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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all E May 22. 2021

얼마나 더 많은 '김용균'이 세상을 등져야 하는가

우리가 그들의 삶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

 

2020년 한 해 동안 2000명이 넘는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인해 세상을 등져야만 했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건설업의 산업재해 사고 사망자는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합니다. 그들을 기억하고, 그들이 겪었던 일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기에 다양한 방식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저희의 글이 보다 더 안전한 건설 노동 환경에 일조하기를 바랍니다. 




‘김용균 법’의 시행에도 불구하고 ‘제2의 김용균’은 발생한다


(출처 : 김용균 재단)

 

지난 2018년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스물세 살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은 설비 점검 도중 사고를 당해 하늘의 별이 되었습니다. 컨베이어 벨트에 몸이 끼어 사망한 그의 시신은 사고 5시간 후 머리가 절단된 채 발견되었습니다. 


그를 사망에 이르게 한 작업은 숙련자에게도 버거운 작업이었습니다. 당시 입사 3개월 차 신입 직원이었던 그는 어둡고 열악한 작업 환경 속에서 '홀로' 일해야만 했습니다. 본래 위험이 따르는 작업이었기에 노동자들은 근무규정에 명시되어 있는 대로 '2인 1조' 근무를 요구해왔었으나, 발전소 측은 인력수급을 문제로 해당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곳에는 근무 중 위험 상황이 발생했을 시 컨베이어 벨트의 작동을 멈출 수 있는 장치가 있었습니다. 적정한 인원 배치만 이루어졌더라면 발생하지 않았을 사고였던 것입니다. 


해당 사고 이후 위험의 외주화 방지 및 산업 현장 안전규제 강화를 골자로 하는 ‘김용균 법’(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이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김용균 없는 김용균 법’이라는 비판이 이어지며, 그 실효성에는 의문이 제기됩니다. 


 대표적으로 건설기계를 들 수 있습니다. 산재사망률이 가장 높게 나타나는 건설 현장에서의 사고 중 21%는 건설 기계에 의해 발생합니다. 건설 작업에는 27개의 기종이 사용되고 있는데 비해 원청이 책임을 지는 경우는 겨우 4종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23개 기종 관련 사고에 대해 원청은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김용균 법은 겉으로는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당 부분에서 원청의 책임은 제외됩니다. 위험 작업 하청을 줄 때 승인을 받아야 하지만, 실상은 도급 승인 대상에서 제외되는 사항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철도에서의 궤도사업장 점검, 설비, 보수 작업과 전기사업설비 운전 및 점검, 정비, 긴급 복구업무 역시 도급 승인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구의역 김 군도, 태안 화력발전소 김용균도 이 법을 통해 보호받을 수 없는 현실입니다. 


여전히 하청에 재하청이 야기하는 위험의 외주화, 안전불감증에 기인한 허술한 안전관리, 이에 따른 비정규직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 환경과 같은 문제는 해결되지 못한 채 계속해서 ‘제2의 김용균’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줄지 않는 산업재해 사고 사망자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회원국 중 산재 사망률 1위라는 오명을 안고 있습니다. 물론 해당 통계는 국가마다 다른 산업 재해 기준 등이 정확히 반영되지 않아 정확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점을 고려하더라도 우리나라가 OECD 회원국 중 산재 사망률 최상위권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작년 한 해 동안 발생한 산재 사고 사망자는 882명, 질병 재해 사망자는 1180명으로 총 2062명의 노동자가 안타깝게 생을 마감했습니다. (고용노동부, 2020)


유형별 산업재해 사망사고 통계 (출처 : 민주언론 시민연합)


 한편, 고용노동부의 2020년 산업재해 사고 사망 통계 발표에 따르면 '김용균 법'의 시행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산재 사고 사망자는 882명으로 전년 대비 27명(3.2%) 증가하였습니다. 


- 업종별로는 건설업이 전년대비 사고 사망자수 30명 증가한 51.9%(458명)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였고, 제조업이 22.8%(201명)로 그 뒤를 이었다. 특히 건설업의 사고 사망만인율은 2%로 전년(1.72%)보다 0.28%포인트 증가하였습니다. 


- 규모별로는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서 81%(714명)가 발생했고, 그중 5인 미만이 35.4%(312명), 5~49인이 45.6%(402명)인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이는 전년대비 각각 43명, 11명이 증가한 수치입니다. 


- 재해유형별로는 ‘떨어짐’이 37.2%(328명)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였고, ‘끼임’ (98명), 부딪힘'(72명), '물체에 맞음'(71명), '깔림 및 뒤집힘'(64명) 등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 인적특성별로는 전체 사고 사망자 882명 중 50세 이상이 72.4%(639명)이며, 이 중 60세 이상이 39.3%(347명)를 차지하였습니다. 특히, 60세 이상 사고 사망자는 62명 증가하여(285→347명), 전체 사고 사망자 증가폭(27명)을 상회하였습니다. 또한 총 94명의 외국인 사고 사망자가 발생하여(건설업 46명, 제조업 38명), 전체의 10.7%를 차지(전년도 12.2%)하였습니다. 



중대재해 처벌법은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이미지 출처 : 연합뉴스)


 지난 1월, 잇따르는 산업재해 사망사고를 막기 위한 방책으로 논의되어왔던 중대재해 처벌법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중대재해 처벌법은 기업에서 중대한 인명 피해를 야기하는 산업 재해가 발생했을 때, 사업주에 대한 책임과 이에 따른 형사처벌을 강화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합니다. 


중대재해 처벌법 주요 내용
안전사고로 노동자가 사망할 경우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의 징역이나 10억 원 이하의 벌금을, 법인에는 50억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노동자가 다치거나 질병에 걸릴 경우에는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출처: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하지만 최초 논의되었던 법안에 비해 기업의 책임 범위가 크게 하향되었기에 노동계로부터 ‘누더기 법’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기업의 책임 범위가 줄어들었음을 의미하듯, 법안의 명칭이 최초 논의됐던 ‘중대재해기업 처벌법’에서 ‘기업’이 빠진 ‘중대재해 처벌법’으로 변경되었습니다. 벌금 하한선도 성립되어 있지 않으며, 처벌 대상인 경영책임자로 대표이사 ‘또는’ 안전담당 이사가 제시되었기에 실제 기업 오너는 책임을 회피할 수 있다는 비판도 이어집니다. 이에 더해 당초 법안에 있었던 공무원 처벌 조항, 인과관계 추정 조항 역시 모두 삭제되었습니다. 5인 미만 사업장은 해당 법 처벌 대상에서 제외됐고, 50인 미만 사업장 역시 3년간 적용 유예되어 2024년부터 적용받습니다. 소규모 사업장에서 81%의 사고가 발생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충분히 그 실효가 의심되는 대목입니다. 


앞서 언급하였듯, 중대재해 처벌법은 산업현장 내에서 되풀이되는 노동자들의 억울한 죽음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정되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중대재해 처벌법이 산업현장 내에서 노동자들의 소중한 목숨을 지켜내는 역할을 다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드는 시점입니다. 


(참조: 줄지 않는 산재 사고 “‘누더기 법’ 만든 정부·여당 1차적 책임”, 시사저널, 2021.05.14)



우리가 그들의 삶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



 2018년, 김용균 법의 시행 이후에도 산업 현장 내 사고는 끊임없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21년, 또 다른 대안으로 중대재해 처벌법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당초 논의되었던 법안에 비해 기업 책임 범위가 크게 축소되어 '누더기 법'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죽지 않을 권리.


너무나도 당연해 보이는 이 권리를 누군가는 가지지 못했습니다. 산업재해 사고 사망자의 대다수는 사회적 약자였습니다. 살기 위해 일을 했지만 한 해에 2000명이 넘는 목숨이 일을 하다 사라졌습니다. 하루에 5명 꼴로 죽어나가는 현실입니다.


원청에서 하청을 주고, 또다시 재하청이 이루어지는 구조 속에서 초점은 오로지 비용과 속도에 맞춰졌고, 자연스레 노동자들의 안전은 뒷전이 되었습니다. 


사고가 발생하고 난 후에야 비로소 대책이 논의되고, 그제야 기업들은 사과를 합니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죽음의 고리는 여전히 끊어지지 않습니다. 상황은 변화하지 않았고, 비슷한 사고는 또다시 되풀이됩니다. 큰 이슈가 발생하면 관심은 그때뿐, 노동자들의 죽음은 그렇게 잊혀 갑니다. 


죽은 이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이는 또 다른 희생자를 막는 첫걸음이 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자 친구였던 그들과 그들이 겪어야만 했던 일들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안전법들은 유가족이 만든 거야. 

- 정세랑



 '죽지 않을 권리', 노동자들에게 언제쯤 주어질 수 있을까요? 더 이상 '제2의 김용균 법'이 필요 없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소중한 생명들이 일터에서 사라지는 일이 되풀이되지 않는 것, 그것이 우리 모두 그들의 삶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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