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안의 사나이
첫 번째 글에서, 난 나를 '글 쓰지 않으면 숨 쉴 수 없는 사람'으로 정의했다. 브런치 작가 신청도 오로지 그 첫 글로만 했다. 브런치팀도 그 글을 높이 평가해 주었는지 아무런 경력도, 경험도 없는 07년생 작가 지망생인 나를 한 번에 통과시켜 주었다. 감사한 일이다.
그래서 난 내 전부와도 같은 '글 쓰는 것'에 대해 두 번째 글을 써보려고 한다.
욕구위계이론. 매슬로의 욕구 5단계 이론.
다들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것 같다. 사진을 찾아보려고 구글에 검색했더니 이미 많은 브런치 작가님들도 다루어보셨다.
난 감사하게도 넉넉한 가정에서 태어나 '애정의 욕구'까지는 충족된 상태이다. 다음은 '존경의 욕구'인데... 그림의 설명에는 승인, 존경, 지위, 명예라고 되어있다.
존경? 평범한 학생인 나는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 아니다.
지위? 재수를 앞둔 내가 지위가 있을 리가. 재수생이라는 지위는 내게 없어도 된다..
명예? 마찬가지로 나는 명예가 없다.
승인. 흠, 글쎄다...
피라미드의 맨 꼭대기는 '자아실현의 욕구'이다. 부연설명은 자기완성, 삶의 보람.
나는 글쓰기를 통해 나라는 사람을 외부 사람들로부터 승인받고 삶의 보람을 얻으려는 거였던가.
음.... 음...... 다 때려쳐! 나라는 사람을 이 피라미드 5단계에 맞추어 설명하려니까 갑갑하네! 사실 좀 '있어 보이게' 설명하고 싶었는데 다 물 건너갔다. 기껏 사진첨부기능까지 사용해봤는데...칫. 알고 보니까 이 이론 논란도 있더만. 하긴 사람이라는 게 피라미드로 설명되었다면 얼마나 간편했을까.
이를테면, 너는 안전의 욕구는 충족되었으니 다음으로는 애정의 욕구를 충족해야겠구나.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렴, 물론 결혼이 최선의 선택이겠지!
이렇게 사람을 간편히 규정할 수 있단 말인가? 당장 나조차도 나를 모르겠는데.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놀고 싶다가도 무언가를 열렬히 연구해보고 싶고, 누군가와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누어보고 싶다가도 혼자 있고 싶고, 글을 쓰고 싶다가도 귀찮아서 모두 다 그만두고 싶고...
이랬다, 저랬다... 휴, 난 항상 제멋대로이다. mbti라는 틀로는 infp. 'n'과 'p'가 이런 내 성격에 상당한 기여를 한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글을 써야만 한다는 사실은 내 자아 속에 심지처럼 굳어있다. 나는 항상 그 주위를 뱅뱅 맴돌다가 보이지 않는 자력에 이끌리듯 여기로 되돌아온다.
글 속의 나는 정제되어 텍스트 속에 곱게 보관되어 있다.
마치 검은 잉크가 흰 종이 위에 착ㅡ 스며들듯.
가끔 나는 내가 쓴 글들을 바라보며 글 속의 '나'라는 존재를 추정해 본다. 사나이가 우물을 가만히 들여다보듯이 말이다. 나는 우물을 가까이 응시해본다.
우물 안의 물은 찬찬히 일렁거린다. 물에서는 이기적인 어린애가 보였다가도 세상만사에 통달한 스님이 보인다. 나는 불현듯이 우물에 한 우레박의 물을 들이붓는다. 들이붓는 일은 재밌고 고되다. 나는 빈 물통을 내려놓고 땀을 닦는다. 새 물을 들이부은 우물의 물결은 소용돌이치다 또다시 다른 이미지를 띄운다.
나는.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자화상-윤동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