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텃밭에 덩굴장미는 물론 백장미까지 흐드러지게 피었다. 장미꽃이 절정인 유월의 첫 주에 어머니 추도식이 있다. 텃밭에 모인 형제자매들은 활짝 핀 장미꽃을 보며 탄성을 지르기도 하지만 장미꽃 향기 속에서 묻어나는 어머니 생각에 눈물을 적시기도 한다.
추도식을 마치고 정담을 나누는 데 막냇동생이 어머니 생각에 가슴이 먹먹하다며 눈시울을 붉힌다. 그 당시 사는 게 힘들어 어머니와의 마지막 여행에 동참하지 못하여 지금까지도 후회스럽단다. 일본 오키나와로 가족여행을 다녀왔던 이야기를 하는 모양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번에는 하나도 빠짐없이 여행을 가보자 한다. 그래야 돌아가신 어머니가 기뻐하실 것이라며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장미꽃 향기에 여행이야기까지 나오자 모두 마음이 말랑말랑해졌다. 그런데 막상 계획을 세우려니 각자 가고 싶은 곳도 많고 일정도 중구난방이다. 육 남매 의견이 이리도 제각각일 줄은 나도 몰랐다. 사실 그간에도 여행제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 번도 실천하지 못한 숙제다. 결국 말이 없는 형을 대신해 둘째인 내가 교통정리를 했다.
원칙은 간단하다. 해외여행은 다음으로 미루고 국내로 가되 주중에 우선 하룻밤만 자고 오자고 했다. 우리 육 남매가 살아온 세월을 다 합치면 삼백년도 넘는데 누구 눈치를 볼 것 있을까. 남편이나 아내는 물론 아이들까지 모두 떼어놓고 정 씨 육 남매만 가자고 했다. 각자 딸린 식구가 없으니 목적지와 날짜를 정하는 것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총무를 맡은 넷째는 한술 더 떠서 아예 단체로 티셔츠를 맞춰 입고 가자고 한다. 색깔은 어머니가 좋아하셨던 빨간색이다. 앞에는 큼직하게 태어난 순서대로 번호를 매기고 등짝에는 ‘차카게 살자’라고 인쇄해서 입고 다니면 어떻겠냐고 한다. 말할 것도 없이 박장대소다. 마음은 벌써 여행을 떠나고 있다.
드디어 여행 떠나는 날 아침이다. 대전 월드컵 경기장 주차장에 모인 육 남매는 초등학생처럼 들떠 있다. 차에 오르자마자 각자 먹을거리를 꺼내는 데 쑥인절미에 자두, 귤, 복숭아는 물론 커피와 찰보리빵까지 완전 먹자판이다. 여동생들은 결혼하고 나서 남편과 아이들을 떼어놓고 여행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환호성을 지른다. 수줍음 타던 소녀들은 어느새 K-아줌마가 되었다. 이렇게 말도 많고 드센 줄은 처음 알았다. 온갖 새소리를 다하다 당뇨와 고지혈증 얘기가 나오고 형제자매들 입에 비타민까지 넣어준다. 막내 남동생, 정기사가 운전하는 차 안에 틀어놓은 씨씨캐츠의 흥겨운 디스코 음악도 가시나들 입담에 주눅 들었다.
첫 번째 목적지인 선유도다. 태어난 순서대로 일 번부터 육 번까지 줄을 맞춰 단체사진을 찍었다. 육 남매가 한꺼번에 나오는 첫 사진이다. 일 번은 부모님 생전에 이곳 몽돌해수욕장에 같이 온 와본 적이 있다며 거길 가보자고 한다. 한여름이라 사람들이 많을 줄 알았는데 장마철이라 그런지 몽돌해수욕장 가는 길이 한산하다. 더구나 해변으로 가는 길은 공사 중이라 진입이 불가능하다. 할 수 없이 신선이 놀고 갔다는 선유봉 앞에서 사진만 찍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다음에 다시 와야겠다.
다음 목적지는 목포다. 바다가 훤히 보이는 언덕 위 호텔에 짐을 풀고 해상케이블카로 향했다. 고하도를 출발한 케이블카가 유달산을 한 바퀴 돌고 내려오는 데 구름 사이로 뜬 무지개가 육 남매의 첫 여행을 반긴다. 하늘에 매달린 채 바라보니 목포는 역시 항구가 맞다. 이 지역 여름 별미는 누가 뭐라고 해도 역시 민어다. 지인이 예약해 준 선어집에서 나이 든 주인 부부가 민어회와 덕자찌개를 한 상 가득 차려놓고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다. 덕자는 병어 큰 놈을 말한다. 점심에 군산 맛집에서 꽃게장에 우럭찜과 박대구이를 하도 맛있게 먹어 저녁을 못 먹을 줄 알았다. 웬걸 다들 갈수록 맛있는 음식이 나온다며 밥을 두 공기씩이나 해치운다. 가게 안주인은 우리 육 남매가 겁나 부럽다며 자청해서 단체 사진까지 찍어준다.
육 남매의 첫 여행에 잠만 자기는 아깝다. 내가 준비해 온 파자마로 갈아입고 한 방에 모두 모이자고 했다. 어린 시절 시골집에서 놀던 이야기며 돌아가신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하는 사이 목포의 밤은 깊어만 갔다. 먼저 세상을 떠난 두 동생에 관한 기억은 각자 달랐다. 나만 알고 있던 이야기도 있고 내가 알지 못하던 에피소드도 있다. 흘러간 추억은 쓰던 달던 모두 아름답고 소중하다. 창밖에는 휘영청 밝은 보름달이 우리 육 남매의 이야기를 엿들으며 우윳빛 구름을 타고 흘러가고 있다.
여행을 마치는 날이다. 누구도 서두를 것 없이 느긋하다. 아예 하룻밤을 더 자고 가자는 얘기까지 나온다. 음식도 맛있고 어린 시절 이야기까지 모두가 달달하고 재미있어 죽겠단다. 다음에 또다시 이렇게 여행을 오자며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야 숙소에서 나와 노적봉으로 향했다.
유달산에 오르니 목포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대학루라고 해서 무슨 대학인가 했더니 학을 기다리는 누각이란다. 대학에서 근무하는 내 직업은 못 속이나 보다. 사방팔방으로 시원하게 뚫린 대학루(待鶴樓)의 시원한 바람이 흐르는 땀을 씻어준다. 내 역할은 맛집을 안내하는 일이다. 하당 평화광장 맛집에서 보리굴비와 홍어회로 점심을 먹은 뒤 아예 청호 시장에 들러 홍어까지 샀다. 우리 육 남매가 모두 홍어까지 좋아하는 것을 보니 역시 한 어머니 아들, 딸이 분명하다.
여행의 마지막 일정은 요트를 타는 일이다. 유달산 아래 마리나에서 목포대교를 거쳐 고하도 용머리를 둘러보는 코스다. 요트는 구경만 했지 타보는 것은 처음이라며 신기해한다. 이층짜리 멋진 요트에 승선하니 간간이 내리던 장맛비도 그치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육 남매가 요트 선상에 나란히 앉아 두 다리를 쭉 뻗고 거침없이 항해하니 이미 세상을 다 가진 듯하다.
육 남매의 첫 여행은 짧았으나 그 여운은 아직도 남아있다. 남도의 음식도 좋았지만 더 좋았던 것은 밤늦도록 한 방에 모여 어린 시절의 추억을 나누던 시간이다. 유달산 대학루 아래 미술전시장에서 본 질그릇 항아리 그림이 떠오른다. 항아리를 그린 작가는 우리 육 남매를 보더니 정겨운 모습이 자신이 그려온 항아리 같단다. 맞는 말이다. 우리 육 남매는 잘난 것 없이 그저 제자리를 지켜온 투박하고 오래된 항아리다. 김칫독이나 고구마 항아리 같은 형제도 있고 메주항아리나 고추장 단지 같은 자매도 있다.
우리 육 남매를 모아 놓으면 아마 그럴듯한 장독대가 될 듯싶다. 오늘은 그 장독대에서 항아리를 닦으며 웃고 계실 어머니가 유난히 그리운 날이다. 육 남매의 다음 여행이 벌써부터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