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감으로는 부족해
다른 사람들도 그럴까?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 그리고 예감 등을 일컬어 우리는 육감이라 부른다. 하지만 나처럼 외국생활을 오래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여섯 가지 감각 이외에 하나가 더 붙는다. 그것은 눈치다. 적절한 영어표현으로는 (Read a room)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
처음 외국생활을 하면서 그 나라의 문화와 언어에 익숙지 못해 시작된 자연스러운 습관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민초기에 현지인과 대화를 할 때면 전체적인 문장을 듣고 이해하는 정확한 해석보다는 그들이 말하는 문장 속에서 내가 아는 단어를 잡아내고, 또 그 사람의 얼굴 표정이나 몸짓으로 지금 이 사람이 말하려 하는 의도를 파악하곤 하였다. 지금도 물론 이민 초창기와 별반 다르지 않다. 왜냐하면 이들에게도 같은 문장이지만 쓰이는 단어나, 얼굴표정으로도 그 뜻이 전혀 달리 해석되기도 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자칫 잘못하면 누군가가 비꼬는 말을 칭찬이라 생각하고 땡큐 라고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래 저래, 이렇게 저렇게 살아오다 보니 자연스럽게 " 눈치"가 늘었다. 아니 "는" 정도가 아니라 매우 발달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 눈치"는 공기의 흐름도 읽어 낼 줄 알게 되었고, 상대방의 호흡을 통해 그 사람의 마음도 읽어 낼 수도 있으며, 눈빛과 몸짓에서도 적용된다. 때로는 이 " 눈치"가 발달됨이 불편한 경우도 있다.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서, 아이들은 아이들 아빠의 사인이 없이도 여권을 만들 수 있게 되자, 비로소 우리는 몇 십 년 만에 한국땅을 밟을 수 있었다. 참으로 길고도 긴 시간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이 반가운 마음이야 뭐라고 설명할 수 없었으나, 한편으로는 가족들의 마음이 보여 불편했다. 30여 년 동안 키운 그 "눈치 보기 능력"은 한국에서도 여지없이 발휘가 되었고, 가족들 마저도 어색하게 만들곤 하였다. 그 눈치로 하지 말아도 될 "미안"을 입에 달고 살았고, 그냥 누려야 할 엄마의 품도 시간을 쟀다. 아빠의 안색을 살폈고, 가족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나의 사전으로 해석되었다. 불편했다.
그러다 든 생각은
나만 이러는 게 아닐 거야...
라며 스스로를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한국방문을 놓고 가족들의 눈치를 보고 있다. 지금 가도 될까? 조금 더 기다렸다 가야 하나?
그냥 날짜를 정하고 "나 가요 "하면 된다는 걸 알면서도 도통 이 쓸데없는 눈치보기는 갈수록 더 느는 것 같다.
당신만 그러는게 아닙니다 라는 사람들의 답을 듣고 싶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