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탉 로건 이야기 2

호주 깡촌에서 싱글맘 생존기

by 블루

그에게 찢길 순간을 상상하며 나는 혹시 곧 벌어질 그와 나의 전투로 인해 알들이 깨질 것을 걱정했었다. 여전히 그는 나를 노려보고 있었지만 움직임은 없었다. 나도 그처럼 그를 노려보며 천천히 뒷걸음질을 쳤다. 나의 움직임이 감지되자 그는 그의 독수리 날개 같은 날개를 갑자기 펼쳐 내게로 날아올랐다. 펼친 그의 날개는 느낌상으로는 벌린 내 팔의 길이 보다도 더 길 것 같았다. 그리고 재빠르게 뒤로 돌아 빠르게 뛰려 했던 나의 계획은 무산됐고 그는 기어이 내 머리를 타고 올랐다. 그의 횟대질에 나의 볼은 누군가에게 따귀를 연속으로 맞는 것처럼 아팠고 내 목덜미를 움켜쥔 그의 발톱으로 통증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부리로 머리를 쪼아 대는 것인지 아니면 날개로 얻어맞는 것인지 머리도 얼얼했고 무엇 보다도 나의 정신세계는 더 얼었었다.. 사실 그때는 아픔보다는 공포 그 자체가 문제였다.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으면 꼼짝없이 그에게 잡힌 쥐가 될 것 같아 팔을 휘저으며 달리려 했으나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겨우 비틀거리며 잰걸음만 놓는 것뿐이었다. 그는 내게서 떨어지지 않으려 했고 내가 막사를 벗어나 공장 쪽으로 길을 잡으니 그제야 겨우 내게서 떨어져 나갔다.


곧장 사무실로 가서 이런 형편없는 일 따위는 할 수 없다라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내 구역의 바운더리 라인에서 결코 벗어나지 않았다. 그에게서 긁힌 내 얼굴과 목덜미는 여기저기가 쓰라리기 시작했고 만져진 볼에서는 피가 묻어 나왔다. 잠시 숨을 고르고자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니 다리에 힘이 풀린 것이었다. 아주 잠깐 울려고도 했던 것 같다. 공장에서 가깝게 위치했던 구역이라서 그랬는지 매니저가 카트를 타고 달려왔다. 내 몰골을 본 매니저는 그만두고 싶으면 지금 그만둬도 된다며 나의 상처를 살폈다. 그가 내 목덜미에서 휴지로 닦아낸 피를 보고 나의 상처가 의외로 깊었음을 알게 되었다. 지금도 그 상처가 돌팔이 의사의 수술솜씨처럼 내 뒷목에 남아있다. 그래서 나는 머리를 길게 기른다. 로건은 매해 각종 대회에서 상을 휩쓰는 우수한 종자이고 그는 이 농장과 농장주의 프라이드라고 매니저는 말했다. 그리고 다른 구역에는 두세 마리의 수탉이 있는데 로건의 구역엔 다른 수탉들은 살아남지 못한다라 말을 전한다. 어제 해줘야 했을 말들이다. 그러다 차라리 잘 된 건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어제 듣고도 내가 일을 하러 왔을까란 생각이 들자 확신할 수가 없었다.


로건의 이력을 듣고 있으니 이상하게 오기가 생겼다. 곧이어 오전 수확량을 수거하기 위한 다른 카트가 도착했고 나는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그들에게 잠시만 기다리라 했다. 알들을 가져다주겠다고.. 그들은 잠시 말리는 척했지만 이내 지켜보기로 한 모양이었다. 어차피 지금 당장 그곳에서 알을 가지고 나올 수 있는 사람이 딱히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용기도 책임감도 아니었다. 나의 분노였고 오기였다. 고통을 이기는 건 분노라는 말을 그래서 난 이해한다. 내가 막사에 가까워질수록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로건의 움직임도 갑자기 빨라졌다. 로건이 막사로 들어가는 나를 막기 전에 나는 막사로 들어가야 했다. 나는 막사에 들어서자마자 좀 전에 눈여겨보았던 문옆에 세워놓은 기다란 플라스틱 빗자루를 손에 넣기 위함이었다. 로건과 내가 거의 같은 순간에 막사에 들어섰고 나는 간 발의 차이로 그 긴 빗자루를 손에 쥐었다.


나에게 청룡언월도 생긴 것이다. 내게 청룡언월도가 생기자 나는 두려움 따윈 개나 줘버린 관우장처럼 그걸 로건에게 휘둘렀다. 몇 번의 나의 휘두름에 로건은 잠시 당황한 듯 뒤로 몇 걸음 겅중겅중 뛰어 물러선 듯했지만 금세 다시 나를 향해 돌진해 날아올랐다. 나는 나의 무기로 정확히 그의 몸통을 노리려 했지만 그의 거대한 몸은 생각보다 빨랐고 전투에서는 나보다 노련했다. 몇 번이나 날카로운 칼을 박아 놓은 것 같은 그의 커다랗고 진한 오렌지색 발이 내 눈앞까지 왔었으며 나는 흠칫 물러나야만 했다. 그는 그의 큰 날개를 퍼득여 내 눈앞에서 회를 치며 아까와는 다르게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그의 언어로 나를 위협하며 꺼윽꺼윽 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독이 오른 나도 지지 않으려 나의 언어로 그에게 고함을 치고 있었다.

서로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를 쓰며, 서로 한 발짝도 물러 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나는 두려움이 꿈틀거릴 때마다 양념통닭을 떠 올렸다. 그래.. 네가 그래봤자 닭이다라고 이를 악 물고 나의 무기를 계속해서 휘둘렀다. 점점 나의 팔에서 힘이 떨어질 즈음 갑자기 로건이 지쳤던지 아님 나와의 싸움에 흥미를 잃었던 것인지 투루륵 거리며 뒷걸음질을 치다가 그대로 뒤 돌아 막사를 나갔다.


그 하루동안 나는 나의 무기를 질질 끌고 다니며 혹시나 다시 있을 적의 공격을 대비해 사주경계에 임했다. 드디어 오후에 일을 끝나고 농장 사무실에 내려왔을 때 나는 처음으로 나와 있던 농장주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잠시 원래는 흰색이었지만 지금은 마치 군인의 위장복처럼 여러 가지 알록달록한 얼룩으로 더러워진 작업복을 입고 있는 나를 보고는 아주 빨리 그의 눈빛이 흔들렸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후 나의 상처를 꼼꼼히 살피며 치료비를 주겠다 했고 원하면 내일부터 일을 나오지 않아도 된다 했다. 나는 치료비는 괜찮다 했고 허락해 준다면 계속해서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짐짓 엄한 표정의 농장주 얼굴이 밝게 웃으며 얼마든지...라고 말했다.


그리고 매니저에게서 우리의 전투 소식을 전해 들은 것인지 앞으로는 무기는 쓰지 말 것이며 ,되도록이면 다른 암탉들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기 위해 큰 소리를 내지 말아 달라고 내게 부탁하였다. 그 말인즉슨 전장에 무기 없이 나가란 말이었다. 알았다 했다.


집에 돌아와 나는 아이들에게 나의 전리품( 로건의 검은 털) 을 나눠주며 무용담을 들려주니 엄마는 용감하다 라며 아이들은 좋아라 했다. 나는 곧 인터넷 검색으로 수탉과 친해지는 법을 검색했지만 그런 것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썸남에게 어필하는 법이나 짝사랑하는 사람에게 잘 보이는 방법 따윈 얼마든지 있었지만 내게 필요한 건 그런 것이 아니었다. 샤워를 하며 거울에 비친 내 몰골은 참으로 처참했다. 전장에서 승리 한 장수에게도 상처는 있는 법. 본능적으로 얼굴은 피하려 해서인지 얼굴엔 별 큰 상처는 없었지만 목과 가슴 그리고 등엔 크고 작게 패인 상처들로 뜨끔거렸다. 상처에 약을 뿌리니 신음소리가 절로 나서 세면대를 껴안고 용트림을 해대야만 했다. 자려고 누우니 내일 일이 까마득했다. 습관처럼 켜놓은 빅뱅의 fantastic baby 뮤직 비디오를 보고 있자니 그 청년들의 눈빛이 갖고 싶었다. 로건만치 강열한 그들의 눈빛. 나는 카메라를 켜고 그들의 눈빛을 연습해 보았다. 아까 처음에 로건과의 눈싸움에서 내가 GD나 태양의 눈빛으로 싸웠다면 어땠을까 라는 우스운 생각도 해 보았다.


다음날 나는 모든 걸 포기한 사람처럼 느리게 카트에서 내려 내 구역 입구에서 머뭇거렸다. 생각보다 더 두려웠다. 그리고 어제 로건에게서 받은 목 뒤의 상처가 움찔거리며 움직일 때마다 아프기 시작하였다. 그냥 돌아 갈까 잠시, 진심으로 망설였다.

무기를 뺏긴 장수는 힘이 없다. 그래서 나는 뭐라도 했어야 했다. 어젯밤에 보던 GD의 강한 눈빛이 떠 올랐다. 나는 Fantastic baby를 틀었고, 전화기 볼륨을 있는 대로 키웠다. 어제 농장주는 분명 소리치지 말라고 했지 음악을 듣지 말라고는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내 눈에 힘을 주어 GD의 눈을 만들려 하였다. 그건 로건에게 보이고 싶어서가 아닌 나에게 스스로 거는 최면 같은 의식이었다.


나는 막사 문을 열며 얼른 빗자루 옆에 가서 서 있었다. 절대 휘두르려 한 게 아니고 그냥 닭들이 빠져나갈 때까지 빗자루 옆에 빅뱅 노래를 크게 틀어 놓고 기다린 것뿐이었다. 로건이 마지막으로 흐느적거리며 걸어 나왔다. 로건의 얼굴도 푸석한 것이 저도 밤새 고민 꽤나 한 얼굴이었다. 그와 눈이 마주친 나는 빗자루 옆에 서서 밤새 연습했던 그 눈빛으로 그를 쏘아보았다. 그러는 사이에도 내 전화기에서는 다음 곡으로 뱅뱅뱅이 최고의 음량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는 잠시 나를 보는 듯하더니 계속해서 곧장 밖으로 걸어 나갔다. 처음 듣던 빅뱅의 노래 때문인 건지 아님 피곤했던 건지 그는 그렇게 나를 지나쳐갔다.


나는 로건을 더 이상 무서워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동안 앞서 일했던 사람들이 로건 때문에 놓쳤던 구역까지 더듬을 수 있었고, 다행히 나의 구역에서의 계란 수확량은 예전보다도 좋아졌다는 소리도 듣게 되었다. 나는 늘 일을 할 때면 언제나 빅뱅의 노래를 틀어놓았고 로건은 철저히 그런 나를 무시하였고 나도 그런 로건을 무시하였다. 우리는 그렇게 아주 오랫동안 빅뱅의 노래를 같이 들었다.


이 이야기는 누군가에게는 코웃음 칠만큼 시시한 얘기일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생사가 걸렸던 중요한 전투였고 나의 삶에 대해 얘기할 때 가장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큰 부분이 되었다.


더하는 이야기


후에 농장주는 공장 안의 쉬운 포지션으로 나를 옮겨주려 했으나 아무도 로건구역으로 오지 않으려 해서 ,나와 로건은 그렇게 같이 오래 지낼 수밖에 없었다. 그와 만나고 6년째가 되던 어느 날 아침 나는 로건이 한 자리에서 오랫동안 잠들어 있는 걸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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