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진짜를 향한 광장의 외침들

by 코나페소아

가만히 앉아 있을 시간 없네
어딜 가든 blanket area
무관심 속에 꼬여 날파리만
관심 밖의 음악이더라도 난 안 빠져
빈곤망상 난 항상 기고만장

동구는 마을 골목 한복판에서, 라이브 카메라를 한 손에 든 채 아무 말 없이 랩 불렀다. 목소리가 담벼락에 부딪혀 되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목은 가라앉았다. 조금 전까지 Louder를 외쳤던 탓이다. 하지만 두어 마디를 뱉어내자 목소리가 다시 열렸다. 라이브 시청자 수가 백을 넘고, 이백을 넘어갔다. 달봉은 고개를 숙인 채 계단 가장자리에 앉아 있었다. 병만이 라이브 화면을 훔쳐봤다. 댓글들이 폭포처럼 흘러내렸다.

'진짜 꼴통 금동구 맞아?' '여기가 찌르레기마을이야?'
'저 잠긴 문이 아지트임?'
'실화냐 진짜로 쫓겨난 거야?'
'형 목소리 ㄹㅇ 소름'

동구는 댓글을 보지 않았다. 카메라를 든 채로 골목을 천천히 걸었다. 렌즈가 담벼락의 낡은 회벽을 비췄다. 금이 간 화분에서 꼿꼿하게 자라는 쑥갓이 화면에 들어왔다. 뒤엉킨 전선들과 기울어진 슬레이트 지붕이 들어왔다. 찌르레기마을의 생생한 모습과 동구의 속사포 같은 랩이 절규처럼 카메라 화면 속으로 여과 없이 쏟아져 들어갔다. 진짜를 지키고 싶어 하고, 진짜를 살리려 토해내는 그 목소리가 렌즈를 통해 고스란히 실려나갔다. 시청자 수가 천을 넘었다. 병만이 곁에 있던 진구에게 낮은 소리로 말했다. "야, 지금 시청자 수 난리도 아냐. 미친 듯이 올라가고 있어."

팬들의 댓글이 쌓였다. '주말에 찌르레기마을 가자' '공연해 줘요 동구님 거기서' '후원 계좌 알려주세요' '저도 갑니다 토요일'

동구는 그 화면들을 새벽 내내 바라봤다. 달봉은 옆에서 잠이 들었다. 병만과 진구도 마찬가지였다. 아지트 계단에 기대어, 잠긴 문을 등지고. 동구만 깨어 있었다. 화면 속에서 무언가가 달아오르고 있었다. 가만히 앉아 있을 시간이 없어지고 있었다.


임명자는 그날 밤 오랫동안 잠들지 못했다. 이불을 덮었다가 걷었다. 눕지 않고 앉았다. 창문 너머 골목 쪽에서 이따금 바람 소리가 났다. 동구가 밤에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전화를 하지 않았다.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새벽 한 시가 넘었을 무렵, 핸드폰이 울렸다. 카톡메시지였다. 동구와 자주 연락하는 아랫집 아주머니였다.


'동구엄마, 동구 지금 라이브 방송 하고 있어요. 혹시 알아요?' 메시지 아래에 링크가 달려 있었다. 임명자는 잠시 화면을 바라봤다. 손가락이 링크를 눌렀다. 화면이 열렸다. 찌르레기마을 골목이었다. 어두웠다. 동구의 얼굴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충혈된 눈. 목을 타고 내려가는 땀. 그 아이의 목소리가 핸드폰 스피커를 통해 좁은 방 안에 울렸다. "오늘 우리 아지트 뺏겼어요."


임명자는 숨을 참았다. 동구가 랩을 시작했다. 낮게, 거의 혼잣말처럼 시작하다가 점점 분노에 찬 외침. 담벼락에 부딪혀 돌아오는 울림의 잔향. 달봉이 계단에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는 모습. 병만과 진구가 담벼락에 등을 기대고 있는 모습. 그 아이들이 지금 저 골목에서 날밤을 새고 있었다.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동구가 왜 저러는지, 그녀는 알고 있었다. 누구를 향해 분노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알면서도 수십 년을 모르는 척 살아온 것은 자신이었다. 나성결이 건네온 위로가 달콤했기 때문이었다. 생활비 봉투가 절실했기 때문이었다. 진실은 감당하기 버거웠다. 못난 에미가 그러는 동안, 저 아이는 혼자서 이길 수 없는 전쟁을 하고 있었다. 라이브 화면 속에서 동구의 랩이 골목을 울렸다. 댓글창이 쏟아졌다. 시청자 수가 올라갔다. 세상은 저 아이를 보고 있었다. 어미는 그저 진실을 외면한 채 숨어 있었다. 임명자는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방 한구석에 쌓인 동구의 서류들을 바라봤다. 검정 파일 철. 동구가 아무 말 없이 방 안에 쌓아두고 나간 것들. 지금까지 일부러 시선조차 보내지 않았다. 어쩌다 눈길이 닿으면 화들짝 외면하곤 했다. 진실을 아는 게 두려웠다. 더 이상은 외면할 수가 없었다. 가만히 파일 철을 들었다. 식탁에 앉아 첫 장을 넘겼다. 금진수. 남편의 이름이 서류 상단에 인쇄되어 있었다. 빛바랜 차용증. 나성결 목사와 연계된 법인 명의. 숫자들이 칸칸이 박혀 있었다. 부채. 담보. 날짜. 마지막 날짜는 남편이 사라지기 사흘 전이었다. 손이 더 심하게 떨렸다. 한 장. 두 장. 페이지를 넘길수록 드러나는 진실들 앞에서 가슴 한쪽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남편이 죽던 날, 나성결은 위로하며 말했다. '금진수 씨가 하늘나라에서 당신과 동구를 지켜보고 계실 겁니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저희가 늘 가족이 되어드리겠습니다.' 그의 위로는 달았다. 임명자는 파일을 무릎 위에 펼쳐놓은 채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비겁했다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 달콤함이 자신을 어디에 가두었는지를, 알면서도 눈을 감았으니까. 나의 비겁함이 아들 홀로 남편의 죽음을 파헤치게 만들었다. 어미로서 못 할 짓이었다. 그녀는 파일의 마지막 장을 넘겼다. 거기에 동구의 손글씨가 있었다. 삐뚤빼뚤하고 급하게 적은 메모들. 날짜와 이름들과 물음표들. 그 물음표 하나하나마다 아들이 홀로 참으며 버텨온 울분들이 점철되어 있었다. 무언가 서늘한 것이 등줄기를 타고 내려갔다.


그녀는 파일 철을 덮었다.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동구의 번호를 눌렀다가 한 번 끊었다.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눌렀다. 신호음이 세 번 울렸다. "엄마." 동구의 낮고 쉰 목소리가 들렸다. 라이브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지친 목소리였다. "다 읽었어." 임명자가 말했다. 텅 빈 골목으로 지나치는 바람 소리 뒤로 정적이 잠시 흘렀다. "우리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동구가 다시 물었다. "아직은 모르겠다." 그녀가 말했다. "근데 더 이상은 이대로는 안 될 것 같다." 그녀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단단한 결기가 서려 있었다.



토요일 낮, 찌르레기마을 비탈길에 낯선 얼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후드와 비니를 눌러쓴 청년들. 형형색색의 스니커즈. 텀블러를 손에 든 젊은 여성들. 힙합 커뮤니티에서 참석한 사람들이었다. 마을 어귀에서 두리번거리다 동구를 발견하면,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말은 많지 않았다. 굳이 할 필요가 없었다. 요나단 전도사가 오토바이를 끌고 나타났다. 뒤에 골판지 손 팻말들이 실려 있었다. 매직으로 크게 쓰여 있었다. '찌르레기마을 우리가 지킨다'. 굵고 빠르게 써진 글씨였다. 그의 분위기와는 달리 강경하고 투쟁적으로 느껴진다. "어제 올린 영상 봤어요." 전도사가 동구에게 말했다. "나도 왔습니다." 마을청년들이 마을회관 앞에 나와 서 있었다. 영문을 모르는 얼굴들이었다가, 익숙한 동구 얼굴을 보곤 안도하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대파 한 단을 겨드랑이에 낀 할머니가 말했다. "오늘 뭐 하는 거야?" 동구가 짧게 대답했다. "그냥 모이는 거예요."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마치 자신도 당연히 있어야 한다는 듯이. 대파를 옆구리에 낀 채로 자리를 지켰다.


그 시각, 방송국 쪽에서 연락이 왔었다. 며칠 전 오디션 제안을 했던 프로그램 PD였다. '라이브 영상 봤어요. 지금 화제잖아요. 저희 방송에 나오시면 찌르레기마을 이야기도 잘 담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떠세요?' 목소리가 부드러웠다. 진심처럼 들렸다. 동구는 잠시 생각했다. 찌르레기마을을 '방송용 콘텐츠'로 만드는 것과, 찌르레기 을을 진짜 삶 속에서 그냥 두는 것. 그 두 가지는 결코 같을 수 없다는 사실을, 동구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방송국 스튜디오의 조명 아래서 재현된 가난은, 골목의 살아있는 생기를 지운다. "죄송한데요." 동구가 말했다. "오늘 일이 있어서요." 전화를 끊었다. 이미 교회 앞 공원광장 쪽으로 많은 발걸음들이 모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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