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놓아야 편할 거 같은데
틀어져버린 우리의 계획과 달리 일상생활에 변화가 찾아오지는 않았다. 다만 달라진 건 마음가짐이었다.
"이번에는 마음 편하게 해. 안된다고 해도 전처럼 너무 우울해하지 말고."
"응, 그럴게. 큰 기대 없이 편하게 할게."
시험관 2차를 바로 시작하게 되면서 남편이 걱정하던 건 하나였다. 내가 너무 감정에 치우쳐 우울해할까 봐. 1차는 생각보다 많은 기대를 했고 처음이라 전전긍긍하며 심적으로 부담이 많이 들었다. 시간이 갈수록 아니라는 걸 느꼈을 땐 우울감이 바닥을 치며 주소 없는 길바닥에 내팽개쳐진 사람처럼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 모습을 나도 생생하게 느꼈고 옆에서 보는 남편도 힘이 들었기에 2차를 시작하면서 남편은 몇 번이고 당부의 말을 건넸다. 시험관을 하면서 안쓰럽게 보이던 내가 우울해하며 우는 모습까지는 보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 내 모습이 나도 낯설고 싫어서 이번에는 마음을 편하게 먹기 위해 감정을 다스렸다.
간절한 마음을 겉으로 티 내지 않고 누군가에게 나의 상황을 전달할 때 절대 울지 않기. 그게 첫 번째였다. 언니와 임신과 관련된 얘기를 하다 보면 결국 눈물이 터지곤 했다. 그걸 알기에 겪었던 슬픔은 잊어버리려 노력했고 나를 위로한다며 만남을 가졌을 때도 나는 시험관에 대해서 꿋꿋하게 버티며 울지 않았다.
"언니랑 얘기하면서 눈물 날 뻔했는데 참았어."
"잘했어."
사람의 감정이란 게 완전할 수는 없다는 걸 안다. 말은 이렇게 해도 이식을 하기 위해 전과 같은 반복된 생활을 하면서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건 전혀 달라지지 않았으니까. 그저 마음의 균형을 찾으려고 너무 부정적이지도, 감정적이지도, 긍정적이지도 않게 조절을 할 뿐이었다. 무언갈 해야만 한다는 강박마저 스트레스일까 봐.
아기를 가진다는 자체의 어려움을 말할 때면 주변에서도 시험관으로 임신을 했다는 경우가 많다고 종종 듣곤 했다. 한 횟수도 나보다 많고 조건도 어려울 수 있지만 대부분 성공을 했다며 그분들이 말하길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포기하니까 되더라.' 이 말이었다고 한다. 이해가 가는 말이지만 사실 절대로 해낼 수 없는 말이었다.
마음의 균형을 맞추는 것만으로도 쉽지 않은데 포기를 하거나 마음을 내려놓는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낮춰도 남았고 무얼 먹어야 좋은지에 대해 정하지 않아도 손이 가는 건 따로 있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포기를 할 때가 언제인지 모르지만 그때까진 감정을 온전히 내려놓을 자신은 없었다.
"먹고 싶은 대로 먹고 하고 싶은 대로 해."
남편의 말을 따라 운동은 하고 싶을 때 가볍게, 먹고 싶은 게 있으면 가리지 않고 먹었다. 내가 가진 생각과 신경 쓴 행동이 어쩌면 다 스트레스로 받아들이고 있는 거 같아 뭐든 편하게 하고 싶었다. 마음이야 내 생각대로 조절이 안된다고 하지만 사소한 거라도 평소처럼 하면 전과 달리 조금이나마 나을 것 같았다.
"내막이 잘 자랐네요. 이식 진행해도 되겠어요."
10일분의 약을 먹고 이식 진행을 정하기 위해 난임센터를 방문했을 때도 걱정은 없었다. 마음 편한 게 제일이라고 하니까. 내가 정한 루틴을 전처럼 지키지 않아도 내막은 잘 자랐고 어김없이 상담실에 들러 이식 전 맞는 주사와 질정을 처방받았다. 이식 날짜와 약에 대해 설명을 듣고 나는 여유롭게 집으로 올 수 있었다.
내 성격을 알기에 스스로 정한 건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을 들이는 거였다. 지정된 시간에 먹는 약을 상황에 따라 늦게 먹어도 괜찮고 의무적으로 행할 건 없다고. 그렇게 정해놓으니 반복된 패턴이나 균형을 지키려는 나의 노력은 점차 평온을 찾게 해 주었고 더는 치우치지 않게 나를 바꾸어주었다.
그리고 대망의 시험관 2차 배아 이식날, 1차와 다르게 겁은 나지 않았고 나는 안정적인 마음으로 회복실 안으로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