나의 삶처럼, 대한민국은 분열되고 있다. 외세, 이념, 좌우, 지역, 성적, 세대…… 우리를 갈라놓고자 하는 것들은 셀 수도 없이 많다. 첫 번째 인터뷰 글인 외조부님들과의 대화는 경험하지 못했던 세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자 했다.

한 세대는 보통 30년이라고들 한다. 1940년 세대의 6.25전쟁과 가난, 1970년 세대의 IMF라는 국가적 위기, 2000년 세대의 선진 국가 사회 수준의 과도기적 과정에서 겪는 극심한 진통…. 시대적인 위기는 끊이지 않았다. 치열한 시대를 살아온 대한민국의 전 국민 한명 한명이 평범하며 위대한 영웅이자 역사의 산 증인이다. 우리는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에 대하여 편견과 틀을 가지고 바라볼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해하고 소통하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해야 하는 게 아닐까. 당연하지만, 이를 강요해서도, 억압해서도 안된다. 만인의 자유와 그에 따른 책임을 존중하는 것이 인류의 근본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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