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답인 줄을 언제 알까
2월의 따뜻한 손길들을 만났다.
오피스텔 꼭대기 층.
천장이 높아서인지 더 추워 보였다.
관리비를 아끼기 위해 전기장판을 켜두고,
아버지는 침대에 누워 계신 시간이 많으셨다.
농사도 지으셨고, 손주도 함께 키우셨던 분.
하지만 손주들이 더 이상 돌봄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자 이사를 결심하셨단다.
아들 집 근처로.
대각선으로 아들 집이 보인다는 말씀.
그 말씀 속에 얼마나 많은 것이 담겨 있는지 생각해 봤다.
삼성을 다니는 아들과 며느리, 학원 다니는 손자.
병원도 잘 데려다주신다고 하시는 그 말씀이 왜 자꾸 마음을 먹먹하게 했을까.
손주들을 보면서 느꼈을 그 기분.
더 이상 필요 없어진다는 슬픔 말이다.
홀로 사는 줄 알았다.
하지만 딸 집도 대각선에 있었다.
창밖으로는 한림대 응급실이 보였다.
나이 들수록 병원을 가까이 두고 싶은 마음.
그것도 자식 집을 가까이 두고 싶은 마음.
이루 말할 수 없는 현실이 그곳에 있었다.
사고로 몸이 불편하신데도 손주의 태권도 학원 준비로 시간을 재고 계셨다.
약속시간 5분 늦으셨다.
걸음이 많이 느려지셨을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가 벗어놓은 신발까지 다시 정리하실 정도로 깔끔한 분이셨다.
예전에 도시락을 배달하러 갔을 때 만난 분이었다.
그때는 외로워 보여서 정말 다시 찾아가고 싶었다.
말동무가 필요한 눈빛이었거든. 이번엔 그 기회가 왔다.
유튜브로 뜨개질을 배우신 할머니.
손으로 뜨신 것들을 교회에서도 팔았단다.
요즘은 사는 분이 없다고 하셨지만,
젊었을 때의 고생
다른 지역에서 받지 못했던 복지혜택에 대한 불평들
그것들을 쏟아내실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했던 것 같았다.
박카스 한 병을 내주시고, 직접 뜨신 수세미까지 챙겨주시던 그 손길.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 고마워하시는 어르신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자식과 함께 살 때 더 잘해줘야겠다는 마음.
그들이 필요한 건 물건이 아니라 누군가 곁에 있다는 느낌,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예비 고1인 아들은 아직도 여행 준비로 여름옷을 챙기고 있었다.
공부는 뒷전이고 놀러 갈 생각만 가득
여행 날짜도 남았는데.
도서관에 태워달라고 한다.
자전거를 타고 가라며 소리쳤다.
30분이 채 되지 않아 전화가 울렸다.
"엄마, 필통 있어?"
여행옷을 쌓아둔 곳에 있던 필통.
가져다 달라는 말에 나는 "그냥 편의점에서 볼펜 하나 사"라고 말했다.
같이 있을 때 잘해주자던 그 마음이 고작 한 시간도 못 버텼다.
딸들은 방학이라 놀러 다니기 바쁘다.
서울 구경도 재미있다고 한다.
함께 있을 시간이 많은데도 각자 놀기 바쁘다.
젊으니까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지금부터라도 함께할 시간이 점점 줄어들 거라는 걸.
나이가 들면서 아이들은 더 이상 엄마를 찾지 않을 거라는 걸.
그렇게 되면 어떨까.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두려워질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이들과 함께할 때 귀찮던 그것들이 그리워질 거다.
필통을 가져다 달라던 말도, 도서관에 태워달라던 말도, 함께 있는 것 자체가 당연하던 그 시간들이.
오늘 만난 어르신들이 자꾸만 떠올랐다.
창밖으로 아들 집이 보인다는 그 말씀.
손주의 태권도 학원 시간을 재고 계신 모습.
직접 뜨신 수세미를 챙겨주시면서 이야기를 들어달라는 눈빛.
그것들이 모두 무엇을 말해주는가. 지금 함께 있는 것의 소중함이다.
나는 그걸 놓치고 있었다.
아이들이 귀찮게 할 때가 사실은 행복한 거 아닐까.
함께 있다는 증거니까.
필요로 한다는 증거니까.
그 단순한 것을 내가 언제쯤 깨달을 수 있을까.
아이들이 더 이상 돌아오지 않을 때쯤이면 너무 늦을 텐데.
봉사를 다니며 어르신들을 뵐 때마다 생각한다.
저분들이 우리에게 정말 주고 싶은 것이 뭘까.
물건도 아니고, 돈도 아니고, 결국은 이 마음이 아닐까.
지금 함께 있는 순간들을 소중히 하라는 마음 말이다.
나이 듦의 외로움.
그것은 거저 찾아오지 않는다.
그것은 지금 외면한 것들이 만드는 빚이다.
매번 귀찮다고 외면했던 그 순간들의 누적이다.
30분도 못 버텼던 나를 본다.
필통 하나 가져다 달라는 아들의 목소리에 "편의점에서 사"라고 했던 나를 본다.
그리고 어디선가 웃음이 나온다. 슬픈 웃음이다. 안타까운 웃음이다.
아이들은 아직 모를 것이다.
엄마가 얼마나 빨리 옆에서 떠날 것인지.
하지만 나는 안다.
봉사를 통해 만난 어르신들을 통해.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날 때쯤이면, 그 필통 하나가 얼마나 소중했을지.
함께 가던 도서관이 얼마나 그리울지.
그냥 옆에 있던 것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했는지.
그래서 나는 오늘부터라도 달라지고 싶다. 필통 가져가 줄 엄마가 되고 싶다. 도서관 태워다 줄 엄마가 되고 싶다. 함께 있는 시간을 당연하지 않게 여기는 엄마가 되고 싶다.
왜냐하면 봉사를 통해 배웠으니까. 지금 귀찮은 것들이 사라진 후에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그리고 그것들이 얼마나 소중한 선물이었는지를.
가까운 것이 얼마나 멀어질 수 있는지,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어르신들의 외로움이 내게 가르쳐 준 것이다. 너무 늦기 전에. 아직 돌아올 수 있을 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