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깡촌에서 싱글맘 생존기
D. D라는 이름을 가진 여인이 있다. 150여 년 전 그녀의 선조가 아일랜드에서 호주로 건너와서 정착을 했고, 그녀의 초대선조는 지방의 꽤나 높은 정부 관료였고, 50여 년 전까지만 해도 그녀의 가족과 일가친척들은 이 근방의 거의 모든 땅을 소유했었다고 한다. 5 에이커가 넘는 크기의 대지위 한가운데 아름답게 지어진 그녀의 저택은 100년은 훌쩍 넘긴 것 같은 그야말로 입이 딱 벌어질 정도이다.
단층이며, 외벽은 커다란 베이지 색의 돌들을 일정한 크기로 세공하여 쌓아 올린 돌들로 지어졌고, 모든 문들은 사람키의 두 배 이상으로 높았으며, 그에 맞춘 벽의 높이도 상당했다. 모든 창문들 또한 육각형의 베란다 구조를 갖춘 발코니와 더불어 디자인이 되어, 거대한 창문을 열고 나가 발코니에 서면, 로미오를 기다리는 줄리엣이 된듯한 기분이 쉽게 들었다. 다소 높은 지형에 위치하고 있는 이 저택은 창문을 열고 내다보면 그 지역이 모두 내려다 보일 정도로 완벽한 전망 또한 갖추고 있었다. 이 집에 처음 들어온 사람들은 자칫 길을 잃을 정도로 규모가 컸으며 구조 또한 내겐 익숙지 않아, 벽에 이정표를 붙여 놓아야 하지 않겠냐며 나는 그녀에게 농담을 하였다. 그러자 D는 그녀의 온화하고도 귀품 있는 미소와 차분한 목소리로
" 나와 함께라면 너는 길을 잃지 않아..
내가 계속해서 너와 함께 있어줄게....."
라는 말로 나를 웃게 만들었지만, 그녀가 그 말을 할 때는 나는 이상하게도 거부감이 들었었다.
그런 그녀의 집에서 나의 눈을 특별히 끌었던 게 있었는데 그것은 주방벽 높은 곳에 붙어있던 8개의 종이었다. 그 종들은 남자들 주먹만 했으며 나란히 두툼한 나무판 위에 걸려 있었다. 비록 지금은 최신식 주방으로 고쳐져 있던 주방이지만, 주방을 개선하면서도 그녀는 그 종들을 옛날 나무판에 그대로, 그 자리에 박아 놓았다 한다. 벽이 높은 이유로 고개를 바짝 쳐들고 그 종들을 보고 있으니 종마다 줄이 연결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종에 연결된 그 줄들은 각각 1m 정도였고, 그 줄들은 한데 모아 묶여 있었다. 용도를 궁금해하던 나에게 그녀는 설명해 주었다.
그 종들은 옛날 집안에서 일하던 하인들을 각방의 주인들이 부를 때 쓰던 종이라 하였다. 그러고 보니 침실마다 침대머리맡에 길게 천장에서 늘어져있던 수술이 달린 줄들을 본 것이 떠 올랐다. 나이가 60대 후반이었던 그녀도 아주 어릴 적엔 그 종을 이용해 일하던 사람들을 부르곤 했다라던 그녀의 말에 나는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하인들은 순번을 정해 주인 가족이 모두 잠들 때까지 그 주방에서 기다렸었어야만 했다고 그녀는 덧 붙였다. 나의 놀라하던 모습을 본 그녀는 재미있어하며 설명을 계속 이어갔다. 그녀는, 내가 그녀와 예전 그녀의 선조들이 얼마만큼의 부를 누리며 살았는지, 그리고 그들의 그런 사치와 부를 부러워하며 놀라는 것이라 그녀는 해석을 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내가 놀랐던 이유는 그게 아니었다.
그녀는 놀라 말이 없어진 나를 이제는 밖으로 데려갔다. 지금은 각종 기계나 장비들을 넣어두던 창고로 대신하는 그 건물들이 예전 하인들이 기거하던 곳이라 그녀는 설명을 해줬다. 그리고 아직도 그 건물 옆에는 전에는 재래식이었지만 지금은 수세식 변기만 올려놓은 예전 하인들이 쓰던 좁은 화장실이 있었다. 그런 후 그녀는 이것저것 마구 심어 되도록이면 자연과 비슷한 형태를 띄운 것처럼 만든 호주식 정원을 가로질러 나를 데려갔다. 그곳은 놀랍게도 작은 예배당이 있었다. 개인집에 예배당이 있었던 것이다. 앙증맞은 크기의 예배당 건물로 들어가니 예전 그대로의 모습을 오롯이 간직한 실내를 볼 수 있었다. 귀엽다 싶을 정도의 아주 작은 강단이 앞에 있었고 골동품에 가까울 것 같은 나무 의자들이 1인용 그리고 2인용의 형태를 갖추어 줄 맞추어 놓여있었다. 그리고 의자들이 놓인 뒤편에는 나무로 만들어진 파티션이 쳐져 있었는데 그 파티션은 사람의 가슴정도의 높이로 쳐져 있어서, 위쪽은 뻥 뚫린 구조로 앞쪽 의자가 놓인 공간과 강단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곳엔 의자가 없었으며, 성인 두 사람이 앞뒤로 서면 꽉 들어찰 만큼의 좁은 폭이었고, 서로 좁게 붙어 서면 열명 까지도 서 있을 수 있는 크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온화한 미소와 함께 그 좁은 공간은 일하던 하인들이 서서 예배를 보던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그녀의 요지는 그 집안에서는 누구든지 예배에 참석했었어야 했었다는, 믿음의 집안이었음이 중점이 된 설명이었다. 그녀도 어릴 적엔 이곳에서 그녀의 조부모와 같이 예배를 봤었다며 회상에 젖기도 하였다. 왜 하인들은 의자에 앉지 못하고 줄곳 서서 예배를 보게 하였는지 묻는 나의 질문에, 그녀의 온화하던 얼굴에서 미소가 거둬졌었다.
그날 나의 방문은 그녀의 요청에 의한 것이었으며, 그녀의 남편이 1년 전 사망을 하자, 집안을 대신 돌봐줄 사람으로 나를 생각했다 그녀는 말을 했었다. 언젠가 내가 다른 목장에서 일을 하면서 들었던 음악 때문이라 그녀는 말을 하기도 했었다. 그 곡은 죠지 윈스턴의 앨범 December였고, 종일 그 곡을 크게 틀어 놓고 축사를 치우던 나를 그녀는 지인 목장에 들렸다가 우연히 축사를 지나치며 음악에 끌려 내게 다가왔고, 그녀는 내게 그 음악 제목이 뭐냐고 물었던 게 그녀와 나의 처음 대화였다. 나는 그 음악을 처음 듣는다던 그녀에게 놀랐었고, 소의 분뇨를 청소하며 아름다운 피아노 소품을 듣는 동양 여자에게 그녀는 놀란 모양이었다. 그런 내게 그녀는 어려운 목장 일보다는 자신의 집에서 일을 하며, 자신과 친구가 되어줄 것을 청한 것이었다.
호주의 나이가 많은 노인들에게서 때때로 대놓고 인종차별을 행하는 사람들을 볼 수가 있다. 또 일부는 점잖고 교육을 받은 지성인들로서 동양인에게 깍듯한 예를 갖춘 이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보여주는 예는 그들이 얼마나 지성인인지를 스스로 표현하는, 그들 스스로의 자존심이지 결코 상대방을 진심으로 인정해서 보여주는 행동은 아니다. 만일 그들을 조금이라도 화나게 한다면 그들은 대뜸 " how dare.." 감히...!!라는 말로 화를 낸다는 것을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집안 투어를 마친 나는 D에게 정중히 거절을 했다. 비록 지금은 시대가 변해 그녀도 내게 "친구"라는 좋은 단어를 쓰며 다가오기는 했지만, 그녀는 아직도 하인들을 부리던 영광의 맛을 잊지 못하는 여인임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하인들이 있을 당시 썼던 그 잔재들을 여러 번의 집안 수리를 거쳤으면서도 그녀는 여전히 고스란히 그리고 자랑스럽게 그것들을 유지하고 있었다. 비록 지금은 종에 이어진 그 줄들을 1m 정도만 남기고 잘라 놓았지만, 내가 느꼈던건 언제든 형편이 되면 그 줄들을 다시 연결해 누군가를 부를수 있게 기다리는것으로 비춰졌기 때문이다. 불과 50년도 채 되지 않은 그들의 역사인 것이다. 이유를 묻던 그녀에게
"나는 편하게 앉아서 예배를 보고 싶을 뿐이야 "
라며 답해 주었다..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긴듯한 얼굴이었지만 나는 그녀의 눈빛을 읽을 수 있었다.
" How dare...."
분뇨를 치우던 동양여자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자리를 주겠다는데, 그리고 여태껏 아름다운 그녀의 유산을 열심히 데리고 다니며, 보여주고 설명을 해주었는데 , 겨우 그런 이유로 주제넘게 거절을 한 내가 괘씸한 거였다. 어쩌면 내가 예민했던 것일 수도 있다. 그저 호주의 옛날 역사다 라며 생각하고 넘기면 되었을 것을. 나는 개념 있는 척하며 그 집에서 그녀와 같이 있는다는 것이 계속해서 내 마음을 힘들게 할것 같다는 느낌으로 거절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면서 예전에 읽었던 소설 "Help"를 떠 올렸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그 소설에서 하녀가 주인의 화장실을 썼다란 이유로 해고가 된 후, 그 하녀가 아쉬웠던 주인여자는 집 밖에 그녀의 화장실을 따로 만들어 주고 " 이젠 공평하지?" (Fair now?)
라고 말을 했다. 언젠가 그 책을 주제로 나이 많은 다른 백인 여인과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 부분에 대한 의견을 묻던 내게 그 부인은 지극히 정상이라 하였다. 주인여자의 공평한 처사에 동감한다는 말을 해서 나는 놀란적이 있고, 그럼 어떤 것이 "공평" 한 것이냐 묻던 내게, 나는 집안의 화장실을 같이 쓰는 게 공평한 것이라고 해서 그녀를 당황시킨 적이 있었다.
예전 그 백인 부인과 D는 너무나 정상적인 백인일 뿐이다. 하지만 나도 역시 지극히 정상적인 동양인이다. 다만 아직은 그들이 말하는 친절한 평등과, 나의 평등에는 참으로 거대한 보이지 않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같은 선상, 같은 위치가 아닌 다른 높이, 다른 위치에서 이루어지는 평등을 그들은 친절하게 웃으며 말을 한다.
" Fai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