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박과 쪽박 사이
공자는 일찍이 이렇게 말했다. “누구나 부귀를 탐내지만 올바른 방식으로 얻은 것이 아니면 누리지 말고, 빈천은 싫어하는 것이지만 마땅히 그렇게 되었다면 감수할 줄 알아야 한다.” 경제행위에 앞서는 도덕을 강조한 말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모두는 대박을 기대한다. 비용-편익의 관점에서 적은 노력으로 큰 결과물을 거두고자 하는 효율지상주의의 과학기술 시대에 부합하는 심리이다. 대박을 기대하게 만드는 다양한 것들이 있다. 복권에서 시작하여 주식, 코인, 부동산과 더불어 불법도박에 이르기까지 많은 것들이 대중을 홀린다. 얼마간의 돈이 있으면 진입 턱이 제일 낮은 것이 주식과 코인이다. 특히 코로나 사태 이후로 주식 인구가 국민의 절반을 채우고 있다.
우리나라의 주식시장에서 소위 개미들이 수익을 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나라 주식시장은 자금력이 풍부한 기관이나 외국 펀드, 그리고 세력주들의 놀이터다. 가치투자는 찾기 어렵고 큰 손들의 대박 그물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깡통 계좌를 몇 차례 경험하고 나서야 큰돈을 벌게 되었다는 인플루언스들이 전설로 불리는 이유이다. 수익 창출을 위한 주식거래의 규칙은 매우 간단하다. “싸게 사서 비싸게 판다.” 하지만 이 간단한 규칙을 이행하기가 어렵다. 적게 벌고 크게 잃는다. 적게 잃고 큰 이익을 남기는 사람들의 마음 상태는 매우 안정적이다. 강력한 도파민에 중독되지 않고 은은한 즐거움을 주는 세로토닌의 진가를 확실히 새기는 평정심을 갖고 있다.
대박심리가 수그러 들지 않는 이유는 ‘상대적 박탈감’이 줄지 않기 때문이다. 만 원짜리 식사를 즐겁게 하다가도 옆 테이블에서 십만 원짜리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는 순간 음식 맛이 떨어진다. 호화 식당 입구에서 햄버거를 먹어도 즐거움을 만끽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 인간의 인식은 철저히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현재 자신이 가진 것이 얼마든 그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끝없이 대박을 꿈꾸다가 쪽박을 차게 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사실 그런 이들을 주변에서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걸을 수 있고, 먹을 수 있고, 잠잘 수 있고, 가래와 침을 뱉을 수 있고, 숨을 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를 알아야 하지 않을까? 지금 이 시각 살아 있다면 엄밀히 따져서 그 자체가 ‘대박’이다. 이 진리를 애써 외면하려 든다면 그 후과는 반드시 ‘쪽박’으로 흘러갈 방향을 스스로 설정한 것과 같다. 살아 있으면서 고맙지 않은 것이 어디 하나라도 있는지 살펴보자. 깊은 심안으로 보면 나를 포함한 일체가 ‘감사’의 대상이다. 불교의 가르침 중 ‘보시’를 중시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게 ‘인욕’이다. 이는 ‘참는다’기보다는 ‘받아들인다’로 해석하는 편이 더 적절하다. 진리를 받아들이는 ‘인욕의 실천’은 우리를 쪽박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구원의 메시지다.
40년이 넘도록 해 온 나 자신의 직업적 활동은 ‘도덕적 콘텐츠 안내자’로서의 윤리학 교수학습이었다. 윤리는 인간이 마땅히 따라야 할 도적적 명제가 “왜 그런가?”에 대한 철학적 근거를 탐구하는 영역이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 “이익이냐? 손해냐?”로 묻기보다 “옳으냐? 그르냐?”를 먼저 묻기를 상호 학습해 왔다. 어쩌면 오랜 세월 동안 해 온 일들이 요즘 세대에는 불통의 잠꼬대로 치부될지도 모르겠다. 때때로 초라한 자신을 느낀다. 우울감이 함께 엄습한다. 사회의 병리 현상을 보면서 자문한다. 사회의 각종 비정상적인 모습을 보고 있는 나는 ‘대박과 쪽박 사이’ 그 어디쯤 있는가? 내 마음의 밀실에서 속삭이는 답은 무엇인가. 똑 부러진 답이 툭 튀어나오지 않는다.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본다. 그리고 외친다.
“쪽박은 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