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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낯선 세계에서 배운 것들

탭을 반납하며


살면서 이렇게 굽신거려 본 적이 없었다.

"인구조사 좀 부탁드립니다."

전도사처럼 집집마다 벨을 누르고, 애걸하듯 설문을 부탁했다.

설문을 마친 고객에게는 진심으로 고개를 숙여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그만 좀 찾아오라"는 싫은 소리를 들을 때면,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나 싶었다.


차가운 골목, 따뜻한 사람들

관리자님은 밤늦게까지 골목에 서서 건물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협조를 구했다.

부동산을 찾아다니며 빈집 체크를 부탁드렸지만, "모르는 척, 내 구역이 아니다"라며 똥파리 취급하는 차가운 시선도 받았다.

퇴근하는 남성분을 따라 아파트 계단을 급히 올라간 적도 있다.

"여기 기숙 사지, 내 집 아니에요. 설문 안 해요." 거절하는 그를 간신히 설득했던 그 순간의 떨림.


작은 성공의 기쁨들

그런데 이상했다. 힘들고 서러운 순간들 사이사이, 예상치 못한 기쁨이 숨어 있었다.

협택공동 현관 비밀번호를 알아냈을 때의 그 짜릿함.

계단을 청소하시는 분을 만나 빈집 정보를 얻었을 때의 행복.

그 감정들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웠다. 마치 보물 찾기에 성공한 아이처럼, 가슴이 뛰었다.


인연이 만든 기적

그리고 어느 날,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우연히 한 건물의 건물주가 지인이었다.

그분은 빈방 정보를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놀라움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분의 부인이 부동산을 하셨는데, 연락이 안 되는 세입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설문을 부탁해 주신 것이다.

그 순간, 깨달았다.

사람의 인맥이 이렇게 크게 작용할 줄은 몰랐다.


나만의 작은 승리

내가 일하는 고시원이 선정 가구가 되었을 때, 나는 관리자님께 빈 호실 정보를 먼저 알려드렸다.

그때의 뿌듯함이란. 이 일을 직접 해봤기에, 얼마나 힘든지 알았기에, 남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기쁠 줄 몰랐다.

그 작은 정보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하루를 절약하는 선물이 될 수 있었다.

내가 받았던 도움을, 이제는 내가 줄 수 있게 된 것이다.


끝, 그리고 감사

오늘, 탭을 반납했다. 일이 끝났음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관리자님과 웃으며 인사를 나눴다. "수고하셨습니다." "아니에요, 감사했습니다."

정말로 감사했다. 이 일을 통해 나는 세상을 살아가는 또 다른 방법을 배웠다.

낯선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는 용기, 거절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끈기, 그리고 작은 친절이 만드는 기적 같은 순간들.

무엇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다.

이 경험은 단순한 아르바이트가 아니었다.

살면서 만나는 모든 사람이 잠재적인 도움이 될 수 있고, 내가 누군가에게도 그런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인구조사가 내게 남긴 가장 큰 선물이었다.

고개 숙여 감사했던 그 순간들이, 이제는 나를 더 큰 사람으로 만들어 준 소중한 시간이었음을 안다.



이 일로 기자님을 알게 되어 전화인터뷰로 커피 쿠폰까지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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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8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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