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감독관
한 달 후면 막내가 중학교를 졸업한다.
초등학교 6년은 하루하루가 더디게 흘렀다.
입학식 날 커다란 책가방을 메고 내 손을 꼭 잡던 그 작은 손의 온기가 아직도 생생한데,
중학교 3년은 순식간이었다.
1학년, 2학년, 3학년. 세 글자씩 지나칠 때마다 아이는 쑥쑥 자랐고,
나는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아이가 학급 반장을 맡게 되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3학년 학부모 부회장이 되었다.
"부담 적은 자리"라고들 했지만, 그래도 졸업반 부모로서 할 일은 적지 않았다.
앨범 선정 운영위원회도 해보고, 이번에는 시험 감독 부탁을 받았다.
연말이라 바쁜 시간이었지만, 하루쯤은 내어줄 수 있었다.
어차피 이것도 마지막이 아닌가.
시험 감독은 처음이었다.
신발소리 안 나는 운동화 신었다
'지필평가 학부모 명예교사 위촉장'이라는 제법 그럴듯한 종이 한 장을 받았다.
위촉장을 받아 든 순간, 괜히 마음이 숙연해졌다.
아이들의 시험을 지킨다는 것, 그것은 생각보다 무거운 책임이었다.
1교시 시험장으로 올라갔다. 교실에는 1학년과 2학년이 반반씩 섞여 앉아 있었다.
내가 학교 다닐 때는 책상 위에 가방을 올려놓아 옆 사람을 가렸는데,
지금은 학년을 섞어 한 줄씩 교차로 배치하는 방식이었다.
시대가 변했구나.
2학년은 한자 시험을, 1학년은 자율 학습을 하는 시스템.
시험지를 뒤로 돌리는데, 끝자리에 앉은 학생이 한 장만 받은 걸 발견했다.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내가 바로 챙겨주지 않았다면 그 아이는 어땠을까.
다행히 시작종이 울리기 전이었다.
종소리가 울렸다. 시험 시작.
교실은 고요했다.
연필이 종이를 긁는 소리, 가끔 들리는 한숨 소리,
나는 교실 뒤편에 서서 아이들을 지켜봤다.
5분도 안 돼서 엎드린 아이가 있었다.
처음엔 놀랐다.
'벌써?' 하지만 그 아이도 나름의 최선을 다한 것일 테다.
어쩌면 이 시험은 그 아이에게 중요하지 않은 것일 수도,
혹은 이미 포기한 것일 수도 있었다.
반대편에는
끝까지 시험지를 뚫어져라 보다가 10분 전 안내 멘트가 나올 때서야
OMR 카드를 마킹하는 아이가 있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답을 고민하는 그 진지한 눈빛에서 나는 무언가를 보았다.
아, 이 아이는 이런 식으로 세상을 살아가겠구나.
다 풀고 확인까지 마친 뒤 조용히 엎드린 아이도 있었다.
안도와 만족이 뒤섞인 자세였다.
1학년 중에는 자율 시간임에도 공부는 안 하고 그냥 가만히 앉아 있는 아이도 있었고,
다음 과학 시험을 미리 준비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교실 뒤에서 보니 알 것 같았다.
누가 공부를 잘하는지, 누가 노력하는지, 누가 아직 방황 중인지.
45분이라는 시간 동안 각자의 인생이 펼쳐지고 있었다.
시험 감독을 지원한 다른 엄마가 쉬는 시간에 말했다.
"시험 기간엔 나 소파에서 자요. 애 방에서 나오는 소리가 신경 쓰여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작 아이들은 천하태평인데, 엄마들은 잠을 못 이룬다.
기침 소리 하나에도 조심하고, 시험 망치면 어쩌나 전전긍긍한다.
그게 부모의 마음이다.
수능 시험 감독을 기피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긴장감, 그 무게감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막상 해보니 지루하지 않았다.
오히려 의미 있었다.
아이들의 진지함, 그들의 노력, 그들 각자의 속도를 가까이에서 지켜본다는 것.
45분이 지나가고 종이 울렸다.
시험지를 걷으며 아이들의 얼굴을 보았다.
어떤 아이는 환하게 웃었고, 어떤 아이는 한숨을 쉬었다.
그 모든 표정이 진짜였다.
한 달 후면 막내가 졸업한다.
위촉장 한 장, 시험 감독 한 번. 별것 아닌 일일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아이의 중학교 시절을 함께 마무리하는 의식 같은 것이었다.
앨범도 고르고, 회의에도 참석하고, 교실 뒤편에도 서보고.
초등학교 6년이 더디게 간 건, 내가 아이 곁에 더 가까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중학교 3년이 금방 간 건, 아이가 내게서 멀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게 성장이고, 그게 시간이다.
교실 뒤편에 서서 아이들을 보며 생각했다.
저 아이들도, 우리 아이도, 각자의 속도로 달리고 있구나.
어떤 아이는 빠르게, 어떤 아이는 천천히. 어떤 아이는 쉬기도 하고, 어떤 아이는 쉬지 않고.
부모는 그저 뒤에서 지켜볼 뿐이다.
한 달 후, 졸업식장에서 나는 또 한 번 뒤편에 서 있을 것이다.
아이가 졸업장을 받는 모습을 보며, 지나간 시간을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알 것이다.
고등학교 3년도 또 금방 지나가리라는 것을.
시간은 그렇게 쑥쑥 지나간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