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제나 자신의 삶을 산다
'트럼프 탠트럼(Trump Tantrum)'이라고 했던가. 도널드 트럼프의 예측 불가능한 발언 한마디에 세계의 주식시장이 마치 발작을 일으키듯 요동치고, 투자자들이 공포에 질려 주식을 내던지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바다 건너 누군가의 예측 불가능한 말 한마디에 국내 증시가 널뛰고, 유가가 급등하며, 당장 우리 집 주유비와 전기세가 들썩인다. 주유소가 문을 닫고, 택배센터 앞 주유소는 경유가 바닥나 연료가 반밖에 없는데 어쩌냐는 택배기사의 하소연이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아무리 초강대국의 결정이라지만, 평범한 일상들이 속수무책으로 흔들리는 이 비정상적인 흐름에 짙은 피로감이 밀려온다.
삶은 늘 그런 식이다. '망치'처럼 예고도 없이 내리치고, 무거운 책임은 떠넘긴 채 사라진다. 우리는 그저 삶의 좁은 터전에 갇힌 채 크고 작은 폭력 앞에 고스란히 온몸을 내맡긴 채 견디며 살아야 한다.
"내 삶이 왜 이렇게 흘러가는가"라며 탄식하면서도, 언제 끝날지 모르는 불안 속에서 풀려나기를 기대하며 하루를 버텨낸다. 그래서인지 요즘 들어 간절히 소망하는 것이 하나 생겨났다. 해방감. 무거운 갑옷을 벗어던지고 시원한 물속으로 깊이 잠겨드는 듯한, 그 궁극의 자유. 그것은 단순히 고통의 종료가 아니다. 삶이라는 부조리한 소음으로부터의 탈출, 그 자체였다.
문득, 센강의 낚시꾼 이야기를 떠올렸다.
프랑스혁명이 일어난 지 파란만장한 4년이 흐른 뒤, 마침내 온 국민의 염원대로 루이 16세가 콩코르드 광장의 단두대에서 처형되었다. 프랑스 국민 모두가 열광적인 함성을 드높이던 바로 그날,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인 센강의 낚시터에서는 수많은 낚시꾼들이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낚시를 드리우고 있었다.
그들은 광장을 향해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역사적인 순간에 이기적인 무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라며 강한 거부감을 느끼기 쉽다. 나 역시 처음에는 그랬다. 하지만 전쟁과 경제 대공황의 암울했던 시절을 온몸으로 살아낸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눈에는 그 장면이 전혀 다르게 보였다.
츠바이크는 말했다. 암울한 시대를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역사가 아니라 언제나 자신의 삶을 산다고. 역사적 사건이 벌어지는 바로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그 사건에 참여하기보다 오히려 잊으려 애쓰는 것이 역사적 진실이며, 이는 솔직한 고백이라고 담담히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것이 언뜻 부끄러운 고백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결코 부당한 비난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하게 항의한다.
공감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그런 시대에는 너무 많은 일들이 사방에서 터져 나오기에 우리의 마음이 그것을 감당할 힘이 고갈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연민의 힘은 발휘될 때마다 조금씩 더 소멸된다. 재앙이 길어질수록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더 이상 모든 일에 연민을 느낄 힘이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 그 자체다.
그러나 그는 한 가지 희망적인 사실을 들려준다. 자연은 인생에게 어떠한 중단도 원하지 않는다. 평범하지 않은 사건들이 사방에서 벌어져도 일상은 평범하게 계속해서 이어진다. 비록 그것이 센강의 낚시꾼처럼 이기적인 무관심처럼 보일지언정, 그것은 인생이 지속되어야 한다는 자연의 의지에 순응하는 표현이라는 것이다.
익명의 소시민들이 해석하기도 힘든 정치적 사건에 몰두하기보다 조용하고 눈에 띄지 않는 자기 일상에 집중하는 것, 그것은 자연의 명령에 순종하는 삶이다. 거부할 수 없는, 아름다운 순종이다.
츠바이크의 글을 읽으며 그제야 나름 새롭게 이해가 되는 대목이 있었다. 내가 뉴스를 끄고 싶었던 것, 국제정세에서 고개를 돌리고 싶었던 것, 어쩌면 그것은 단순한 외면이나 회피가 아닌 삶에 대한 무의식적인 순응일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 그것은 인생을 계속해서 지속시키라고 요구하는 삶의 요구에 반응하려는 강렬한 욕망일 수도 있으리라.
순간, 나의 탑차 운전대는 요동치는 세상 한가운데서 내가 쥘 수 있는 작은 낚싯대가 되었다. 오늘 나는, 센강 대신 익숙한 아파트 단지들과 골목사이로 택배차를 몰며 평범한 일상을 낚기 위한 희망의 끈을 조용히 드리우고 있었다.
골목 어귀에서 매장 밖을 나와 오토바이 수리점 사장님이 골목길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아내가 택배를 전하며 "일 안 하세요?"라고 물었더니 손님이 없단다.
배달 경기가 얼어붙어 오토바이 수리하러 오는 기사들도 뜸해졌다고 한다. 그래서 일손을 놓은 채 길가를 오가는 사람들을 그냥 구경하는 중이라고 했다. 빈 가게 앞에 서서 세상을 바라보는 그 모습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어쩌면 그것은 단순한 상념이 아니라, 삶을 그저 바라보는 것, 자연의 흐름에 몸을 맡기며 희망의 줄을 드리우는 모습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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