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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선의 가면을 벗기다

by 코나페소아

이른 새벽녘.

나성결은 집무실의 거울 앞에 서서 빳빳하게 풀 먹인 셔츠의 단추를 아래에서부터 한 알씩 채웠다. 느리게, 의식처럼. 거울 속 자신의 모습 너머로 산비탈의 찌르레기 마을이 보일 때, 그는 눈을 가늘게 떴다. 슬레이트 지붕들이 이른 아침 안갯속에 웅크리고 있었다. 낮고, 낡고, 지워지지 않는 것들.

새끼손가락만 한 진주 커프스링크가 소맷부리에서 빛났다. 잠깐 드러났던 손목의 화상 자국이 눈부시게 하얀 소매 안으로 사라졌다.

"금진수."

나성결이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거울을 향하는 건지, 거울 너머 찌르레기 마을을 향하는지 모호했다.

"네 아들이 밖에서 떠드는 것은 음악이 아니야. 그건 네가 나에게 던지는 저주지. 하지만, 결국 살아남아 성벽을 세운 건 나다. 신은 재능이 아니라 견디는 자의 편이야."

그의 독백은 집무실의 차가운 정적 속으로 흩어졌다. 파우더로 목주름을 가렸다. 사람들 앞에 서면 그는 거룩한 성자다. 힘을 가진 지도자, 침묵하는 신의 유일한 대리인, 그 모든 단어들이 그의 얼굴 위에 한 겹씩 덧씌워진다.

잠시 거울 속의 눈빛이 흔들렸다. 어젯밤 받은 문자 한 줄을 떠올렸다.

"기자들이 움직이네요. 오래전 우주뮤직 레코드사와 관련한 비리를 폭로하는 제보인 것 같습니다."

단추를 채우는 손이 한 박자 늦었다. 그러나 멈추지 않았다. 끝까지 채웠다. 맨 위 단추까지. 목이 조여도 표정은 흔들리지 않았다. 삼십 년. 그는 삼십 년을 견뎌왔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오후 한 시, 중구 태평로 K일보 연예문화부 소회의실.

임명자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서 한 번도 주위를 두리번거리지 않았다. 검정 파일철이 든 봉투를 두 손으로 품에 꼭 안은 채, 똑바로 걸었다. 낡은 베이지 코트. 뒤축이 닳은 운동화. 아무런 장식이나 화장도 하지 않았지만 그녀에게서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오래전부터 그랬던 것처럼 그녀는 자연스럽게 쏟아지는 주변의 시선들을 무시했다.

연예문화부 베테랑 오세한 기자가 소회의실 문을 열어줬다. 테이블 맞은편에는 사진기자 한 명이 더 앉아 있었다. 녹음 버튼이 눌린 스마트폰이 테이블 위에 올라왔다. 회의실 형광등 불빛이 차가웠다.

"말씀하시기 전에 한 가지만요."

오세한이 볼펜을 들었다.

"왜 지금입니까? 삼십 년이 지났는데."

임명자가 검정 파일철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소리가 생각보다 묵직했다. 오래 품어온 것의 무게였다.

"제 아들을 위해서요. 아들이 위험해질 것 만 같아요."

잠깐 말을 멈췄다가 그녀가 덧붙였다.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를 막아달라며, 한 아이가 목숨을 걸고 넘겨준 증거들이기도 합니다."

오세한이 볼펜을 멈췄다. 사진기자도 몸을 앞으로 당겼다.

그녀가 파일철을 열었다.

첫 번째 장. 빛바랜 악보 사진 여러 장. 오선지 위의 음표들이 누렇게 바랬어도 필체는 살아 있었다. 빠르고 곱고 어딘가 급한 듯한 손. 음표 사이사이 여백에 꾹꾹 눌러쓴 글자들. '명아야, 이 멜로디 어때?'

두 번째 장. 30년 전 계약서 사본. 저작권료 배분 조항에 줄이 그어져 있었다. 작곡자란에 처음 쓰인 이름이 지워지고 다른 이름이 덮여 있었다. 수정액이 두껍게 발려 있어 원본 이름의 흔적만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계약 조항들은 일방적이었다. 모든 권리는 기획사로. 이의 제기 시 손해배상. 계약 기간은 무제한이라고 적혀있었다.

"이걸 남편이 서명했습니까?"

"서명한 게 아니에요. 그냥 믿었어요. 기획실장이 알아서 해준다고 했으니까."

세 번째 장. 편지.

손글씨였다. 줄 없는 백지 위에 금진수의 펜이 떨리며 지나간 흔적들. 오세한은 소리 내어 읽지 않았다. 눈으로만 읽었다. 읽는 사이 그의 표정이 조금씩 굳었다.

휘갈겨 쓴 편지의 첫 줄은 이랬다.

"나는 성결에게 속았다. 내 음악이 내 것이 아닌 채로 세상에 나갔다. 이 사실을 알고 나서 나는 더 이상 노래를 쓸 수가 없었다. 오. 이럴 수가."

임명자가 천천히 말을 꺼냈다.

"제가 무대에 서던 시절이 있었어요."

기자들이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88년에 데뷔했습니다. '명아'라는 이름으로. 지금은 아무도 기억 못 하겠지만."

오세한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가 노트북으로 자료를 검색했다. 낡은 음악 잡지 스캔본. 88년 신인 특집 페이지. 거기 있었다. 짧은 단발, 무대 위의 조명, 관객을 향해 손을 뻗은 스물두 살의 여자.

명아. 한해를 가장 빛낸 신인가수.

"이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임명자가 사진을 한 번 내려다봤다. 스물두 살의 자신을. 그리고 천천히 시선을 거뒀다. 마치 다른 이를 바라보는 표정이었다.

"진수 씨를 만난 건 그 무렵이에요. 그 사람 멜로디가 제 목소리랑 맞았거든요. 나성결은 그때 우리 기획사 실장이었고요. 진수 씨 곡을 쓰는 걸 도와준다고 했어요. 그런데 그게 도움이 아니었던 거예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됐습니까?"

"진수 씨가 쓴 곡이 크게 히트했어요. 그런데 음원 수익은 단 한 푼도 오지 않았어요. 계약서를 보여달라니까 성결씨가 다 처리했다고 했어요. 진수 씨도 처음엔 믿었어요. 저도요." 그녀의 목소리가 조용히 낮아졌다. "그러다 진수 씨가 진실을 알았을 때는 이미 모든 게 끝난 뒤였어요. 저작권이, 이름이, 수익료가. 전부 나성결이 새로 만든 회사로 넘어가 있었어요."

"그 이후에 선생님 활동이 갑자기 중단됐는데요."

임명자가 잠깐 말을 멈췄다. 소회의실의 형광등이 가늘게 윙윙거렸다.

"부도 처리된 회사의 부채만 떠안은 진수 씨가 세상을 떠난 뒤, 나성결이 저한테도 서약서를 내밀었어요. 갓 태어난 아들과 저를 보살펴줄 테니 사인을 하라고. 진수 씨 사건에 대해 일절 발설하지 않겠다는 조항이 포함된 서약서였어요. 저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고통스러워하는 그녀의 모습에 소회의실이 일순간 침묵에 잠겼다.

사진기자가 카메라를 들었다. 파일철 위의 악보를, 계약서를, 편지를 한 장씩 찍었다. 셔터 소리가 천천히, 규칙적으로 반복됐다. 오랫동안 감춰진 것들이 서서히 빛 안으로 들어오는 소리 같았다.

오세한이 스마트폰 녹음기를 끄지 않은 채로 물었다.

"후회하지 않으십니까. 지금 이러는 거."

임명자는 잠깐 눈을 감았다. 무대 위의 조명, 진수의 멜로디, 태워진 것들의 냄새. 그것들이 한꺼번에 그녀를 지나쳐 갔다.

그녀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삼십 년을 후회했어요. 이젠 그만하려고요."



30년 전 찌르레기 마을의 한 골방.

금진수는 술을 거의 마시지 않았다.
그런데도 멜로디는 항상 술 취한 것처럼 흘러나왔다. 새벽 두 시, 찌르레기 마을 옥탑방. 연탄불이 빨갛게 피어 있었다. 그는 기타 줄을 뜯었다. 악보지 위에 음표를 적는 속도가 글자를 쓰는 것보다 빨랐다. 손이 멜로디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 멜로디가 손을 끌고 갔다.

그 방에는 나성결도 있었다.

그도 음악을 했다. 화성학 교재, 코드 분석 노트, 빼곡한 메모. 그의 노력은 찬란했다. 전심을 다했다. 그러나 진수의 콧노래 하나가 그의 노트 전체를 이겼다. 그런 사실을 둘 다 알았다. 하지만 서로에게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그저 암묵적인 인정만이 둘 사이에 침묵으로 존재했다.

진수가 기타를 치는 동안, 나성결은 부엌으로 나와 연탄불 앞에서 자신의 두 손을 내려다봤다. 오직 노력만 해온 손. 하지만 멜로디가 나오지 않는 저주받은 손이다.

다음 날 아침.
나성결이 악보를 들고 기획사 실장실에 들어갔을 때, 그는 자신의 이름 세 글자를 작곡자란에 적었다.

진수의 이름은 지워졌다. 종이가 조금은 해졌지만 티는 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밤, 찌르레기 마을 골목 담벼락 앞에서 골방을 향해 성냥에 불을 붙였다. 곧 나무가 타는 냄새와 매캐한 연기가 골목 안을 가득 채웠다. 시뻘건 불길이 손목을 스쳤다.

그게 30년 전 일이다. 그날의 흔적은 손목 위의 흉터로 고스란히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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