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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영 Sep 10. 2024

호중이 선배는 잔류 중

“양마리, 너 들었냐?”

“뭐?”

“유리정 태블릿 잃어버렸대.” 

“설마 거기서 잃어버린 건 아니지?”

“맞아. 거기.”

동성은 이틀 째 급식실 주변을 시간만 되면 헤매고 다니는 유리정을 안타깝게 바라본다. 

“이제 포기할 때도 된 것 같은데…….”     


1학년 3반 유리정 태블릿. 2학년 1반 성대건 휴대용 가습기, 1학년 5반 지수혁 수학 문제집 2권. 2학년 6반 김의비 텀블러. 한 주 동안 식당에서 분실사건만 4번 째다. 최근 몇 년간 식당에서 발생한 분실 사건에 대해 단 한 건도 범인을 찾은 적이 없다. 식당에서 잃어버린 물건은 두 번 다시 찾을 수 없다는 것이 이제는 학교 안에서의 정설이 되어 버렸다. 급식실에서 일하는 위생원 아주머니도 일을 할 땐 귀거리 하나 착용하지 않는다. 

나 역시 작년 식당에서 장갑과 빗을 잃어버렸지만 다시 찾을 수는 없었다. 분실 사건이 빈번해지면서 학교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흉흉하다. 평소엔 주말에도 많은 학생들이 학교에 남아 면학에 힘쓰지만 당분간은 아무도 잔류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갈 것 같다. 

사마귀는 우리 모두 이번 주 주말에 학교에 남아 서로 머리를 맞대고 뭔가라도 해보기를 원하는 것 같았다. 동성이가 유튜브를 하지 않겠다고 한 이상 다른 방법을 찾아보는 수밖에 없었다. 우리 모두 학교에 잔류시킬 작정인 듯한 사마귀가 입을 열었다. 

“주말에 다들 약속 없지?”

“……있어.”

우리 중 유일하게 주말에 약속이 있다는 동성이를 보며 유가와 나는 다소 놀란다.

“뭐?”

“마트에 가기로 했어.” 

“누구랑.” 

“나 자신이랑. 스스로 한 약속은 꼭 지켜야 되는 거거든.”  

“그럼 너는 마트에 가서 너와의 약속을 지키고 나는 네 유튜버 주소를 우리반 단체 카톡방에 올려놓도록 할게.”      


사마귀의 바람대로 뭐 하나라도 건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동성, 유가, 사마귀, 나 모두 소중한 주말을 학교에 반납했다.       


토요일 아침. 9시부터 12시까지 오전 자율학습 시간이니 잔류생들은 늦지 말고 9시까지 2학년 4반으로 모이라는 안내 방송이 스피커로 흘러나왔다. 1,2,3학년 통들어 잔류생은 우리 네 명 뿐. 

주말 아침 사마귀, 동성, 유가는…… 좀 많이 힘들어 보였다. 모자를 눌러 쓴 유가에게 누구든 접근이라도 하면 한 대 맞을 것 같았고 사마귀는 반바지 차림에 양말도 신지 않았으며 동성은 혼수상태로 걸어 다녔다. 

“사마귀, 너 양말도 안 신고 그게 뭐냐?”

“왜.”

“윤리샘이 그랬잖아. 양말 안 신는 건 기본 예의가 아니라고. 너 오늘 심하게 예의가 없다 사마귀.” 

내 말에 대꾸도 하지 않는 사마귀가 동성이를 부른다. 

“근데 동성아.”

“어, 사마귀.”

“양마리 어디갔냐.” 

“양마리 아침마다 변신 중이라 못찾아.”     


늘 그렇듯이 계획은 그저 계획일 뿐. 우리는 일단 점심을 먹은 후에 뭐든 시작하기로 했다. 자율학습 시간에 당직샘에게 혼나지 않기 위한 잔류생들의 규칙은 단 하나. 점심시간이 올 때까지 절대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지 말 것.      


4교시 종료종이 울린다. 겨우 버티기에 성공한 우리. 좀비처럼 급식실로 향한다. 급식실에 도착했을 때 우리가 앉은 테이블 맞은편에 이미 누군가가 먹고 떠난 흔적이 남아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밥풀떼기와 콩나물 국물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동성이 지저분한 테이블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누가 왔나?”

“그러게.” 

“무단 잔류?”  

“설마. 당직샘이겠지.”       


우리 말고 누군가 학교에 남아 있다는 찜찜한 기분은 점심을 먹고 교실로 돌아왔을 때 더 분명해졌다. 교실 문을 여는 순간, 누군가 교실을 휘젓고 간 느낌이 들었다. 흐트러져 있는 의자와 열려 있는 창문…… 이곳에 누군가가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나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너희 조심해…… 여기 우리 말고 누군가 있으니까.” 

책가방을 뒤지던 동성과 유가가 동시에 얼굴이 일그러진다.  

“그걸 왜 이제 말해. 내 버터와플 없어졌어.” 

“이런! 내 노트도 없어.” 

망연자실 서 있는 사마귀. 

“사마귀 너 얼굴이 왜 그러냐? 너 설마…….”

사마귀는 거의 울 것 같다.  

“아이유 사진 없어졌어?”

나도 책가방 안 주머니를 뒤져보았다. 역시나 지갑 안에 들어 있던 현금 만 원이 보이지 않았다.      


“자자. 왜 이렇게 어수선해. 다들 자리에 앉아.”

병만샘이 교실 앞문을 열고 들어온다. 

“선생님. 점심 드셨죠 ……급식실에서?”

“아니. 그건 왜?” 

“저희 말고 잔류생 더 있나요?”

“무슨 소리야. 조용히 하고 자리에 앉아 자습하도록.” 

병만샘은 인원 파악을 한 후 교무실로 돌아가셨다. 유가가 무단 잔류생이 이곳에 있는 것 같으니 다시 병만샘을 데려오겠다고 했지만 도난 사건이 신고되면 이번 잔류는 하루 종일 병만샘의 면담 속에서 작전이고 뭐고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교무실로 가려는 유가를 붙잡아 자리에 앉혔다. 이렇게 된 이상 우리가 잡는 수밖에 없다. 유가가 내게 물었다. 

“어떻게 잡을 건데?”

“이 사람 또 저녁 먹으러 올 것 같지 않아? 식당에서 기다렸다가 덮치자!”

우리는 출구와 입구를 모두 막는 것으로 계획을 세우고 나와 사마귀가 입구에서, 동성이와 유가가 출구에서 기다렸다가 무단 잔류생의 숨통을 조이기로 했다. 


오후 5시 30분. 역시나 식당 안으로 누군가 들어섰다. 목이 긴 남자는 추리닝을 입고 있었다. 모자를 깊이 눌러 쓴 탓에 누군지 알 수 없었다. 그가 식당에서 밥을 퍼 자리에 앉아 수저를 드는 순간, 사마귀와 내가 그에게 달려들었다. 우리를 본 그가 냅다 자리에서 일어나 출구 쪽으로 달려갔는데 기다리고 있던 동성과 유가가 그를 막아섰다. 

이제는 절벽에 서 있다고 느꼈는지 그가 주머니에게 뭔가를 꺼내들었다. ……희고 빛나는 그것은 칼이었다. 우리 모두 흠칫 놀라서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나 어정쩡한 자세로 칼을 들고 서 있는 그가 우리보다 더 위태롭게 보였다. 

“다…… 다가오지마. 다……다가오지 말랬다…….”

112로 전화를 걸어야 할까. 교무실로 뛰어가 당직샘을 찾아야 할까 머뭇거리고 있는 찰나 먼저 몸을 날린 건 동성이었다. 몸을 동그랗게 말아 동성이 구르기 시작했다. 칼로 위협하며 출구 쪽으로 나가려는 그를 향해 돌진하는 동성. 동성과 충돌한 그가 쓰러졌고 칼은 멀리 튕겨져나갔다. 다행히 동성은 하나도 다친 곳이 없는 것 같았다. 쓰러진 그가 비틀거리며 일어서더니 식탁 밑으로 기어들어간다. 눈 깜짝할 사이 그의 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진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가 사라진 식탁 밑으로 우리 모두 따라 들어가는 수밖에. 우리는 식탁 밑으로 쪼그리고 앉아 안으로 기어들어갔다.      


……식탁 밑은 그야말로 딴 세상이었다. 어둡고 서늘하고 습기로 가득 찬 동굴 같았다. 비가 새는 소리가 나는 것도 같았고 어딘가에서 바람이 새어 들어오는 소리가 나는 것도 같았다. 

“저기…….” 

유가가 천장을 가리켰다. 그곳엔 날짜, 날씨, 아침 점심 저녁으로 먹은 메뉴, 수학 공식들…… 이 어지럽게 적혀 있었다. 마치 생존 일기처럼. 

울퉁불퉁한 길 주변에는 주인을 잃은 책, 문제집, 볼펜, 안경닦이, 로션, 비타민, 충전기…… 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더럽게 때가 탄 회색 장갑과 빨간 플라스틱 빗…… 일 년 전 내가 잃어버렸던 물건도 보였다. 머리가 아파 왔다. 한 발자국씩 더 깊이 들어갈 때마다 악취가 심해졌는데 자세히 보니 길가에 버려진 것 중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은 형체를 분간할 수 없을 만큼 섞어가고 있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어느 작은 방 앞에 이르렀다. 방 안쪽 구석에 촛불 하나가 그곳을 밝히고 있었다. 그리고 촛불 뒤로 모자를 푹 눌러쓴 그가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유가가 가까이 다가가 그가 쓰고 있던 모자를 홱 벗겨내 던져버렸다. 그의 긴 목이 거북이처럼 움찔거리며 안으로 말려 들어갔다. ……호중이 선배! 그는 다름 아닌 작년 졸업생 호중이 선배였다. 3년 내내 집에 한 번도 가지 않고 잔류를 하며 집보다 학교가 더 편하다, 공부는 자신의 천직이다, 는 말로 전교생을 경악시켰던 그 선배. 3년 내내 한 벌의 나이키 운동복으로 버텼던 단벌 신사. 머리도 천재지만 얼굴은 더욱더 천재. 원하는 대학에 붙었음에도 대학을 포기했다는 소문이 돌기는 했는데 그 소문이 진짜였던 것이다. 유가가 호중이 선배에게 말을 건넸다.  

“여기서 뭐하세요?”

“보시다시피. 잔류 중.”

“대학은요?”

“안 갔어.” 

“왜요?”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닌 것 같아서.” 

“그 좋은 데를?”

“그런가…….”

“졸업식 끝난지 한참 됐는제 집에 안 가세요?” 

“…….”

“안 가냐구요.”

“그게…… 문제를 아직 다 못 풀었거든.” 

“무슨 문제?”

그가 수학 문제집 하나를 들며 슬프게 웃었다. 

“수학 문제.” 

유가가 수학문제집을 홱 낚아챘다.

“웃기지 마세요. 수학 문제 때문에 졸업하지 않았다는 걸 누가 믿겠어요.” 

“정말이야. 밖은 무서워. 내가 풀 수 없는 문제들로 가득 찬 세상이 나는 무섭다고…….”

선배는 정말 공포에 질린 얼굴이었다. 자신이 만든 공포 때문에 그는 칼을 들고 얼굴도 모르는 적을 피해 이곳에 숨어 살고 있었다.

“그럼 남의 물건은 왜 가져가시는 건데요?”

“여긴…… 너무 열악하니까.”

“이렇게 알게 된 거 저희는 선생님께 말씀드릴 수밖에 없어요.”

“제발…… 나는 갈 곳이 없어. 나는 돌아갈 곳이 없어. 잠시만…… 잠시만 기다려줘.”

검은 가방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 유가에게 내미는 선배. 유가의 새노트였다. 이미 누렇게 변색된 새노트를 들고 어이가 없는 표정의 유가. 다시 선배가 검은 가방 속을 뒤진다. 한참을 뒤지더니 무언가를 꺼내 사마귀에게 건넨다. 구겨지고 찢겨진 아이유 사진이었다. 망연자실 서 있는 사마귀. ……나와 눈이 마주친 선배가 바지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내게 건넨다. 

“이걸로 대신해도 될까.”  

손난로. 이제 곧 있으면 벚꽃이 필 때인데 선배의 바지 주머니 속에는 여전히 손난로가 들어 있었다. 역시나 손난로는 작동되지 않았다. 

“됐어요. 저는.” 

동성이 포기한 듯 낮게 중얼거렸다. 

“아니아니. 잠시만 기다려 줘.” 

선배가 다시 검은 가방 속에 손을 밀어 넣는다. 십여 분이 지나도 선배는 그것을 찾지 못한다. 이토록 어두워서 뭘 찾아낼수나 있을까. 조바심에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선배가 안타까워 나는 폰을 꺼내 라이트를 켰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빛 때문에 더욱 선명하게 선배의 얼굴을 나는 볼 수 있었다.

……소문대로였다. 선배의 얼굴은 눈이 부셨다. 완벽한 대칭을 이루는 반듯하고 높은 콧대와 깊고 넓은 눈매, 그리고 꽃잎을 모아 붙인 듯한 입술…… 선배는 가방 속에서 버터와플을 겨우 찾아내 동성에게 내밀었다. 동성이는 빗물에 젖어 먹기 어려워진 버터와플을 도로 선배에게 던져버린다. 

“이렇게 되려고 여기 숨어 있는 거예요? 다른 사람 거 함부로 갖다 쓰면서까지 대체 뭘 더 잘 하려고 하세요. 그냥 나오세요. 여기가 대체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기나 하냐구요!”

“이제는 익숙해서…… 그리고 미안한데 라이트는 좀 꺼줄래. 난 밝은 건 견딜 수가 없어서…….”

나는 라이트를 끄고 폰을 주머니 속에 도로 집어넣었다. 그러고 보니 이곳엔 거울이 없었다. 나는 선배에게 따지듯 물었다. 

“선배. 여기 거울은요 거울 없어요?”

“없어”

“……선배를 좀 봐요.” 

“싫어.” 

“왜요. 선배 얼굴을 좀 봐요. 선배는 정말…….”

“그만해.”

어떤 것으로도 선배를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 같았다. 대체 누가 선배를 이렇게 만들어놓았을까. 피해자만 있을 뿐 가해자를 찾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내게 늘 부족하다, 이상하다, 라는 말만 해댔어. 난 그들의 말을 스스로 받아들였어. 내게 손가락질하고 놀림 받더라도 상관 말라고. 그런 인간들에게 속지 말라고…… 그러니까 두렵더라도 해보라고…… 그렇게 말해주는 사람이 내게는 없었어.” 

“…….”

“속지마…… 난 못했지만 기회가 오면 너희들은 그것을 버리지 말았으면 해.”  

동성이 선배에게 되묻는다. 

“……그럼 선배는요?”

“나는 이미 늦었어.” 

“늦은 건 없어요.” 

“모르지. 내가 풀어야 할 문제들을 푼다면 그때가 되면 나도 떠나고 싶은 마음이 생길지…….”


선배의 튼 손등 위에 핏물이 스며 나오고 있었다. 굴러가는 동성에게 맞아 바닥에 살이 휩쓸려 생긴 상처였다. 동성이 소매를 끌어당겨 선배의 손등을 닦아내고는 주머니 속에 들어 있던 핸드크림을 꺼내 선배에게 건넨다.  

“동성아.”

“네.”

“네가 그렇게 용기 있고 구르기를 잘하는 애인 줄은 몰랐다.” 

“……그런 말은 처음이네요.”

“속지마. 사람들이 뭐라든. 절대 속지마.”  

“알겠으니까 저랑 약속해요 선배. 문제를 다 푸는 날엔 꼭 이곳을 떠나겠다고.”

“……그래!”     


월요일이 시작되었다. 

아침에 먹은 우유 때문인지 1교시 사회 수업 도중 나는 조용히 교실문을 열고 화장실로 향했다. 괜히 남의 교실을 힐끗거리며 가다가 2학년 5반 창문 너머 젤 뒷줄에 앉아 있는 호중이 선배가 눈에 들어왔다. 학생들 속에 섞여 열심히 수학 문제를 풀고 있는 호중이 선배. 창 너머 자신을 훔쳐보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선배는 희미하게 웃어 보인다. 동성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선배는 그렇게 열심히 수학 문제를 풀고 있었다.      


점심시간 후 동성은 뜬금없이 할 말이 있다며 우리를 등나무 벤치로 불러 모은다. 심각한 동성이를 보며 사마귀가 더 심각하게 묻는다. 

“너 혹시…….”

“…….”

“변비 있어? 나 메이킨큐 있는데 필요해?”  

“나, 결심했어!”

카톡 중이던 유가와 나도 동시에 동성이에게 고개를 돌린다.

“뭐를?”  

“먹방 그거 한번 해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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