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지 않고는 숨 쉴 수 없는 사람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열렬한 독자였다

by 여행자

나는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다.


어릴 적의 나는 초등학교 도서관의 좁은 책장 사이를 누비며 보물을 찾는 모험가였다.

해리포터나 타라덩컨같이 어린애들의 손때가 묻어 너덜너덜해진 베스트셀러부터, 오랫동안 그 자리에 머물러 뽀얗게 먼지 쌓인 책까지. 가리지 않고 읽었다.


책의 첫 장을 펼치면, 처음 보는 세계가 나를 초대했다. 활자로 하여 살아 움직이는 주인공과 그의 동료들은 기꺼이 외부인인 내게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나는 그들에게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게 언제나 마냥 좋았다.


그러나 모든 여정이 끝나고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펴는 순간, 나는 차게 현실에 혼자 남겨졌다. 황홀한 순간에 나를 초대했으면서 정작 그들끼리 새로운 모험을 떠나버리다니, 섭섭하기까지 했다. 현실의 내게 남겨진 건 풀다 만 지겨운 수학 학습지밖에 없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한 이야기를 마친 후에는 닥치는 대로 다른 이야기를 읽어 내렸다. 엄마의 삼엄한 감시 아래 공부를 하던 중에도 틈만 나면 판타지소설을 읽어 혼난 적은 (안) 비밀이다.


그땐 왜 그렇게 책이 재밌었을까? 물론 지금도 좋아하지만, 그때와는 느낌이 다르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때의 나는 '작가'라는 존재를 전혀 인식하지 않았다. 물론 '작가'라는 개념은 분명히 이해하고 있었지만,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이 활자 하나하나가 의도를 가지고 누군가에게 쓰였다'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모든 책은 각각의 고유한 세계였으니까.


'이거 다 지구 반대편의 누구누구 씨가 어떤 과정을 거쳐 써내고 출판한 거래'라는 말은 내게 '사실 산타는 없는 거야'와 맞먹는 충격이었다.


그러다 나는 중학교에 올라가 '패러디'라는 장르를 접하게 되었다. 하나의 이야기를 읽은 수많은 애독자들이 작가가 되어, 기존의 세계에 자신의 욕망을 얼기설기 엮어 새로운 세계선을 창조해 내는 것.


아, 그건 지독히도 외로웠던 내게 딱 맞는 장르였다. 누구나 원작을 알기만 하면 '패러디'라는 이름 아래 본인의 욕망을 투영하고 그걸 공유할 수 있었다. 내가 특히나 즐겨봤던 것은 '조아라'라는 사이트에서 범람했던 '해리포터 패러디'들이었다. 매우 인상 깊게 본 '지독한 후플푸프'라는 작품은 단행본을 사서 아직도 나의 책장 속에 고이 깃들어있다.


'패러디' 장르를 처음 접한 나는 홀린 듯이 수많은 작품들을 클릭해서 읽어 내렸다. 기존의 주인공이 아니라 이 조연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는 어때? 원작엔 없던 새로운 캐릭터가 사건을 해결하며 전개된다면? 아예 이 모든 일의 원흉인 악당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많은 독자이자 작가들이 수많은 물음표를 던지며 그들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재밌었다. 그리고 부러웠다. 나도.. 나도 작가가 되어서 그들의 이야기에 합류하고 싶어! 이번엔 끌려다니는 게 아니라 내가 그들을 끌어서.


독자이자 작가인 당신들에게 내 세계를 들려주고 싶어. 처음으로 글을 써보고 싶다고, 있는지도 몰랐던 내 욕망이 불쑥 비집고 올라온 첫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제야 난 책에서 주인공의 목소리와 작가의 목소리가 동시에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하, 이 작가는 주인공이 이렇게 행동하길 바라는군. 나도 그랬으면 했는데! 이 작가는 배드엔딩을 좋아하네.....

.......... 생각보다 나쁘지 않을지도?(이때 피폐한 전개가 내 취향에 맞는다는 걸 깨달았다)


종이책을 벗어나, 패러디를 시작으로 무료 웹사이트에서 다양한 소설들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나는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며 제동이 걸렸다. 입시 공부는 이러나저러나 중요한 것이었다. 난 판타지나 sf 따위를 읽기를 관두고 난해한 비문학 지문이나 고전문학을 읽었다.


하지만 공부를 하다 멍 때릴 때에는 내 머릿속에서 참신한 아이디어들이 샘솟았다.

좋은 성적을 받아 좋은 대학을 가는 것.... 그래, 다 좋아. 근데, 난 쓸데없다고 평가받더라도 공상하고 읽고, 쓰는 게 좋은 걸.

그래, 내 진짜 꿈은 작가였어! 난 글을 쓰고 싶어. 글을 쓰지 않는 나는 내가 아닐 것만 같아.


입시를 마친 나는 내 오랜 꿈이었던 '글쓰기'를 실천하려고 글 쓰는 앱을 설치하고 1화를 써보았다.


근데... 글 쓰는 건 생각보다 더 어려운 것이었다!


일단 기본적인 전개를 어떻게 해야 될지 막막했다. 무작정 써보고 나니 5500자가 정량이라는데 한 화에 3000자밖에 안 됐고, 쓴 걸 읽어보니 아... 좀 '밤티'났다.


그리고 무엇보다 묘사에 있어 어휘력이 부족함을 느꼈다. 양산형 작품들을 '내가 그것보단 잘 쓸 것 같은데..'라며 은근히 깔보았던 내가 뼈저리게 후회되었다.


모든 작가들은 대단하다. 진심으로.



그래서 난 글 쓰는 걸 포기할까? 생각도 했다. 소설시장은 과포화상태고 꾸준히 연재하는 것도 어려운데.. 대중에게 인기를 얻어 유명해지는 건 더더욱 어렵단다.


그런데 글을 쓰지 않기로 마음먹은 다음엔 왠지 마음이 공허했다. 마치 어릴 때 나를 남기고 모험을 떠난 그들의 뒷모습을 영영 바라보는 것 같은 기분. 외롭다. 이렇게 외로웠던 적이 있었나. 그래서 또 글을 썼다. 굳이 쓰지 않더라도 설정을 생각하는 것만으로 즐거웠다.


그래, 난 어쩔 수 없는 작가인가 보다. 이야기꾼 말이다.

'저기, 전 아직 제대로 된 작품 하나 쓴 적도 없지만 제가 조물조물 주물러 만들어낼 세계는 분명히 재밌을 거예요. 그러니 절 한번 지켜봐 주시겠어요?'

세상에 이렇게라도 소리쳐보고 싶다.


작가가 되기로 마음을 정한 후에는 내가 좋아하는 작품들을 다시 읽었다. 직업병(?)인지 신기하게도 이전과는 색다른 시선으로 읽혔다. 전에는 그냥 대충 읽고 넘어갔을 대목인데, 이젠 공책에 끄적끄적 필기도 하고 처음 보는 어휘는 외워도 봤다.


그제야 책 하나하나가 단순한 세계가 아닌 작가가 손수 지어낸 노력의 결과물처럼 보였다. 더 이상 순수하게 몰입해서 읽을 수 없다는 점이 씁쓸하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동료 작가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것도 나름의 매력이 있었으니까.


이제 나는 어릴 적의 나 같은 독자들을 위해 순수히 빠져들 수 있는 하나의 세계를 만드려고 노력한다. 그때의 나처럼 작가를 인식하지 않아 주면 너무나 고맙겠다. 내 작품을 보는 순간만큼은 '그들'의 손길에 속절없이 이끌려 이곳저곳을 실컷 구경해 줬으면 좋겠다. 그렇게 정신없이 한참을 둘러본 다음에야, 어? 그러고 보니 이걸 쓴 작가가 있었지. 이 글을 더 써줬으면 좋겠는데? 하고 응원해 주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


그래그래, 난 글 쓰지 않으면 숨 쉴 수 없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런 내가 좋아.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열렬한 독자였다.


시작은 한 명의 독자였지만,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글을 쓰기 시작한 작가인 당신을 너무나도 애정한다.


소설이 아니어도 된다.

당신의 삶을 들려주고 싶어서,

일상을 공유하고 싶어서, 외롭지 않기 위해서,

'숨쉬기 위해서' 글을 쓰는 당신이 무척 사랑스럽다.


나는, 우리는 '글을 쓰지 않고는 숨 쉴 수 없는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