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장회의가 있는 날이었다.
민방위 교육을 마치고 회의를 하고 회식까지 마쳤지만,
정작 내 마음은 하얀 봉투들에 가 있었다.
통장 일을 하면서 가장 행복한 순간, 바로 취학통지서를 돌리는 날이다.
회의가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전화가 왔다.
"통장님, 취학통지서 언제쯤 받을 수 있을까요?"
벌써 기다리는 목소리.
나도 성격이 급한 편이라 바로 배부해야 마음이 편하다.
그 사이를 참지 못하고 집으로 가는 도중, 전화를 준 그 집부터 먼저 들렀다.
문이 열리자 환한 미소가 번졌다.
엄마의 얼굴에서, 그리고 내 얼굴에도.
"드디어 우리 아이도 초등학생이네요."
그 한마디에 담긴 떨림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올해는 18 가구. 작년보다 몇 집이 줄었다.
더 오래 통장 일을 하신 분 말씀으론 몇 년 전에 비하면 반으로 줄었다고 한다.
어린이집 문 닫는다는 소식이 그냥 나온 게 아니구나.
'저출산'이라는 단어가 숫자가 아닌 현실로 다가왔다.
그래도 한 집 한 집 방문할 때마다 느껴지는 감동은 변함이 없었다.
아니, 어쩌면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유치원 다니던 언니를 따라 졸졸 쫓아다니던 꼬마가 이제 취학통지서를 받으러 나왔다.
순진하고 희망에 가득 찬 얼굴로 "저도 이제 학교 가요!"라며 깡충깡충 뛰던 모습.
"벌써 이렇게 컸네..." 손녀의 통지서를 받아 든 할머니는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봉투를 쓰다듬으셨다.
메리야스 차림으로 현관문을 연 한 아버지는 역시나 무뚝뚝했지만,
통지서를 받아 드는 손길만큼은 조심스러웠다.
남자들은 원래 표현이 서툴지만, 그 마음만큼은 누구보다 뜨거운 법이다.
"통장님, 초인종이 고장 나서요
다음엔 방문하시기 전에 전화 주세요." 미안해하며 말하는 학부모의 목소리에도 기쁨이 묻어났다.
급한 성격 탓에 몇 번씩 재방문을 했다.
한 집만 빼고 모두 전달 완료.
부재중이었던 마지막 한 집은 내일 아침 일찍 다시 가야겠다.
기쁜 소식은 빨리 전해야 제맛이니까.
돌아오는 길, 문득 생각했다.
이들은 아이가 학교에 가게 되어서 기쁜 걸까, 아니면 자신이 학부모가 되어서 기쁜 걸까?
아마도 둘 다일 것이다.
아이의 새로운 시작을 축하하는 마음, 그리고 그 시작을 함께하는 부모로서의 벅찬 마음.
취학통지서 한 장에는 그 모든 감정이 담겨 있었다.
통장 일이 늘 쉬운 건 아니다.
민원도 많고, 행정업무도 복잡하다.
하지만 이렇게 기쁜 소식을 전할 때만큼은 이 일이 참 보람차다는 생각이 든다.
하얀 봉투 하나가 한 가정에 가져다주는 설렘.
아이의 미래를 향한 첫걸음을 함께 응원하는 이웃의 마음.
그 모든 순간을 함께할 수 있어서, 나는 오늘도 행복한 통장이다.
18 가구. 작년보다는 적지만, 그래도 18개의 희망이,
18개의 새로운 시작이 우리 동네에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고 감사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