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로를 이탈했지만 도착한 가장 따뜻한 목적지
[프롤로그: 택배 세상 속 여신들 이야기]
삶의 궤도를 벗어나 도착한 택배의 세계. 땀방울이 비처럼 쏟아지는 이곳은 제게 형벌이 아닌, 삶의 또 다른 진실을 가르쳐준 새로운 삶의 현장이었다.
무심한 운명의 주사위를 던지는 여신들,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매 순간 전사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 강인한 여신이 그곳에 있었다.
이제 택배의 세상 속에서 내가 목격한 여신들에 관해서 하나씩 이야기하겠다.
[일의 슬픔을 일깨우는 차가운 여신들]
택배 현장에는 택배기사들에게 힘겹고 아프게 <일의 슬픔>을 느끼게 만드는 여신들이 존재했다. 먼지 낀 전등 불빛이 부질없이 흔들리는 그곳에서, 그녀들은 택배기사들의 굽힌 등 위로 거역할 수 없는 노동의 신탁을 내리는 서늘한 지배자들이었다.
[저울을 든 유스티치아: 뒤틀린 공정의 신탁]
정의의 여신 '유스티치아'(Justitia)는 안개처럼 자욱한 소음 속에서 한 손에는 저울을, 다른 한 손에는 날카로운 칼을 쥐고 서 있었다. 본래 그 저울은 세상의 뒤틀린 권리관계를 바로잡는 신성한 도구였으나, 이곳 현장의 여신이 높이 든 저울은 오로지 택배기사의 비루한 <을의 처지>와 짐짝에 매겨진 <헐값>의 무게만을 가혹하게 가늠할 뿐이다.
배송해야 할 정상적 무게가 쌀 한 가마니 20kg임에도, 저울의 여신은 그보다 상회하는 30kg, 40kg의 바위 같은 짐짝들을 택배기사의 어깨 위에 무심히 얹어놓는다. 뼛속까지 파고드는 거대한 고통의 무게에도 정의의 여신이 내리는 보상은 고작 이천 원, 삼천 원의 푼돈뿐. 초보 택배기사가 그 불합리한 신탁에 저항하며 짐을 되돌려 보내려 할 때면, 여신은 '클레임'이라는 이름의 서늘한 칼을 휘둘러 만 원, 이만 원의 벌금을 징벌로 내린다.
택배기사들은 그 칼날 앞에서 서글픈 운명을 수용하며 비합리적인 굴레를 형벌처럼 받아들인다. 레일 위로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는 고양이 모래의 둔탁함, 두유 박스의 묵직함, 시슬러 세제의 미끈거림, 베이비 기저귀와 쌀포대, 감자 박스와 소금 자루들. 이 성물(聖物)들을 받아내고, 싣고, 옮기고, 배송하는 네다섯 번의 고행을 거쳐야만 하루의 형벌이 끝난다. 유스티치아가 든 칼은 결코 약자인 택배기사를 보호하지 않으며, 오직 일방적인 복종만을 강요하는 차가운 상징으로 빛날 뿐이다.
[눈먼 포르투나: 잔인한 운명의 주사위]
택배레일의 소음이 비명처럼 밀려드는 어둠 속에는 또 한 명의 여신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운명의 여신 '포르투나'(Fortuna)이다. 그녀는 눈을 가린 시선으로 아무에게나 행운과 불행의 금화를 무차별적으로 흩뿌린다.
그녀의 세계에서는 "도둑놈이 복권에 당첨되는 것"조차 타당한 섭리가 된다. 포르투나는 결코 자비롭지 않다. 그녀는 소위 '꿀구역'이라 불리는 달콤한 안식처를 쉽게 허락하지 않으며, 택배기사들을 끝없는 시험대로 몰아넣는다. 때로는 엘리베이터 없는 빌라와 저층 아파트가 즐비한, 현장의 거친 언어로 '똥구역'이라 명명된 시련의 땅으로 우리를 안내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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