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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운 Mar 05. 2022

3일동안 주인공의 필살도술 작명을 가지고 고심하다!

마이 싸이월드 페이퍼 : 16화

페이퍼 작성 : 2009년 12월 17일                                          시간적 배경 : 2009년 9월 내내


          

  지난 9월 한 달 동안 나는 생애 최초로 판타지소설에 도전했다. 어느 날, 모 공모전 사이트에서 ‘제4회 디지털작가상’이라는 이름의 공모전 공고를 보게 되었다. 판타지를 비롯하여 멜로, 무협, 추리 등 대중성을 갖춘 작품들을 접수받아 이들 중에서 괜찮은 작품을 골라 시상한다는 내용이었다. 장편소설도 이제 겨우 두 편을 집필했을 뿐이고 판타지, 멜로, 무협, 추리 등 그 어떤 장르도 집필해 본 적이 없었기에 무심히 넘겨버릴 수 있는 정보였다. 그런데 9월의 첫째 날, 이제는 나의 작업실이 되어버린 중구종합사회복지관 10층 컴퓨터실에서 이를 보았을 때는 그렇지 못했다.


  ‘수상 가능성을 떠나 그냥 한 번 도전해 볼까?’


  당시 나는 A4 100장 분량의 사극 시나리오를 써둔 게 있었다. 그걸 역사판타지로 바꾸면 이 공모전에 충분히 도전할 수 있겠다는 계산이 불현 듯 들었다. 공모전 마감까지는 한 달이 채 남지 않았지만 난 서둘러 시나리오를 장편소설로 각색하는 작업에 돌입했다.

  판타지소설이라 하면 대개 중세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대개 왕자와 공주, 요정과 난쟁이, 마녀나 마법사가 나오며 용사가 강력한 마법을 쓰는 몬스터나 악당들을 물리치고 세계의 평화를 가져온다는 플롯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내가 9월에 집필한 판타지 소설은 앞서 말했듯이 사극 시나리오를 각색했기에 배경은 당연히 한국이다. 한국을 배경으로 한 판타지소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가능은 했다. 올 12월 말에 개봉 예정인 영화 <전우치>처럼 도술을 쓰는 도인이 등장하여 요괴를 물리치면 된다. 물론 내 작품은 요괴는 등장하지 않으나 등장인물들이 제각기 특색 있는 도술을 구사한다. 판타지소설에서 흔히 보던 마법이 도술로 바뀐 거라 생각하면 쉽다. 

  문제는 도술의 작명이었다. 조선시대가 배경이기에 당연히 도술 이름은 한자어로 구성되어야 했다. 예를 들어 판타지소설에서의 ‘파이어볼(Fire Ball)’과 유사한 도술 같은 경우 내 소설에서는 ‘화염구(火炎球)’로 바꾸었다. 이런 식으로 등장인물마다 특색 있는 도술을 고안하고는 거기에 이름을 붙였는데 엄연히 한자검정능력 2급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는 나로서도 한자어를 조합한 작명 작업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가장 압권은 주인공의 필살도술의 이름을 정할 때였다. 사명대사에게 전수받은 얼음 도술로 주술을 부리면 땅속에서 전신이 얼음으로 된 용이 솟구쳐 올라서는 적들을 향해 하얀 입김을 내뿜는다. 그럼 적들은 순식간에 얼어버린 다음 이내 산산조각으로 부서진다. 영어식으로 이름을 지으라 했다면 ‘아이스 스톰(Ice Storm)’ 정도가 적당했을 것이다. 


  ‘얼음 도술을 쓰니 당연히 얼음 빙(氷)자는 들어가는 이름을 지어야 하긴 하겠는데 대체 뭐라고 해야 하나?’


  조연이나 악당이 아닌 주인공이 구사하는 도술인데다 엄연히 필살기이기에 그럴 듯한 이름을 붙어주어야 하는데 딱히 생각나는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러한 고민을 삼일쯤 한 끝에 마침내 기막힌 게 하나 떠올랐다. 


  ‘전신이 얼음으로 된 용이 나오니 빙룡(氷龍)이라 이름 짓고 입으로 한기를 내뿜으니 뿜을 분(噴)에 한기(寒氣)를 조합하여 빙룡분한기!’


  그렇게 주인공의 필살 도술은 ‘빙룡분한기(氷龍噴寒氣)’로 결정되었다. 이 판타지 소설은 마감 직전에 겨우 탈고하여 간신히 공모전에 응모했다. 수상여부에 큰 미련을 두지 않아 완성도 면에서 그리 크게 상심하지는 않았지만 역시 보기 좋게 떨어졌다.  지금 이 작품은 ‘아이작가’라는 사이트에서 <통제사의 부하들>이라는 제목으로 검색하면 감상할 수 있다.           


* <통제사의 부하들>은 현재 '북팔' 사이트에 올라가 있다. 전자책으로 판매 중인 것으로도 알고 있다. 판권을 회수해 책으로 출간할 목표를 갖고 있다.


(에필로그1)     


  그러나 이 판타지소설에서 내가 가장 마음에 들어 하는 도술은 충청수사 권준이 구사하는 ‘적오대(赤烏隊)’이다. 주술을 부리면 검은 구름에서 붉은 까마귀 떼가 튀어나와서는 적들을 향해 부리를 쪼아대며 마구 공격을 가한다. 기타 등장인물들의 도술은 수많은 판타지소설이나 게임에서 보던 낯익은 것이라도 누가 말해도 할 말이 없지만 적어도 ‘적오대’만큼은 독창적이라고 자부하는 바이다.   



(에필로그2)     


  지금은 ‘아이작가’라는 사이트가 사라져서 볼 수 없고 대신 ‘네이버북스’나 ‘북팔’ 등과 같은 전자책 서비스 사이트에서 구매하거나 대여해서 감상할 수 있다. 2013년  ‘제6회 북팔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하며 이러한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내게 운명의 여신이 조금만 더 친절을 베풀었더라면 2009년 ‘제2회 조선일보 판타지문학상’의  수상작품이 될 수도 있었다. 최종심에까지 올랐건만 결국 그 해에는 수상작을 내지 않는다는 심사위원의 방침에 따라 안타깝게 고배를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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