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가로지를 때 우리 곁에 충실하게 남아 있는 것들에 관하여.
[프롤로그: 견디는 시간 속에서 남겨진 것들]
택배를 하는 지난 7년 동안, 우리는 사람들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비바람, 폭염, 추위 등 하늘을 상대하며 그 과정에서 오히려 무언가를 얻어왔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수시로 변하는 날씨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롤러코스터 같은 변화에 순응하고 적응하는 것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마주하는 사람과 상황에 눈길을 주지 않고, 우리가 상대할 하늘과 현실에만 집중하며 주어진 일상을 음미하는 법을 자연스레 습득해 왔다.
끝없는 절망이 엄습할 때면 서로를 꼭 부여잡은 채 가족과 사랑, 그리고 자유라는 가치가 실존한다는 사실을 몸소 확인하곤 했다. 삶이 우리의 몸과 마음 깊숙이 새겨 넣는 이 고통의 흔적들이 훗날 영롱한 진주로 빚어지는 과정임을, 우리는 지금 택배 현장에서 목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궁핍하고 고통스러운 순간 속에서 진정한 우리 것이 무엇인지, 무엇이 우리를 떠나지 않고 충실하게 남아 있는지를 서서히 깨달았다.
이제 그것들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불편함, 인간의 생존본능을 품다.]
지독스럽게 추운 어느 날, 택배레일 곁에서 아내와 함께 캠핑난로 곁에서 입김을 불어가며 불을 쬐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택배만큼 날씨 앞에 발가벗듯 용기 있게 나서야 하는 직업이 또 있을까. 영하 20도에 육박하는 맹추위를, 섭씨 40도에 육박하는 땡볕더위를 맨몸으로 받아낼 때 느껴지는 이 느낌과 감각들을 사람들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어느 작가가 생생히 표현해 낼 수 있을까.
생명의 위협마저 느껴지는 서슬 퍼런 추위와 더위 앞에 고스란히 노출된 환경 속에서 한해, 두 해를 지나 칠 년을 겪다 보니 묘하게 느껴지는 사실들이 있다.
냉난방이 잘 되는 실내나 차 안은 늘 쾌적했다. 그 편안한 울타리 밖, 날씨에 몸을 노출한 채 일하는 것을 사람들은 흔히 사회적으로 '실패한 대가'로 여기곤 한다.
하지만 나는 이 불편한 시선의 이면에서, 사람들이 미처 보지 못한 또 다른 진실이 존재함을 알게 되었다.
인간은 원래
'나르기 위해 태어난 존재(Born to carry)'였다.
무거운 사냥감을 운반하는 행위는 근력과 유산소 운동의 경계를 허물며, 걸을수록 숨이 차오르는 고된 과정의 반복이다. 하지만 이 불편한 행위가 우리가 세상을 지배하는 존재로 만들었다고 마이클 이스터는 <불편함의 역습>에서 알려준다. 극한의 추위 또한 마찬가지이다. 연구에 따르면 강렬한 추위는 인류의 목숨을 질기게 만드는 유전자를 자극하며, 육체적으로 힘든 경험은 단기 기억을 장기 기억으로 변환시켜 유사한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을 키워줬다고 했다.
불편함에 노출된 사람의 모습이 더 인간스럽다는 이스터의 글을 읽으며 나는 사람은 불완전하기에, 편안함보다 불편함에 적응하도록 DNA 속에 불편한 유전자가 깊이 아로새겨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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