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깡촌에서 싱글맘 생존기
"Short order long black" 내가 처음 일했던 카페의 커피머신 앞에 크게 쓰여있던 문구이다. 커피를 주문할 때는 짧게 주문하고, 주문한 롱블랙을 오래오래 음미하라는 카페 주인의 유머가 깃든 문구가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Short order long black이라는 문장이 무색하리만치 호주는 스몰 토크의 강국이다.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일을 한다는 것은 들판 땡볕에서 녹음과 씨름하는 것보다, 무자비하게 큰 동물들과 힘겨루기를 하는 것보다는 훨씬 여유 있고 쉬운 일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나는 그 스몰토크를 가장한 빅토크에 두 손 두 발을 다 들게 되었다.
집에서 다소 거리가 있는 곳엔 100년 전통을 자랑하는 수제파이집이 있었다. 나는 우연히 그 카페에서 주말에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한다는 얘기를 듣고 달려갔다. 그곳에선 손님들에게 주문도 받고 서빙도 하며, 필요하면 주방일도 해야 했으며, 주된 임무로는 커피를 만들 수 있는 바리스타를 필요로 한다 하였다. 한마디로 All around가 되는 사람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나의 특유의 오기가 또 발동하였다. 내가 모든 일을 다 하겠다. 하지만 커피 만드는 기술을 가르쳐 달라 하였고, 내가 커피를 제대로 만들 수 있을 때까지는 페이를 받지 않겠다며 간곡히 매 달렸다. 기술을 배워야만 앞날이 유리할 것이라는 나의 생각 때문이었다.
맘씨 좋은 카페 주인은 나의 열정을 높이 샀고, 나는 주말마다 한 시간씩 일찍 카페에 나가 커피 만드는 기술을 배웠다. 나의 커피 선생님은 카페 주인의 아들이자 학교 선생님 이기도 한 남자였다. 그가 주말마다 카페에 나와 그의 아버지를 도왔었는데, 이젠 학교선생님 일만으로도 너무 바빠 더 이상 카페를 도울 수 없게 된 것이라 하였다. 나의 커피 선생님은 유명한 커피 회사가 운영하는 커피 자격증 반에서 정식으로 커피를 공부했다고 한다. 그 덕분에 나도 그에게서 많은 것을 배울 수가 있었다. 내가 일하던 파이집에서는 별 쓸모도 없던 로스팅까지 배울 수 있었다. 그 선생님은 열정을 가지고 그의 학교 아이들을 가르치듯 나를 가르쳤고, 그 덕에 나는 커피를 배운 지 한 달도 되기 전에 손님들에게 커피를 만들어 줄 수 있는 경지까지 오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에지 있게 커피 머신 앞에서 커피를 만들거란 나의 상상은, 말 그대로 상상일 뿐이었다. 내가 일을 하던 주말엔 아침 7시부터 사람들이 밀려 들어왔고, 지역 특성상 주로 아침잠이 없으신 동네 어르신들이 주 고객이었다. 그분들은 문을 열자마자 커피머신 앞에 줄을 만드셨고, 원하시는 파이와 함께 커피를 주문하셨다. 하지만 같이 주문한 파이는 이미 나와서 식어 가는데도 그분들의 스몰토크는 끊길 줄을 몰랐다. 자신들의 젊었을 때의 전쟁 참전 담을 들어야 했고, 윗마을에 사는 사촌집에 간 밤 강아지가 몇 마리 태어났는지를 들어야 했으며, 그 어미 강아지가 어떤 연유로 그 사촌집에서 살게 되었는지까지 들어야 했다. 더 나아가서는 그 사촌이 누구와 어떤 사연으로 연애를 했으며, 아이들은 몇 명이나 두었는지, 그리고 그 아이들이 지금 각자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까지 들어 드려야 했다. 나에게는 커피 만드는 기술은 생겼지만 그 대화를 끊어주는 기술은 없었던 것이다. 나는 어쭙잖은 기술로 커피를 만들며 , 그분들의 말씀 중간중간 호응도 해 드려야 했다. 더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뒤에서 각자의 순서를 기다리시던 다른 어르신들도 불평은커녕, 자신의 아는 이야기가 나오기라도 할라치면 끼어들어서 얘기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이었다. 생각 같아선 "다 이쪽 한 테이블에 모이셔서 대화를 나누어 보도록 하세요" 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또 앉으실 때는 각자의 테이블을 찾아 혼자 앉아 계시는 아이러니한 장면을 보게 되었다. 늘 나의 커피 머신 앞에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스몰토크를 원하던 고객들의 줄이 줄어들지 않았다.
빙긋이 곁에서 지켜보던 카페 주인은 쩔쩔매던 나를 커피머신 앞에서 물러나게 하며 자신이 어떻게 하는지 잘 보라 하였다. 40년 가까이 그 가게에서 일을 해온 카페 주인과 고객들의 티키타카를 보고 있자니, 존경스러울 뿐이었다. 그는 마치 그 고객들의 성격을 미리 알고, 또 그들이 무슨 말을 할 것인지 먼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치 혼잡한 도로에서 도로교통을 정리하는 순경처럼 그는 너무도 능수능란했다.
" 오늘 좋아 보이시네요.. 오늘 역시 플랫 라이트시죠?"
" 잠시만 이 쪽 옆에 서 주시겠어요? 내가 그다음 이야기는 좀 있다가 들어 드려도 되지요? 자 다음 누가 주문 하실 차례지요?"
" 아 좋은 아침이에요.. 오늘도 라테?"
" 저 번 아드님 일은 어떻게 되셨어요? 내가 너무 걱정 됐었는데 이따가 내가 한가하면 말해 주세요
" 오늘 다리는 좀 어떠세요? 자리에 가서 앉아 계시면 제가 금방 가져다 드릴게요. 조금 이따 얘기 나눠요"
그의 "조금 이따 얘기 나눠요"라는 그 말에 사람들은 아무 소리 못 한 체 그의 통제에 따랐다. 그리고 또 그 누구도 "나랑 얘기 나누겠다고 아까 약속했잖아" 라며 떼를 쓰며 기다리는 사람도 없었다. 그들은 시간이 되면 웃으며 자리를 떠났고, 다음날이면 또 같은 모습으로 찾아왔다.
고객들의 말을 끊을 때는 진심을 다하는 눈빛을 담아야 한다. "내가 정말 당신의 말을 듣고 싶어 죽겠지만 지금은 잠시만 가엾게도 바쁜 나를 위해 기다려 주시겠어요"라는 간절함도 보태서 말이다. 그리고 그것 보다 더 좋은 방법은 대화를 내가 리드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객들에게 리드를 당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그건 마치 적과 고지 점령을 두고 싸우고 있는 형국과 별반 다름이 없는 것이다. 먼저 고지 점령을 한쪽이 이기는 것이다.
나의 열공모드와 뛰어난 눈치로 인해 나는 곧 카페주인의 기술을 전수받게 되었고, 그의 엄지를 자주 목격 하게 되었다. 하지만 갈수록 나의 입안은 말라갔고, 하루가 다르게 기가 빠져나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제야 왜 카페 주인 아들이 일을 그만두게 되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카페에서의 바리스타 라는 건 단순히 커피를 만드는 직업이 아니었다. 그날 그 고객들에게 스몰토크로 기분 좋은 하루를 선물해야 하는 직업이기도 한 것이다. 고객 하나하나의 커피 기호를 기억해야 하고, 각자 고객의 이름을 불러줘야 하는 기억력이 탑재되어있어야 하며, 고객들의 최근 크고 작은 이벤트까지 기억해서, 그들의 스피드와 분위기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눈치까지도 지녀야 하는 그야말로 엄청난 직업인 것이다.
다소 벗어난 얘기가 될수도 있겠지만 호주의 이 스몰토크는 은행이나, 선술집 그리고 어느곳에서도 흔히 볼수있다. 호주의 은행은 한국과 달리 고객들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 시스템임에도 불구하고 내 앞 줄의 어느 고객과 은행원의 스몰토크를 조용히 기다려 줘야한다. 나를 비롯 내 뒤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그 어느 누구도 그들의 쓸데없어 보이는 그 긴 대화에 불만을 표시하지 않고 기다려준다. 급한 일이라도 있을때는 여간 난처한게 아니다.
하지만 스몰토크의 강국답게 기다리는 모든이들의 표정이 여유롭다.
다른 카페에 비해 스몰토크를 좋아하던 어르신들이 많았던 그 카페에서의 경험으로 인해, 나는 어쩌다 케쥬얼로 일하게 된 다른 카페에서는 날아다닐 수 있었다. 하지만 지극히 내향적인 나의 성격으로는 고객들과의 짧은 스몰토크마저 기를 빨려했다.
지금의 한국도 호주와 별로 다를게 없이 혼자 사시는 어르신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외로운 분들에게 주어지는 공식적인 그 짧은 스몰토크 시간이 얼마나 반가운 지도 잘 안다. 나도 언젠가는 잘 알지도 못하는 바리스타 앞에서 어제 저녁으로 뭘 먹었는지를 정성스럽게 설명하는 날이 올지도 모를 일이다.
호주에서 살면서 나는 범법 행위만 아니라면 뭐든지 다 한 것 같다. 하지만 제일 힘들었던 건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일한 경험이다. 남들보다 감정이입이 쉬운 나로서는 고객의 얘기를 들으며 쉽게 울기도 하고, 간절하게 말동무를 찾던 고객들의 말을 자를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매사에 조급함에 익숙했던 나로서는 그 스몰토크의 무쓸모함으로 인해 점점 바리스타로서의 나의 열정이 사그러들고 있음을 느껴야했다.
그래서 나는 어쩌다 카페에서 일을 할 기회가 오면
"Short order long black"이라는 문구를 크게 써 놓는다. 고객들이 그 문구를 보고 스스로 따라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하지만 대개는 보기좋게 무시당한다.
오늘은 내가 가장 힘들었던 직업군에 대해 써 보았다. 어느 분은 이 글을 읽으시면서 말도 안 된다 하실 분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항상 하는 말이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이야기이고 내 주관적인 이야기다.
바리스타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전문직으로 종사하시는 그 분들께 무한 존경의 마음을 담아 이 글을 바칩니다.