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는지 늘 머릿속은 이런저런 생각들로 바쁘다. 태어나서 생각이라는 걸 할 때부터 그랬다. 생각이 많단다. 네? 제가요?
내가 생각이 많은 걸 생전 처음 보는 이들 중 간혹 알아맞추는 이들도 있었다. 소위 사주를 본다는 사람들...
한시도 쉬지 않고 이런저런 궁리를 한다. 내 머릿속에는 나와 또 나, 서로 대화를 주고받기도 한다. 겉으로 차분해 보이는 이미지라 살면서 문제는 없었지만 내 안에 일어나는 시끌시끌을 누가 빤히 지켜본다 하면 정신 사나워 죽겠다 할 거다.
어릴 때 기억은 잘 없다. 다들 그러한지는모르겠다. 드문드문 떠오르는 잔상 몇 개와 사진의 기억인지 내 기억인지 모를 이야기 몇 개들이 전부다. 6살 여름. 엄마 손 잡고 국민학교 부설 병설유치원에 조기입학을 했다. 당시에는 7살 반만 있어서 6살 입소는 불가했던 거 같은데 별~인맥으로 80년대 중반 무렵 6살 유치원 입학, 새 학기 시작도 아닌 느지막이 여름쯤인 걸로 기억한다.
눈치가 타고나길 빤했던 탓에 이쁨 받는 짓만 했을 테고 6살 반 친구는 기억에 하나 없고 다음 해 담임선생님을 7살에는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에 서럽게 울었던 기억은 어렴풋하다. 그러고는 곧 7살 새 담임 선생님도 엄청 따랐다.
유치원 일과가 끝난 오후 반 아이들 없이 혼자 남아 컵라면 스티로폼 바닥을 서로 맞대어 붙이고 팽팽하게 부직포를 붙여 작은북을 만드는 걸 도왔던 기억. 왜 혼자 남았던 건지 하원 후 돌아간 집에 아무도 없어 다시 학교로 돌아온 건지는 모르겠다. 그때 얻어먹은 컵라면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었다.
7살 우리 집은 유치원에서 꽤 먼 거리로 이사를 갔다.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내 고향은 모습이 거의 비슷하다. 당시 소도시치고는 꽤 돈벌이가 좋은 어촌이라 다니던 거리가 시골스럽진 않았다.
조금 높은 언덕에 있는 학교 정문에서 길 따라 쭉 내려오면 여러 가게들을 지나고 극장을 지나 유일하게 있었던 이문당서점을 지나쳐 시내 중심을 지나는 2차선 도로를 건너 시장 쪽으로 들어서면 버스정류장이다. 7살 걸음으로는 가깝지 않았다. 버스를 타고 4~5 정거장을 지나 정류장에 내리고 다시 북시장 쪽으로 걸어서 집으로 갔다.
거의 1년은 버스를 타고 다녔을 텐데. 그다음 기억은 별로 없다. 버스비로 50원을 냈고 하루는
화장실을 다녀오는 걸 깜박했는지 버스 뒷자리에 앉았던 여자아이가 참다 참다 그만 실수를
해버렸고 어찌할 줄 몰라 허둥지둥 되는 동안 무뚝뚝한 지역 사람들 특성이었는지 버스 속 어른 누구 한 사람 도움을 주지도 괜찮냐고 물어봐주지도
않았다. 덩그러니 젖은 채 도착 정류장에 내려져 멍하니 서 있는 나. 아마도 민망해할 아이를 모른 척 해준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추적추적 걸어 아무도 없는 집으로 돌아온 나의 7살 아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꽤 오랜 시간 혼자 그렇게 놀았나 보다, 걷고 또 걷고
혼자 시간을 보내며 생각을 했다. 외로울 나를 위해 스스로 말을 걸고 대답하고... 그렇게 나는 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