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도 허무해지네
증상에 연연하지 않으려고 해도 작은 통증에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가운데가 찌릿한데, 혹시는 아니겠지."
아무리 생각을 저버리려고 해도 마음을 놓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도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려고 꽤나 노력을 했지만 피검사 전날에 느껴지는 강한 통증을 지나치긴 힘들었다. 생리를 할 느낌도 나지 않았고 생리 전 증상도 나타나지 않았기에 나는 임신테스트기가 담긴 서랍에 손을 댈 수밖에 없었다.
"기대는 안 했으니 해봐도 괜찮겠지."
한 줄을 보게 될까 봐 겁이 나 스스로 합리화를 시켰다. 알면서도 실망하게 되는 게 한 줄이고,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는 것도 한 줄이었다. 너무 이른 시기에 해버린 건 아닐까, 늦은 착상도 있다던데 하루만 더 있으면 나타나지 않을까. 애가 타는 느낌이 싫어 멀리했던 임테기지만 두 줄을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기도 했다.
아직 한 번도 두 줄을 본 적이 없었고 피검사로 임신을 확인한다고 해도 두 줄의 기쁨을 만끽하고 싶었다. 유튜브에서 '임밍아웃'에 대한 얘기를 보면서 기대를 한 적도 있었다. 나도 남편에게 저런 행복하고 놀라운 감정을 주고 싶다고. 저조한 기대를 품었지만 머릿속은 이미 상상의 나래가 펼쳐졌다. 퇴근 후 두 줄의 소식을 들은 남편의 기분은 어떨까.
"이번에도 단호박이네."
애써 눈을 비비며 선을 찾지 않아도 너무나 선명한 한 줄, 임신을 희망하는 사람들은 이걸 단호박이라 불렀다. 배아 이식 후 몇 일차 단호박, 임테기 단호박, 피검사 전 임테기 단호박. 반전은 없었고 나지막하게 품었던 기대마저 완전히 사라진 나는 임신테스트기를 쓰레기통 깊숙이 눌러서 버렸다.
"임신 아니야, 어제 임테기 해봤어."
남편과 난임센터를 가는 길에 나는 실패의 확신을 심어주기 위해 한 줄을 봤다는 사실을 털어냈다. 내가 증상 얘기를 하지 않아서 남편이 조금 기대를 했었다는 걸 알기에 말하기가 조심스러웠지만 결과를 보기까지 기다림에 희망을 주고 싶지 않았다. 듣는 결과에 사람 마음에 허탈해지는 건 나도 남편도 마찬가지니까.
"오늘따라 되게 말이 많네?"
"그냥, 뭐라도 말하는 거지."
대기를 하면서 나는 평소보다 더 쫑알거리며 남편에게 말을 걸었다. 별 내용이 아닌데 웃었고 지금 하지 않아도 되는 얘기를 꺼내며 수다를 떨었다. 담담한 나를 표현하고 싶었고 스스로 자부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2차를 시도했을 땐 실패해도 슬퍼하지 않기로 했고 우울해하지 않기로 했으니까. 그저 괜찮아 보이고 싶었다.
"집에서 테스트기 해봤어요?"
"네, 해봤어요."
곧 내 이름이 불리고 전처럼 같은 질문이 들려왔다. 나는 자신없는 목소리로 조그맣게 대답했다. 고개를 끄덕인 원장님은 이번에도 임신이 되지 않았다며 수치도 안 나왔다고 하기에 확인차 물었지만 역시나 피검사 수치는 0점대로 일말의 희망을 바닥으로 내려놓게 만들어주었다.
"2차까지 착상이 되지 않아서 이제 검사를 해볼 거예요, 아직 나이가 젊어서 배아 문제가 없을 확률이 높은데 일단 자궁경을 하고, NK수치라고 배아를 방해요인으로 보고 밀어내는 세포가 있는데 그건 피검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어요."
납득이 되면서도 납득이 안 되는 말이었다. 착상이 안 되는 원인을 의사도 모르는 거라 검사를 권유하는 거지만 검사를 한다고 해도 이게 해결이 될지 확신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자궁경을 하면 한 달이란 시간이 미뤄질 거고 계속 시도를 해보는 게 맞을까. 그럼 임신이 될 수 있을까. 이제 남은 동결 배아는 하나라 마음이 한없이 작아졌다.
"검사를 하면 원인이 나오나요."
"원인이 나오는 사람도 있고 정상인 사람도 있어서 검사가 정답이라고 말할 순 없어요. 그리고 자궁경은 생리 4일째 되는 날 할 거고 수면 마취를 해야 하니 밖에서 안내받으면 됩니다."
자궁경은 초음파로 자궁 내부를 보며 유착이나 혹 등의 상태를 살피는 검사라 도중에 약간의 상처가 생기면서 임신 확률을 높여준다고 했다. 나팔관조영술을 하고 확률이 높아지는 것처럼 실패만 겪다가 자궁경을 하고 임신을 하게 된 경우도 여럿 있다고 하기에 혹 하는 검사였다. 어차피 검사를 해보기 위해 2차를 시도한 거고 시도해 봐야 원인이란 걸 찾을 수 있을 테니.
"혹시 비용이 얼마인지 알 수 있을까요?"
"검사를 위한 자궁경은 10만원대 후반이고, 피검사는 7만원 정도 나올 거예요."
"제가 듣기로는 피검사가 몇 십만원으로 알고 있는데 아닌가 보네요."
난임센터를 다니면서 쓴 돈만 몇 백이었다. 검사에 필요한 비용이 비싸다는 후기가 많아 나는 걱정스럽게 물었다. 원무과 선생님이 금액에 대해 설명을 해줬을 때 생각보다 저렴해서 다행이라 여겼지만 정확히 알아보고 정정해 준 금액은 내가 알고 있던 액수였다. 비용이 비싼 이유는 피검사가 아닌 수치에 맞춰 처방된 수액 때문이라고 했다.
"수액만 60만원이 넘는다고요?"
"네, 비급여 수액이라 피검사랑 합하면 알고 계셨던 금액대로 나올 거예요."
대략 전체적인 금액대는 알았지만 막상 들으니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이걸 하는 게 맞나 싶기도 하고 해도 임신이 안되면 무슨 소용일까 싶기도 하고. 그나마 검사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은 건 다음 시도를 하지 않을 거란 결정이 있기 때문이었다.
"속상해?"
"안 울려고는 하는데 당연히 속상하지."
아침을 먹으러 간 식당에서 남편이 물었다. 아마 내가 피검사 수치와 임신, 검사에 대해 계속 물어서 그런 것 같았다. 속상했다, 속상하고 또 속상했다. 왜 나는 안 되는 거냐고 답 없는 의문이 속에서 맴돌았다. 생각을 할 때마다 울컥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눈물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서로 속상한 마음을 티 내지 않으려고 하는데 내가 울면 남편의 마음도 슬프니까.
"검사는 다시 시험관 시도하게 될 때 하자."
2차까지 0점대로 완벽한 실패를 확인했으니 더는 매달리고 싶지 않았다. 경제적인 여유도 필요하고 감정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으니 쉬는 타임이 필요했다. 지금 우리에겐 그게 최선의 선택이었다. 가정을 위해, 나를 위해 도피가 아닌 시간의 텀을 주는 것이었다.
"일 구해서 하다가 시간 맞으면 시험관도 해보고, 그전에는 배란테스트기 써가면서 자연 시도도 해보자."
결론은 내가 단념해야 되는 일이었다. 임신에 대해 완전히 포기를 한 건 아니니까 현실에 맞춰 시야를 바로 잡아야 했다. 자연적으로 임신이 될 수 있다는 아주 작은 희망도 달아두어야 하고. 마음도 몸도 편안하게 쉴 시간이었다.
"드디어 약이랑 주사에서 해방이구나."
그제야 웃음이 났다. 임신이 아니라도 즐거운 날들이 많기에 행복한 마음가짐을 다지기로 했다. 그동안 고생했다, 나도 남편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