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ight

한계의 끝에서 집어삼키는 불꽃

by 코나페소아

어둠은 실체였다. 유치장 안에 드리워진 어둠은 빛이 없는 암흑이 아니라, 짓누르는 무게추로 존재했다. 두 무릎을 세운 채 구는 둠의 무게를 고스란히 느끼고 있었다. 시멘트 바닥의 냉기가 엉덩이뼈를 타고 올라온다. 동구는 두 손목을 쓰다듬었다. 손목에 깊게 파인 수갑 자국이 마치 영원히 풀리지 않을 저주의 흔적 같다. 벽 너머에서 누군가 기침했다. 철망 사이로 복도의 가는 불빛이 스며들었다. 그 빛줄기 속에서 동구는 자기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택배 상자를 들고, 비트를 만들고, 아지트를 지키려 했던 뜨거웠던 손. 지금은 그냥 차갑게 식어버렸다.


잡혀버린 지느러미.


그 단어가 먼저 떠올랐다. 물속에서 그물에 걸린 물고기처럼. 퍼덕여봤자 더 깊이 조여드는 것처럼. 그는 지금 나성결의 손바닥 안에 있다. 알면서도 어쩌지 못한다는 사실이 가장 힘겹다. 가운 벽에 가만히 등을 기댔다. 머릿속으로 비트가 흐른다. 주변에는 크루들도 없고, 스피커도 없고. 반주도 없지만, 점점 트는 강렬하게 솟쳐 오른다. 동구는 눈을 감았다. 입술사이로 만히 비트 내뱉었다.


내 존재 알아가려 늘 뒬 쫓네.

잡혀버린 지느러미.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선이 난 싫어.

도망쳤어 난.


낮고 간간이 끊어지면서, 랩이라기보다는 기도에 가까운 음절들. 하지만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 음절들이 어둠에 구멍을 하나씩 뚫어냈다. 바깥은 여전히 밤이지만, 아직까지 끝나지 않았다. 결코.

임명자는 아들이 끌려간 날, 밤잠을 잃었다. 이불을 걷어찼다. 낡은 점퍼를 걸쳤다. 냉장고 위에 붙어 있던 메모지들 중 하나를 뜯었다. 오병만의 전화번호. 손이 떨렸다. 잠시 망설이다 핸드폰을 들었다. 신호음이 네 번 울렸다. 다섯 번째. "…여보세요." 잠이 덜 깬 병만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새벽 네 시였다. "병만아, 나야. 동구 엄마." "아, 어머니. 무슨 일이에요, 이 시간에." 임명자는 무의식 중에 일어나 말했다. "동구는 마약 어쩌고 하는 누명을 쓴 거야. 나성결 그 사람이 뒤에서 건드린 거야. 네 사촌 중에 변호사가 있다고 했지. 지금 당장 연락될 수 있어?"


핸드폰 너머에서 잠시 침묵이 흘렀다. 짧은 침묵이었지만 임명자에게는 길었다. 그 사이 그녀는 창밖을 보았다. 찌르레기 마을의 새벽. 골목 가로등 하나가 깜빡이고 있었다. 꺼질 듯, 꺼질 듯, 버티고 있었다.

"… 알겠어요. 사촌 형한테 연락하고 다시 전화드릴게요."

"고마." 전화를 끊었지만 임명자는 한동안 서 있었다. 싱크대 쪽으로 걸어가 물 한 잔을 마셨다. 그녀는 다시 앉지 않았다. 날이 밝을 때까지 서성였다. 아들을 위해 무엇이든 해야만 한다. 오직 그것만 생각했다.

찌르레기 마을에 비가 내렸다. 소리 없는 비다. 슬레이트 지붕 위로 떨어졌다가 홈통을 타고 땅으로 흘렀다. 더 트리 아지트의 낡은 현수막이 빗물에 젖었다. 골목 귀퉁이 느티나무는 가지를 축 늘어뜨렸다. 잎이 다 떨어진 자리에 빗방울이 맺혔다가 떨어지고, 또 맺혔다가 떨어졌다. 아무도 이 비를 보고 있지 않았다. 유치장 창문 너머에서, 찌르레기 마을 골목에서, 스위스의 호텔 창가에서도. 그냥 각자의 어둠 속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버티고 있는 사람들 위로, 비는 한참을 내리다가 이내 멈췄다. 느티나무만이 앙상한 가지를 드리운 채 마냥 서 있었다.




유치장 접견실의 형광등 불빛이 밝았다. 그 빛 아래서 동구는 철망 너머를 보았다. 엄마 임명자가 앉아 있었다. 옆에는 정장 차림에 서류 가방을 든 모르는 남자가 서 있었다. 변호사였다. 그는 가방을 열어 뭔가를 꺼냈지만 동구의 눈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엄마 얼굴만 보였다. 볼살이 꺼져 있었고, 눈 아래 그림자가 짙었다. 몇 끼를 굶은 건지. 몇 시간을 못 잔 건지. 고뇌의 흔적들이 얼굴 위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런데 동구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엄마의 환한 미소를 보는 순간, 동구는 목이 잠겼다. 할 말은 많았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변호사가 서류를 짚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을 시작했다. 혐의 구조, 증거 부재, 대응 방향. 동구는 듣는 척했다.


실은 철망 옆에 가지런히 올려진 엄마의 손을 보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것들을 견뎌왔는지. 그 손이 지금은 얼마나 떨리고 있을지. 변호사가 말을 멈추자 임명자가 철망 쪽으로 더 가까이 당겨 앉았다. "동구야." 목소리가 낮았다. 주변에 들릴 만큼 크지 않았다. "엄마가 진짜 무서운 게 뭔지 알아?" 동구는 고개를 들었다. "돈 없는 거 안 무서워. 이 동네 철거되는 것도 안 무서워. 나성결 그 인간도 솔직히 별로 안 무서워." 임명자는 잠시 멈췄다. 그리고 말했다. "동구 너 잃는 거. 그게 딱 하나, 그게 가장 무서워." 그 말에 그만, 동구는 눈을 들지 못했다. 아랫입술이 떨렸다. 그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러니까." 임명자가 다시 말했다. "내 아들은 내가 꼭 지킬 거야. 변호사도 오셨고, 이제 뭐든 다 할 거야. 너는 그냥 버텨. 알았지 아들?"


뭐든 다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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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택배차 공간은 나를 가두는 감옥이 아니라, 세상 누구보다 가까이서 사람들의 일상을 관찰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전망대'입니다. 저는 세상을 읽으며 글을 쓰는 몸글 사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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